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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에게 무릎꿇은 피해자 유가족, '마우스'의 도넘은 잔혹함

너의길을가라 2021. 3. 25.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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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우리 형 좀 놔주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멋도 모르고 선생님한테 까불었습니다. 저를 죽이세요. 제가 대신 죽을게요. 불쌍한 우리 형 좀 살려주세요."

생방송 중에 한 남자가 무릎을 꿇고 누군가에게 빌고 있다. 그는 눈물, 콧물 다 쏟으며 형을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한다. 두 손을 싹싹 비비며 간절히 비는 모습이 애처롭다. 실시간 영상 속의 범인은 가면을 쓴 채 다른 남자, 그러니까 빌고 있는 남자의 형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애원은 효과가 있었을까. 이 끔찍한 장면은 tvN 수목드라마 <마우스>의 한 대목이다.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이 무대는 유괴된 아이, 한국이를 살리기 위해 마련됐다. 무법 형사 고무치(이희준)와 시사교양 프로그램 '셜록 홍주'의 PD 최홍주(경수진)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의 요구대로 생방송을 강행했다. 정체불명의 범인은 고무치를 지목해 자신이 사람들을 죽인 이유를 맞추면 한국이를 풀어주겠다고 제안했다. 고무치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차라리 이를 기회로 범인의 정체를 밝혀내고자 했다. 두 사람의 숨막히는 두뇌 싸움이 펼쳐졌지만, 결국 상황은 범인의 계획대로 흘러간다. 고무치와 최바름(이승기)은 가짜 영상을 제작해 범인을 자극하려 했다. 하지만 천재적인 두뇌를 지닌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은 그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고무치의 시도로 오히려 혼란만 가중됐고, 범인을 자극하기만 했다. 역부족이었다.


고무치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7대 죄악(교만, 탐욕, 시기, 분노, 음욕, 식탐, 나태)에 착안해 살인을 벌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신에 반감을 갖고 있는 범인이 신이 정한 7대 죄악을 행하지 않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생각해 죽여왔다는 것이다. 한국이는 자신을 버린 아빠를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았다. 고무치는 분노하지 않은 한국이가 타깃이 된 것이라 예측했다.

그러나 범인의 타깃은 한국이가 아닌 고무원(김영재), 그러니까 고무치의 형이었다. 고무치는 "우리 형 건들면 가만 안 둘 거야!"라며 격분했다. 범인은 자신의 부모를 죽인 '헤드 헌터' 한서준(안재욱)을 용서한 고무원에게 "분노가 죄악이라고? 왜? 분노하지 않은 게 죄악이지. 지금이라도 분노를 터트려!"라고 압박했지만, 고무원은 끝내 분노하지 않았다. 그리고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

최근 들어 반사회성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 그러니까 '사이코패스'를 다룬 드라마가 쏟아지고 있다. tvN <빈센조>의 경우, 마피아 출신 변호사 빈센조(송중기)가 상대하는 바벨그룹의 실질적 오너 장준우(옥택연)가 사이코패스로 등장하고, JTBC <괴물>에서는 친근한 이웃이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섬뜩한 일이다.


그 중에서 사이코패스를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는 드라마는 tvN <마우스>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이코패스의 특징은 감정을 관장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일반인에 비해 15%밖에 되지 않는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또, 공격적 성향을 억제하는 세노토닌의 분비가 부족해 폭력성을 조절하기 힘들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마우스>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사이코패스 유전자가 있으면 1% 확률로 천재로, 99% 확률로 사이코패스로 태어난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상위 1%의 사이코패스를 '프레데터(Predator)'라고 부른다. <마우스>는 질문을 던진다. 바르고 선한 삶을 사는 정바름과 환자에게 막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냉혈한 성요한(권화운) 둘 중 누가 프리데터일까. 또, 그 차이를 만든 건 도대체 무엇일까.

약간 어수선한 분위기가 아쉽기는 하지만, 쫄깃한 추리가 가미된 <마우스>는 6회에서 최고 시청률 6.672%(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전개 앞에 시청자들은 모두 초집중 모드다. 이희준, 이승기, 김정난, 김영재 등 배우들의 열연도 한몫했다. 하지만 '불편한 지점'이 몇 군데 포착되기도 했다.


사이코패스는 특별한 존재일까. 평범한 사람들은 결코 대적할 수 없는 '넘사벽'일까. <마우스>는 유독 사이코패스를 과하게 천재적으로 묘사한다. 형사나 보통 사람들은 맨날 범죄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닌다. 두뇌 싸움도 백전백배다. 범인은 형사를 마음껏 조롱한다. 이런 양상은 범죄 장르물에서 일정 부분 허용되지만, 사이코패스의 천재성을 지나치게 부각하는 건 어쩐지 찜찜한 일이다.

또, 한 가지 지적할 부분은 도를 넘은 잔혹함이다. 다시 위의 장면으로 돌아가보자. 무릎을 꿇고 형을 살려달라고 빌고 있는 고무치는 누구인가. 어린 시절 헤드 헌터라 불린 사이코패스에게 부모를 잃은 피해자 유가족이다. 그가 또 다른 사이코패스에게 형을 살려달라며 손발이 닳도록 애원하고 있다. 아무리 극적인 효과를 위한 것이라 해도 너무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설정이다.

최근 몇몇 드라마의 경우, 사이코패스를 지나치게 신비하게 그려내거나 천재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남길 수 있기에 우려스럽다. 또, 극악무도한 범죄 등 각종 사회악의 원인으로 사이코패스라는 손쉬운 해법을 꺼내든 것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아무리 '19금'을 달았다지만, 살해 현장과 잔혹한 수법들이 너무 노골적으로 다뤄진다는 점도 문제다.

<마우스>는 같은 사이코패스 유전자를 타고 태어나도 누구는 악마성을 지닌 프레데터로 자라지만, 누구는 천재성을 지닌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제시한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고민하겠다는 나름의 문제의식도 담겨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과한 설정으로 사이코패스를 특별한 존재처럼 오해하게 만드는 점은 아쉽다. 잔혹의 끝을 달리는 <마우스>가 부디 균형있는 답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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