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93)

너의길을가라 2014. 7. 15.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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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사랑할 때, 우리는 여름 안에 있었습니다. 둘이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섬 안에 있었습니다. 둘이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낯선 풍습을 가진 이방인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그 여름, 이방인들의 섬은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세계였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더 이상 뜨거워지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둘만의 섬을 떠나게 될 것이며,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게를 더 이상 낯설게 바라보지 않을 테니까요. 서로 사랑한 두 사람은 늦든 빠르든 세계가 어떻게 종말을 고하는지 보게 될 겁니다. 여름의 한가운데 있는, 신기루와 같은, 둘만의 섬. 잠시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물방울 같은. 그 섬이 그토록 아름다웠다면, 영원하리라 믿었던 것이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졌기 때문이죠. 


- 김연수, 『우리가 보낸 순간』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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