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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예능 전성시대, '불임', '왕따', '이혼' 자극적인 개인사만 남았다

너의길을가라 2022. 2. 2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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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정신병자야? 상담을 왜 받아? 난 문제 없어!'

과거에는 정신 상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간다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고민이나 문제를 털어놓기보다 숨기려 했다. 정신 건강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었으니까. 하지만 최근 들어 정신 상담에 대한 진입장벽이 상당히 낮아졌다. 오히려 고민을 과감하게 오픈하고,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는 추세이다.

게다가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코로나 블루(불안과 우울)', '코로나 레드(분노)'를 넘어 '코로나 블랙(좌절, 희망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정신건강 지표가 급격히 나빠졌고, 상담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방송도 이런 흐름에 적극적으로 편승했다. 바야흐로 '상담 예능'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어쩌면 계기가 됐다거나 기여했다고 표현하는 게 좀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상담 예능이 방송가의 화두로 떠오른 건 방송사 내부의 사정도 한몫했다. 고민 상담과 솔루션 제시라는 심플한 과정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야외 버라이어티나 관찰 예능에 비해 제작 및 촬영이 용이하다. 또, 스튜디오 녹화로 진행되고, 많은 출연지가 필요하지 않다보니 제작비가 절감된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안정적인 시청률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실패에 대한 부담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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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예능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눠진다. '예능'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과 '상담'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 전자의 경우에는 친근한 연예인이 중심이 되는데, 서장훈과 이수근이 상담사로 나서는 KBS2 joy <무엇이든 물어보살>, 한혜진과 김숙, 곽정은 등이 참견자로 등장하는 <연애의 참견>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나문희, 김영옥, 박정수가 출연하는 채널S <진격의 할매>도 추가됐다.

후자의 경우에는 전문가가 출연하게 되는데 그 중심에는 역시 (설명이 필요없는) 오은영 정신의학과 박사가 있다. 채널A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새끼>, <오은영의 금쪽상담소>는 그의 시그니처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또, 지난 24일 첫 방송을 시작한 SBS <써클 하우스>도 있다. 상담 예능 전성시대라 쓰고 오은영 전성시대라 읽어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만큼 오은영의 활약은 독보적이다.

예능에 방점이 찍혀 있는 상담 예능 프로그램은 사실상 상담이라기보다 대화에 가깝다. 물론 고민은 다양하고, 수위도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전문가가 부재하다보니 뚜렷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해 답답한 경우가 많다. 또, 잘못된 조언을 건네기도 해서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예능이라는  특성과 한계를 감안해 소통의 장을 마련한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문가가 참여하는 후자의 경우에는 어떨까. 오은영이 중심이 된 <금쪽같은 내새끼>와 <오은영의 금쪽상담소>는 내용적으로 상당히 안정적이다. 정확한 솔루션과 따뜻한 위로가 더해지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금쪽같은 내새끼>는 E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이어 '육아 바이블'로 자리잡았고, 시청률도 3%대로 초창기에 비해 상승했다.


<금쪽같은 내새끼>의 스핀오프 격인 <오은영의 금쪽상담소>는 어른들의 심리 상담에 나선다. 주로 연예인들이 참여해서 고민과 내밀한 속내를 털어놓는다. 20회에서는 최양락, 팽현숙 부부가 서로의 깊은 속내를 털어놓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들과 같이 오래된 부부, 그렇지만 소통이 단절된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됐을 것이다. 시청률은 어느덧 4.277%까지 상승했다.

이렇듯 정신건강 상담 예능의 장점은 '공감대'이다. 시청자들은 다양한 사연들 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대입하고, 오은영의 예리한 진단과 따뜻함이 담긴 조언, 명쾌한 솔루션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또, 흔들리던 인생이 방향키를 잡아나간다. 정신의학과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졌다고 해도 누구나 병원에 갈 수 없는 형편과 상황임을 고려했을 때, 이와 같은 대리만족은 엄청난 장점이다.

문제는 굉장히 '자극적인 개인사'를 다룬다는 점이다. 물론 상담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놓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꼭 '매운맛'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상담 내용이 편집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논란이 양산된다. 상담 '과정'은 생략된 채 'ADHD', '왕따', '부모님 이혼', '학대', '가정폭력', '불임'과 같이 자극적인 내용들만 주목을 받게 된다.  


최근 방송을 시작한 <써클 하우스>이 경우 한가인이 MC로 출연하게 돼 화제를 모았는데, 방송 직후 포털 사이트에는 '한가인 불임'이라는 타이틀의 기사들이 하루종일 도배되다시피 했다. 방송 중 한가인이 불임 루머에 대한 해명을 한 부분이 부각된 것이다. 또,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청춘상담 프로젝트'라는 기치와 달리 '사적 상담'에 그쳐 아쉽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고민을 공유하고 위로를 나누는 상담 예능 전성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뚜렷하다. 우리 사회가 전신건강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는 뜻이다. 이는 매우 긍정적인 변화이다. 하지만 정신건강을 다루면서 지나치게 개인사에 매몰되어 간다는 인상을 받는다. 세대를 아우르는 공통적인 고민, 시대를 담아내는 포괄적인 고민이 결여되어 있다. 상담도 각개전투일까.  

물론 '예능'의 표피를 쓰고 있다보니 자극적인 소재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역치'가 너무 높아졌다. 웬만한 사연으로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결국 높아진 역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상담 예능이 더욱 자극적인 방향으로 달려갈 여지가 크다. 상담 예능 제작진들에게 고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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