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25)

너의길을가라 2015. 6. 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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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릴 때는 '안부를 묻는다'는 행위의 소중함을 몰랐다. 왠지 의례적인 인사말 같고, 예의를 차리는 관계에서 필요한 것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안부라는 말에 담긴 수많은 다의적 함축이 눈물겹다. 몸은 건강한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너무 춥거나 덥게 지내지는 않는지, 많이 외롭지는 않은지, 그 모든 타인의 안부를 목마르게 궁금해하는 것이 바로 사랑임을 알 것 같다.


2. 안부를 물을 수 있다는 건 그 사람과 맺은 인연의 끈이 끊어지지 않았음을 증언하는 것이다. 연락이 끊긴 사람에게는 안부를 물을 수 없다. 아무리 미칠 듯이 보고 싶어도, 죽음 사람에게는 안부를 물을 수 없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 지금, 안부는 인연의 절실함을 증명하는 가장 평범하고 아름다운 몸짓임을 이제야 알겠다.


3. 안부는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뜻밖의 마력을 지녔다. 구체적으로 그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 맹렬하게 궁금하다가도 '참,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만큼 중요한 안부는 없겠구나'라는 깨달음이 올 때가 있다. 안부는 우리 삶에서 가장 긴요한 것들이 아주 단순하고 원시적인 토대 위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뜨겁게 일깨워준다.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것만큼 당신도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고, 내가 당신을 걱정하는 만큼 당신도 나를 걱정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부리다가도, 끝내는 '당신만 건강하게 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는 마음이 된다.


-정여울, 『그림자 여행』-



※ 번호는 임의로 붙인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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