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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일의 전성시대, 이 시대의 가장을 연기하는 생계형 배우

너의길을가라 2018. 6. 25.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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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라이브>는 경찰들의 애환을 인간적으로 풀어냈다는 평가와 함께 최고 시청률 7.73%(닐슨코리아 유료가구플랫폼 기준)를 기록하는 등 시청자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탐정: 리턴즈>은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형 시리즈물의 자존심을 세웠다. JTBC <미스 함무라비>는 평균 4~5%를 넘나드는 준수한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판사판 밀착형 법정 드라마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어 호평 일색이다. 


<라이브>, <탐정: 리턴즈>, <미스 함무라비> 세 작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을 찾는 게 어렵진 않았을 텐데, 바로 ‘배우 성동일’이다. 성동일은 <라이브>에서 정의감과 사명감을 가진 지구대장 기한솔 역을 맡아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탐정: 리턴즈>에선 ‘전설의 식인상어’ 베테랑 형사 노태수로 분해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였다. 또, <미스 함무라비>에선 부장판사 한세상으로 변신해 합의부를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 중이다. 



성동일은 1991년 SBS 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배우로서 28년간 쉼없이 달려왔다. 끈기와 꾸준함은 지금의 성동일을 만든 원동력이었다. 그렇게 자신만의 개성 있는 연기를 완성시키고, 연기자로서 높은 단계의 경지에 오른 성동일은 이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배우가 됐다. 성동일 없는 <응답하라> 시리즈를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이쯤되면 그에게 ‘연기 장인’이라는 수식어는 당연해 보인다.


감독, 배우, 시청자들이 모두 인정하는 장인이건만, 성동일은 여전히 겸손하다. 그는 스스로를 ‘생계형 배우’라 칭한다. 주저없이 돈이 연기의 원동력이었다고 말한다. 연기라는 작업에 숭고함를 불어넣는 분위기가 압도적인 현실에서 결코 쉽지 않은 고백이다. 가난이 싫어서 연기를 시작했고, 가지고 싶은 게 많았기 때문에 연기를 잘 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의 말을 허투루 넘기기 힘들가. 핵심은 ‘진솔함’과 ‘절실함’일 것이다. 



"최대한 나를 낮추고, 멋있는 말 찾으려고 빙빙 돌리지 말고 솔직하게 얘기하면 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티브이데일리, '탐정:리턴즈' 성동일은 단 한 번도 허투루 연기한 적 없다 [인터뷰]


데뷔 이래 쉴 새 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성동일이지만, 대중들은 그의 잦은 출연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상하리만치 피로감이 없다. 오히려 많은 작품에서 연달아 성동일을 만나는 일을 반기고 있다. 성동일에 대한 신뢰는 무한에 가깝다. 성동일만 특별대우를 받고 있는 것일까? 경찰, 형사, 판사, 교도관(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등 배역의 직업을 끊임없이 바꾸고 있지만, 캐릭터의 차별화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내 또래를 많이 아니까 그중에 누구를 연기할까 하면서 쉽게 잡는다.” 성동일의 비법은 ‘지인 찬스’였다. 자신의 지인을 대입함으로써 캐릭터를 잡아나간다는 것이다. 말은 쉬워 보이지만, 자칫 어설픈 흉내내기에 그치면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섬세한 관찰력과 뛰어난 응용력, 연기의 무게 중심이 있기에 가능한 비법이다. 



매우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한 성동일이지만, 그 캐릭터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결이 분명 존재한다. 바로 인간미, 사람 냄새다. 성동일의 연기에는 왠지 모를 따뜻함이 있고, 대중들은 그 온기에 마음을 의탁한다. 비록 걸핏하면 고함을 질러대고, 무신경한듯 보일지라도 그 밑바닥에는 정(情)이 담겨 있다. 왜 그런 걸까? 그건 아마도 성동일에게서 이 시대의 ‘아빠’, 혹은 ‘가장(家長)’을 발견하기 때문은 아닐까?


<응답하라>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고, <라이브>, <탐정: 리턴즈>, <미스 함무라비>에서 성동일은 아빠이자 가장이다. 그가 연기하는 가장의 이미지는 거의 비슷비슷하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어쩌면 우리 가정의 아빠의 모습이랄까.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짊어진 채 소처럼 일만 했던 세대의 아빠, 가부장적 권위주의의 세례를 받았지만, 그에 저항하는 세대와의 충돌에 직면한 세대의 아빠 말이다.


그러다 보니 가정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서글픈 아빠다. 공식적인 서열과 달리 사실상 집안 내에서 서열은 가장 낮다. 세련되지 못한, 어쩌면 투박하기까지 가장의 모습을 성동일은 연기한다. 그런데 성동일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어설프지만 가족들과 계속해서 교감을 시도하고, 먼저 손을 내밀어 소통을 시도한다. 거기엔 어김없이 웃음이 동반되고, 짠한 감동이 묻어난다. 그것이 성동일이 연기하는 가장의 모습이다. 



"원고, 아이들은 이미 자기 세계 속에서 자기 꿈을 키우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은 아빠를 기다려주지 않고 훌쩍 먼저 커 버리죠. 원고, 미안합니다. 원고 자신의 고통 때문에 아이들의 세계를 지켜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마저 잃어버린 것 같군요. 지금 법이 원고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저 법보다 훨씬 더 현명한 시간의 힘으로 이 가정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그래서 일까. 성동일의 연기는 일종의 가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아빠가 필요없을 정도로 훌쩍 자란 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미스 함무라비> 속 한세상은 이혼 부부의 친권 양육권 항소심에서 원고(아빠)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건넨다. 고아로 자란 원고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이를 악물고 돈을 모았지만, 정작 가족들은 아빠의 부재 속에 방치된 삶을 살아야 했다. 아내는 외도를 저질렀고, 결국 양육권 소송까지 진행된 것이다.



처음에 한세상은 "아무 잘못도 없는 남편이 왜 애를 빼앗겨야 하냐"고 분개했지만, '시골에 가서 살겠다'는 원고의 꿈이 아이들의 꿈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난 뒤에는 판결의 방향을 고쳐잡는다. 결국 중요한 건 아이들의 마음이고, 아이들의 꿈이었으니 말이다. 성동일의 현실감 있고 진정성 있는 연기가 만들어 낸 가슴 뭉클한 장면이었다. 성동일은 이런 캐릭터를 현실감 있게 표현할 뿐 아니라 대중에게 이해시키는 힘을 지녔다.


성동일은 '꼰대'를 연기하고, 그리 될 수밖에 없었던 자신들의 세대를 연민한다. 그렇지만 무조건적인 이해나 공가을 요구하지 않는다. 교감과 소통을 시도한다. 대체로 외골수에 괴짜인 경우가 많지만, 중심을 잡고 옳고 그름에 대해 분명한 선을 갖고 있다. 특유의 리얼리티는 현실감을 불어 넣는다. 또, 인간적인 따뜻함도 잃지 않는다. 그만큼 성동일은 다채로운 배우다. 아직 그가 더 궁금하고, 그의 연기가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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