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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먹어도 고!', <쌈, 마이웨이>의 언더독을 응원한다

너의길을가라 2017. 6. 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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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덜터덜 지친 마음을 끌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고동만(박서준)은 직장 상사의 전화를 받는다. 정말이지 받고 싶지 않다. 하지만 받지 않을 수 없는 전화이기도 하다. "네, 시정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고동만은 또 한번 스스로를 낮춘다. 고개를 숙인다. 쪼그라든 그 마음이 슬프다. "너, 진짜 때려치우려고 이게 작정을 했나. 너 군대 어디 갔다 왔어?" 평소 폭언과 막말을 하며 군기잡기로 일관했던 직장 상사가 쏟아내는 저 악랄함에도 고동만은 다시 꾹 참는다. "진짜 잘 하겠습니다." 


먹고 살아야겠기에, 그것이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한 생업이기에, 이 말도 안 되는 부당한 대우에도 한 명의 노동자는 그리 해야만 했다. 푸르른 색으로 피어나던 '꿈'을 거세당한 채 살아가고 있는 한 청년의 입에서 나오는 '죄송합니다, 잘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가슴을 후벼판다. "너 지금 어디야? 너 나하고 장난하냐? 너, 이게, 어디야, 인마!" 그러나 현실은, 그가 겨우 버티고 서 있는 이 세상은 더 이상 그를 참지 못하게 만든다. 도로 한복판에 그대로 멈춰선 고동만의 귓가에 맴도는 말들.. 



"사람은 진짜 자기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야 하나 봐." (최애라)

"지금은 뭐가 행복하고? 뭐가 치열하기라도 하냐?" (황코치)


백지연 같은 아나운서가 꿈이었던 소꿉친구 최애라(김지원)는 백화점의 인포데스크에서 근무하게 됐지만, 임시로 사내 아나운서로 발탁되자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고작 하루였음에도 애라가 느낀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컸다. (물론 애라는 점장인 형부의 빽으로 치고 들어온 다른 사원에게 자리를 빼앗겨야 했다.) 태권도 유망주 시절부터 자신을 가르쳤던 황코치(김성오)는 끈질기게 고동만을 자극한다. 동생의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승부조작에 가담했던 고동만의 곁에서 10년 동안 머물며 그가 다시 꿈을 꾸도록 밀고 당긴다.


갑자기 울분이 쏟아진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다. 가슴 깊은 곳에 맺혀 있던 한(恨)이 솟구친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그래, 이렇게 게속 살아갈 수는 없다. 고동만은 뒤로 돌아선다. 걸어왔던 길을 다시 마주한다. 지금이면 늦지 않았다. 까짓거 좀 늦으면 어떠한가. 그는 전화기 속의 직장 상사에게 소리친다. 어쩌면 그건 끊임없이 자신을 속박해왔던 현실이라는 벽을 향해 내던진 외침이었고, 그 현실에 무릎 꿇은 채 꿈을 사장(死藏)시켜야 했던 비겁한 자신을 향해 폭발시킨 일갈이었다. 



"저 잘 못 할 거 같아요. 맨날 저한테 그 따위로밖에 못할 거면 관두라고 하시잖아요. 근데요, 저는 그 일이 신이 안 나서 그렇게밖에 못할 거 같아요. 그래서, 그래서요! 저 그냥 그만 둘래요! 관둘게요! 관둘래요! 못 먹어도 고다!"


짠하다. 이 감정은 '측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못 먹어도 고!'라는 고동만의 외침은 우리가 그토록 내뱉고 싶었던 최후의 한마디가 아니던가. 입안에 맴돌던, 차마 던지지 못했던 최후의 한마디 말이다. 물론 고동만의 앞날이 무조건 '맑음'은 아닐 것이다. 패기 있게 격투기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앙숙인 김탁수(김건우)의 꾐에 빠져 섣불리 격투기 데뷔전을 치르다가 KO패를 당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신이 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최애라는 백화점 VIP의 갑질 횡포를 계기로 회사를 그만두고 '괜찮아, 무직이야'의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자신의 평생 꿈이었던 백지연 같은 아나운서가 되기로 결심한다. 잠시 놓아버렸던 꿈을 향해 다시 걸어가기로 한 것이다. 자신이 가장 신이 나는 순간, 그가 가장 빛나는 순간, 최애라가 오롯이 최애라일 수 있는 순간을 향해 달려가기로 한 것이다. 이게 웬일인가. 서류 심사를 통과했으니 면접을 보라는 연락이 왔다. 최애라가 걷는 그 길도 고동만의 것처럼 녹록치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도전하는 모습이 마음을 요동치게 만든다.



이처럼 KBS2 <쌈, 마이웨이>의 주인공들은 언더독(Underdog) 신화를 쓰고 있다. 어려운 처지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마이웨이'를 가고자 하는 고동만과 최애라의 도전은 그래서 더욱 값지다.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언더독'일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그들을 바라보며 진심을 다해 응원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더욱 흥미로운 것은 <쌈, 마이웨이>라는 드라마가 거머쥔 성취다. 동시간대 시청률 꼴찌로 시작했던 <쌈, 마이웨이>는 경쟁작인 SBS <엽기적인 그녀>와 MBC <파수꾼>을 제치고 당당히 시청률 1위로 올라섰다.


언더독을 다루고 있는 드라마가 언더독에 성공했다고 할까. 제법 '짠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쌈, 마이웨이>는 결코 울적하다거나 침울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코믹한 뉘앙스를 유지할 뿐 아니라 그 분위기를 살려야 할 개성만점의 캐릭터들이 확실히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고동만 · 최애라의 동창이자 '4인방'인 김주만(안재홍), 백설희(송하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쌈, 마이웨이>를 시청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마음이겠지만, 그들이 마침내, 결국, 활짝 웃게 되길 '청춘'의 이름으로 응원해본다. 


이루고 싶은 꿈을 향해 '자신'을 내던지고 앞을 향해 달려가는 고동만과 최애라를 위해 이 노래를 선물하고 싶다. 


난 좋아하는 일을 해

예측할 수 없고

불안정하기는 하지만

날 떨리게 만드는 일

불안한 마음마저

난 모험이라 생각해


- 웨일(Whale), Donkey(좋아하는 일을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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