사회를 듣는 귀

성추행 논란 최몽룡 사퇴, 몽롱한 정부가 눈뜨는 계기 될까?

너의길을가라 2015. 11. 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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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정적인 여론의 확산

2. 대표 집필진으로 초빙된 최묭룡 서울대 명예교수의 여기자 성추행 의혹에 이은 자진 사퇴. 


심상치 않을 것이라 예상했고, 역시 심상치가 않다. 난항(難航)을 겪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이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고 있다. 지난 3일 정부가 중,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를 발표하면서 총력전을 펼쳤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올바른 교과서'라는 야심찬 네이밍(naming)도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우선, 여론이 심상찮다. 국민들은 점점 더 확고히 역사교과서 국정화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3~5일 조사)에 따르면, 국정화에 반대하는 의견이 53%로 찬성(36%)을 앞섰다. 더 세심히 지켜봐야 할 부분은 '추세'인데, 반대 의견이 점차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10월 2주에 42%였던 반대는 11월 1주에 들어 53%로 늘어났다. 한편, '리얼미터'의 여론조사(3~4일)에서도 반대가 52%를 기록했다.


김무성 대표가 "우리나라 역사학자 90%를 좌파학자가 점령하고 있다"는 발언(10월 7일)을 하는 등 정부와 새누리당은 해묵은 '색깔론'을 다시 꺼내들었지만, 그것이 발등을 찍는 자충수(自充手)에 불과했다는 것은 지금의 여론의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낙인' 찍는 것은 단순히 역사관의 문제라기보다는 인식 체계에 있어 유아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방증이다. 


게다가 어느 사회나 집단에서 90%가 어떤 관념을 공유하고 있다면 그것은 '상식'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 아닌가? 학계를 모독하며 얻은 수확은 역사학계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었고, 상식적인 역사학자들은 앞다퉈 역사교과서 집필진 참여를 거부했다. 이렇게 되자 정부는 교과서 집필진 구성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남은 것은 뉴라이트 계열의 10%뿐 아닌가? 그런데 10%의 생각을 담은 교과서가 '올바른 교과서'일 수 있을까?




정부는 논리도 절차도 모두 내팽개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였다. 지난 4일 국사편찬위원회는 역사교과서 대표집필진으로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와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를 선정했다. 원로학자들의 참여로 한바탕 시끄럽던 차에 대표집필진 가운데 한 명인 최 교수가 여기자 성추행 의혹에 휩싸였고, 이내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다. 


▷ 사퇴 배경이 뭔가요? "

▶ <조선일보>가서 국장하고 또 누구지. 그때 같이 술자리에 있었던 아가씨에게 죄송하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했어."

 당시 무슨 발언을 했던 건가요. 

"어휴, 나는 몰라..." 

▷ 해명도 좀 해주셔야죠. 

▶ "나는 해명할 필요도 없고. 국민이 잘못했다니까 잘못한 거지 뭐."

▷ 신체적 접촉이 있었다라는 (얘기가 있다.) 

▶ "아이... 없었지." 

▷ 기억은 하세요? 

▶ "술 먹은 건 기억이 나. 허허허허." 

▷ 어떤 말을 한 건지는 기억이 나세요? 

▶ "글쎄... 모르겠어. 이제 그만 해. 다 찍었잖아. 언제 술이나 한 잔 더 하든가.(웃음)"


예기치 못한 변수가 등장한 것이다. 지난 4일 <조선일보>는 최 교수가 자신을 인터뷰하기 위해 자택으로 찾아갔던 여기자에게 성희롱으로 느껴질 수 있는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고 보도했다. 논란의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고, 6일 국사편찬위원회는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는 올바른 역사 교과서 편찬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집필진에서 사퇴하겠다는 뜻을 국편에 전해 왔다"고 밝혔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향한 정부의 아집스러운 고집이 첫 스텝부터 완전히 꼬여버린 것이다. 그것도 돌발적이고, 게다가 대형 악재가 아닌가?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이런 수준 이하의 학자를 최소한의 검증도 없이 국정교과서의 대표집필진으로 초빙한 것부터가 잘못"이라며 정부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당사자가 저토록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이 납득이 되는가?


언론사 기자를 '그때 같이 술자리에 있었던 아가씨'라고 지칭하고, 해명을 요구하는 기자에게 "나는 해명할 필요도 없고. 국민이 잘못했다니까 잘못한 거지 뭐"라고 답하는 수준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수준의 역사학자가 서술하는 '역사'를 자라나는 아이들이 줄 그어가며 배워야 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이제 그만 해. 다 찍었잖아. 언제 술이나 한 잔 더 하든가"라며 웃으면서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지는 건 정말 최악이다. 



현 시점에서 <한국일보>의 사설이 내린 결론을 읽어보자. "여론을 무시하고 군사작전 하듯이 밀어 부친 무모함의 결과다.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당찬 다짐과 포부는 최 교수 사태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런 식이라면 '제2의 최몽룡 사태'가 또 다시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어떻게 해야 꼬여버린 실타래가 풀릴까? 



그러자면 역사교과사 집필진을 공개해야 하고, 그 과정을 공개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 걸러야 할 대상을 걸러낼 수 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올바른' 교과서를 집필한다는 것 아닌가? 그러자면 그에 걸맞은 '학자'들은 선결조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로서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집필진으로 참여하는 학자들이 이를 반대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친일·매국노'라는 낙인찍기와 원색적인 비난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과도한 '마녀사냥'이 우려스러운 건 사실이다. 이는 마치 김무성 대표가 '역사학자의 90%가 좌파'라고 낙인찍은 것과 다를 바 없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갈등을 야기한 정부의 책임이 그 누구보다 크다.


역사의 퇴행을 두 손 놓고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는 다수의 국민들이 취하는 다소 과한 제스처를 무작정 비난하기만은 어렵다. 결국 정부가 가위를 꺼내들어야 한다. 그리고 꼬인 실타래를 잘라내야 한다. 그것이 자신들의 팔다리를 잘라내는 것이라 할지라도, 갈등을 야기하고 국민을 분열시킨 책임을 져야하지 않겠는가? 이제 깨달았을까? 무작정 밀어붙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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