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58)


절실함이 더해지고 희생이 전제되어야 원하는 물건은 내 것이 됩니다. 좋아하는 물건이 있다면 우선 저질러 놓고 나주에 해결 방법을 찾는 게 내 방식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방식이 욕망과 현실을 외려 중화시켜 놓더라 이겁니다. 저질러 놓은 것을 수습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하니, 간절한 욕망부터 해결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된다는 지론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욕망 충족법을 지켜 오니 이제 절실하게 필요하거나 갖고 싶은 물건도 별로 없게 되고 외려 욕망의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하더군요. 뭐든 대체하면 된다는, 대치의 관점에서 사는 인생이 쓸쓸하다는 얘기는 이래서 가능한 거죠. 난 스스로 선택한 고립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으로 혼자 노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명품을 의식한 게 아니라, 좀 더 세밀하게 나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해체하는 놀이 도구가 바로 물건이었던 셈입니다. 기왕이면 좋은 물건을 선택하려는 노력은 정당했고 좋은 물건은 그만큼의 대가를 내게 돌려주었습니다.


- 장정일, 『장정일, 작가』 中 사진작가 윤광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