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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했던 <그것만이 내 세상>, 이병헌과 박정민은 뻔하지 않았다.

너의길을가라 2018. 1. 2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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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균의 JK필름은 확고하다. 철저히 '재미'를 좇는다. 여기에서 말하는 재미란 웃음과 눈물의 절묘한 배합을 의미한다. 그 비율은 어김없이 7대 3을 이룬다. 이른바 '윤제균 공식'이라 불리는 황금 비율이다. 들은 초반부터 중반까지 실컷 웃다가, 그 이후부터 빠르게 전개되는 감동 코드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의 극적인 변화는 훨씬 더 큰 진폭을 주기 마련이다. 그래서 JK필름의 영화를 보고나면 웃음은 웃음대로 눈물은 눈물대로 더 강렬히 기억에 남게 된다. 




JK필름이 자신있게 내세우는 이 마성의 전략은 최근에 들어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755만 관객을 동원한 <히말리야>(2015), 781만 관객이 찾은 <공조>(2017)는 그 뜨거운 위세의 증거다. 지난 17일 개봉한 최성현 감독의 <그것만이 내 세상>도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JK필름의 자부심을 드높이고 있다. 비록 천만 영화(1,371만 8,253명)의 탄생에 따른 영화관 피로감으로 흥행 성적(130만 6,116명)이 아직까진 만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관객들의 반응이 좋은 편이라 동력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다른 JK필름의 영화들이 그렇듯이, <그것만이 내 세상>도 전형적이다. 또, 뻔하고 식상하다. 무엇보다 올드하다. 인물 설정은 물론 이야기 전개도 그렇다. '김조하(이병헌)'는 한물간 전직 복서다. WBC 웰터급 동양 챔피언이었다는 과거의 영광을 자부심으로 살아가지만, 현실의 삶은 고달프기 그지 없다. 끔찍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끝내 집을 떠나고 만 엄마 주인숙(윤여정)를 17년 만에 다시 만나 그의 집에 얹혀 살게 된다. 엄마에 대한 원망이 가슴에 가득하지만, '숙식 제공' 앞에 머리를 숙이고 만다. 


그런데 엄마에겐 또 다른 아들이 있었다. 어떤 질문에도 "네~"를 연발하고,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서번트 증후군의 '오진태(박정민)'다. 서먹서먹한 관계의 두 형제가 친해져 '가족애'를 갖게 되는 과정은 <그것만이 내 세상>의 핵심적인 웃음 포인트가 된다. 그런데 진태는 엄마가 없으면 살 수 없다. 그런 진태 앞에 형이 나타났다는 건, 곧 '엄마의 부재(죽음)'을 의미한다. 이 영화가 JK필름의 것이라는 걸 잊어선 곤란하다. 영화는 그 예측을 한치도 비껴가지 않는다.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인숙은 조하에게 거짓말을 하고 진태를 맡긴다. 엉겹결에 진태를 보살피게 된 조하는 점차 형제애를 느끼게 되고, 진태가 갖고 있는 피아노 재능을 세상에 알릴 방법을 찾는다. 여기에 일조하는 것이 우연한 사고를 통해 알게 된 피아니스트 한가율(한지민)과의 인연이다. 그 뜻하지 않았던 일이 곧 필연이 되리라는 건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이처럼 <그것만이 내 세상>은 기존 JK필름이 반복했던 상투적인 패턴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빛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병헌은 언론시사회에서 "웃음을 주고, 감동을 주고, 눈물을 주는 뻔한 공식은 영화사 시작부터 지금까지 계속 반복된 거 같아요.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그런 영화를 찾는 것은 감동의 색깔, 깊이, 디테일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요?"라고 반문했다. 정확한 설명이다. 그런데 겸손한 대답이기도 하다. 적어도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그 '다름'을 만들어 낸 주역은 바로 이병헌이었고, 또 박정민이었다. 윤여정도 "제가 연기를 제일 못했다"며, 관전포인트를 이병헌과 박정민의 연기로 꼽지 않았던가. 


이병헌은 <남한산성>에서 강렬하고 묵직한 연기를 선보이더니, 이번에는 몸에 힘을 쫙 빼고 나타났다. 그런데 전혀 이질감이 없다. 변신의 귀재답다. 이전의 영화에서 간헐적으로 보여주는 데 그쳤던 코믹 연기를 능수능란하게 해냈고, 생활 연기의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 또, 가장 중요했던 감동의 전달도 완벽했다. 특히 엄마 인숙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감정들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역할인 조하에 대한 몰입이 되자 영화의 힘은 배가 됐다.



그런 이병헌이 극찬을 아까지 않은 배우가 바로 박정민이다. <동주>(2015)를 통해 충무로의 기대주로 떠오론 그는 <그것만이 내 세상>을 통해 천재성을 마음껏 발휘했다. 조하가 영화를 이끌어 가는 동력이었다면, 진태는 영화의 성립 조건과도 같았다. 만약 서번트 증후군 연기가 어설프거나 그 안에 진정성이 담겨 있지 않았다면 이 영화는 우스꽝스러웠을 테지만, 박정민의 섬세한 연기는 그런 논란을 애초부터 불식시켰다. 말투, 표정, 손동작, 피아노 연기 모두 더할나위 없었다.


영화 속에서 박정민의 피아노 연주는 감탄을 자아내는데, 피아노를 전혀 칠 줄 몰랐던 그가 6개월 동안 매일같이 5시간 씩 연습한 결과라고 한다. 이처럼 연기에 대한 박정민의 열정과 노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충무로를 대표하는, 그리고 앞으로 대표할 두 배우의 만남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이병헌과 박정민, 두 배우의 열연만으로도 <이것만이 내 세상>을 볼 가치는 충분하다. 손익분기점인 약 210만 명(제작비 58억 원)을 돌파해 잔잔한 감동이 더 많은 관객들에게 전달되길 바란다. 비록 그것이 다소 뻔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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