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연예/'백종원의 골목식당' 톺아보기

백종원은 거제도의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

너의길을가라 2019. 2. 28.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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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방송된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경상남도 거제도 지세포항을 찾았다. 대전 중앙시장(청년구단 편)에 이어 두 번째 지방 방문이다. 이른바 '지역 상권 살리기'에 발 벗고 것이다. <골목식당> 제작진은 2018년 10월 12일 국회에서 열렸던 산업통상자원 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던 백종원의 모습을 보여주며 거제도 편의 포문을 열어젖혔다.


"방송이 주로 서울 지역에 가시더라고요. 그래서 지방에 왔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은 왜 서울만 했냐면 제작비가 별로 없어가지고. (웃음) 서울에서 반응이 좋으면 지방도 하려고 했는데... 가능하면 지방으로 많이 가려고 합니다."


백종원이 지방으로 간다고 하니, 수많은 제보(이자 요청)가 쏟아졌던 모양이다. 제천, 천안, 군산, 포항, 나주, 여수 등 여러 후보지가 거론됐으나 최종적으로 낙점(落點)을 받은 곳은 거제도였다. 그런데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왜 굳이 거제도를 찾았던 걸까? 지역경제가 어려운 곳이 어디 한둘이겠냐마는 그만큼 거제도의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거제도=조선업'이라는 등식이 성립했을 만큼, 거제도는 조선의 메카와 같은 곳이었다. 워낙 경기(景氣)가 좋았던 터라 '불황의 무풍지대'라 불렸고, 실제로 IMF 시절에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거제도의 개는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다닌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던 곳이지만, 약 4년 전부터 시작된 조선업의 불황은 거제도를 침체의 늪으로 빠뜨렸다. 그렇게 거제도는 '불 꺼진 항구'가 돼버렸다. 



"제 고향 거제와 통영도 조선이 무너지니 지역경제가 공동화되고 황폐화 됐다." (문재인 대통령, 2018년 10월 30일 '새만금 재생 에너지 비전 선포식'에서)


솔루션을 받을 첫 번째 식당은 충무김밥집이었다. 친구에게 배운 레시피로 장사를 시작했다는 사장님은 3년 차의 경력자답게 김밥을 마는 솜씨는 수준급이었다. 허나 문제는 맛이었다. 시식을 한 백종원은 "평범한 맛.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는 맛"이라 평가했다. 물론 기본은 한다는 이야기였지만, 충무김밥 단일메뉴만 판매하는 식당에서 '평범', '기본'이라는 평가는 결코 만족해선 안 되는 결과였다.


두 번째 식당은 보리밥·코다리찜집이었다. 요식업 14년 차의 베테랑 사장님은 "살면서 내 음식에 대해 맛없다고 한 사람은 없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백종원은 된장찌개부터 보리밥에 들어가는 나물에 이르기까지 혹평을 쏟아냈다. 오히려 밑반찬의 경우는 호평을 받았다. 게다가 보리밥이 8000원, 코다리찜이 소(小) 기준 25000원으로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쌌다. 이는 거제도의 높은 물가를 보여주기도 했다. 


마지막 식당은 도시락집이었다. 건설업을 하고 있는 남편이 불황 탓에 쉬는 날이 많아지다보니, 사장님은 경제작인 부담을 오롯이 지고 있는 처지였다. 그러다보니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가게 문을 열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맛은 어떨까? 우선, 속도가 너무 느렸다. 백종원이 "인간적으로 너무 오래 걸린다"고 지적할 정도였다. 게다가 우엉김밥에서는 웬일인지 쓴맛이 느껴졌다. 쉽지 않은 솔루션이 예상됐다. 



<백종원의 골목식당> 거제도 편을 보면서 제작진의 부담감이 얼마나 큰지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프로그램의 성격상 지적하는 백종원과 지적받는 사장님들의 기싸움은 불가피하다. 갈등이 전혀 없으면 재미와 화제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갈등이 너무 부각되면 프로그램의 본질이 훼손될 뿐더러 기껏 출연을 결심한 사장님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중간 지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당장 거제도 사장님들, 이른바 '거벤저스'는 특유의 거친 입담으로 '입맛이 다른 걸 어떡하냐', '거제도 사람들의 입맛에 맞춘 것이다'며 항변하고 나섰다. 물론 백종원에겐 씨알도 안 먹힐 말이다. 장사가 잘 되지 않는다는 건, 현지인의 입맛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뜻이니 말이다. 제작진은 이 갈등 구조를 설정과 편집을 통해 조절했다. 사장님들의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면서 시청자들의 불쾌감을 줄여나가는 방식이었다.  


"첫 회는 백종원 대표님과 사장님이 맞춰과는 과정이어서 부각되어 보인 부분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걱정을 안 하셔도 될 것 같다" (윤종호 PD)


또, 방송 다음날 곧바로 인터뷰 기사를 내보내 불길을 차단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거벤저스'에 대해 '고집불통'이라는 시청자 반응이 나오자 불필요한 논란을 막기 위해, '그들이 백종원의 솔루션을 받아들인다'는 스포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출연자를 보호한다는 측면에선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PD가 결과를 미리 고지하는 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한편, 이쯤에서 한 가지 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스스로 과도한 짐을 짊어지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전까지는 '골목상권'이라는 작은 무대를 누볐다면, 이젠 느닷없이 '지역경제'라고 하는 거대한 블록을 되살리겠다고 나섰다. '불황의 섬 거제도'를 부각시키며 자극적인 스토리텔링을 해버렸다. 이제 사람들은 '과연 백종원이 거제도의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라고 묻고 있다. 


이건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라는 '한낱' 예능 프로그램에게도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고, 무엇보다 백종원 한 개인에게 너무 큰 부담을 안겨주는 꼴이다. 백종원을 신의 반열에 올려놓을 셈인가? 물론 솔루션을 받은 식당들에 일정 기간 손님들이 몰려들 테고, 그 자체로 하나의 좋은 관광 상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거제도의 지역경제를 살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식당과 문제점이 많은 사장님들을 대상으로 솔루션을 하는 것도 좋지만,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작진부터 자신의 역할과 책임, 범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가령, 백종원이 전국 투어를 하면 그 모든 곳의 경기가 살아날까? 이 착시는 의외로 위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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