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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동건의 진가, <7일의 왕비>를 보면 안다!

너의길을가라 2017. 6. 2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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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이동건을 '배우'라는 카테고리에 넣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물론 1999년 SBS <광끼>로 데뷔한 그의 연기 경력이 무려 18년이나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내 안에 너 있다."라는 국민적 유행어를 남긴 SBS <파리의 연인>(2004)의 윤수혁뿐만 아니라 MBC <너 멋대로 해라>(2002)의 시크했던 한동진도 기억하고, 그의 전성기를 열어 젖힌 KBS2 <낭랑 18세>(2004)와 영화 <B형 남자친구>(2004)도 떠오른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뭔가 한발 더 나아갔어야 했던 게 아닐까, 라는 아쉬움이 든다. 


영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2007)에서 기존의 이미지를 이어가려는 시도를 했지만, 별다른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MBC <밤이면 밤마다> 이후 제법 긴 공백기가 이어졌다. 그의 동생에게 있었던 불행한 사건도 휴지기(休止期)가 길어지는 데 영향을 줬을 것이다. 2013년 KBS2 <미래의 선택>으로 오랜만에 대중 앞에 섰던 이동건은 "공백이 길어질수록 욕심이 커졌다. 욕심만큼 작품에 만족이 안 돼서 공백기간이 길어졌다"며 공백의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KBS2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2016-7)로 최고 시청률 36.2%를 기록하고, 평생의 동반자인 조윤희를 만나는 등 경사스러운 일이 이어졌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갈증은 보다 강해졌을 것이다. 그건 <파리의 연인>에서 순애보의 진수를 보여줬던 이동건을 기억하고, 다수의 작품에서 시크한 매력을 어필했던 그의 섹시함에 반했던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2004년 언저리에 멈춰 있는 발걸음을 좀더 과감히 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걸까. KBS2 <7일의 왕비>에서 연산군 이융으로 돌아온 이동건은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광기어린 얼굴, 불안정한 눈빛, 사랑을 갈구하는 태도. 권력의 비정한 속성을 깨달은 유약한 한 남자의 불안정한 내면. 이동건은 연산군의 심리를 정확하게 분석한 듯 보였다. 캐릭터 분석이 수월했던 덕분에 '감정'을 싣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상처 입은 남자가 여성들에게 이끌어낼 수 있는 최대치의 '모성'을 자극하는 동시에 다크한 느낌의 섹시함까지 풍기는 데 성공했다. 워낙 호평을 받았기에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MBC <역적>의 연산, 김지석을 지우는 데에도 성공했다. 사극 첫 출연이라는 사실이 믿겨지는가?



이복동생인 진성대군 이역(백승환/연우진)에 대한 열등감과 폐비 윤씨의 아들이라는 '낙인'으로부터 비롯되는 불안감을 탁월한 눈빛 연기로 영리하게 풀어냈다. 또, 광기가 뒤범벅이 된 표정과 카리스마와 잔혹함을 표현하는 장면들은 간담이 서늘해진다. 왕좌를 지켜내기 위해 애처롭게 싸워나가는 모습들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자꾸만 끌어당겨 응원하게 만들 정도다. 지금 생각하면, 연산군을 가장 잘 표현해낼 수 있는 '배우'가 있다면 그건 이동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얼굴에 숨겨져 있던 특유의 '쓸쓸함'이 제대로 빛을 발했다고 할까.


거기에다 '순애보'까지 더해지니 그 매력은 몇 갑절로 커질 수밖에 없다. 이융은 훗날 중종의 정비(正妃) 단경왕후가 되는 신채경(박시은/박민영)을 대할 때는 전혀 다른 남자로 변하는데, 달달함으로 가득한 180도 달라진 눈빛이 놀라울 정도다. 자칫 잘못하면 벼랑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는 정치의 최전선에 있을 때의 날카로움은 간데없고, 한없이 부드럽고 로맨틱한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완급 조절이 돋보인다. 이역과 채경의 아역이 출연했던 초반에도 이동건이 무게 중심을 잘 잡아줬다.



우리는 역사 속의 연산군이 어떤 비극적인 삶을 살았고, 또 어떤 최후를 맞이하는지 알고 있다. 수없이 많이 카피됐던 연산군이라는 캐릭터가 여전히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질 수 있다는 건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연산군이야?'라는 심드렁한 반응이 아니라 '이런 연산군은 처음이야!'라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비결은 기존의 연산군에 '멜로'라는 새로운 장르가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7일의 왕비>의 영리한 접근이자 그런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해 낸 이동건의 공이라 하겠다. 


죽은 줄 알았던 이역이 재등장하면서 채경과 재회하고, 그로 인해 다시 위기에 빠져드는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다. 여기에 이역을 짝사랑하는 윤명혜(고보결)의 존재감도 커지는 상황이다. 이들의 삼각 관계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관심이 가는 대목이 바로 이동건이 그리고 있는 연산군의 행보다. 그는 권력과 사랑, 이복동생에 대한 질투와 애정 사이에서 얼마나 더 번뇌할 것인가. 연산군의 비애가 얼마나 더 깊어질까. 그는 앞으로 얼마나 더 아파야 하는 것일까. 연우진과 박민영의 멜로가 깊어질수록 이동건의 치명적인 매력은 커질 것이다. 


<7일의 왕비>의 낮은 시청률이 못내 아쉬운 까닭은 '배우'로 돌아온 이동건을 더 많은 시청자들이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신채경을 둘러싼 연산군 이융과 진성대군 이역의 대립이 더욱 뚜렷해질 예정이라고 하니 시청률 반등을 기대해 본다. 전혀 다른 색깔을 띤 두 남자의 사랑이 얼마나 치명적으로 그려지게 될지 궁금하다. 5.2%까지 떨어진 시청률이 가슴 아프지만, 총 20부작으로 제작돼 아직 반환점도 돌지 않은 만큼 여지는 충분하지 않을까. 그 중심에는 역시 한층 '깊어진' 이동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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