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연예

목소리가 음악 그 자체, 진정한 어른 최백호가 말하는 불혹

너의길을가라 2017. 3. 12. 16:42
반응형


ⓒ 인넥스트트렌드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낙엽 지면 서러움이 더해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 눈길을 걸으며 눈길을 걸으며 옛일을 잊으리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중에서


평소 이용하는 음원 사이트에서 노래를 찾아 듣는데 이게 웬일인가. '최신 음악' 코너에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띠는 게 아닌가. 세월의 흐름이 물씬 느껴지는(그의 과거 앨범들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단정하고 단단한 얼굴 그리고 그 아래 한자로 쓰인 이름 석 자, 최백호였다. 어찌 듣지 않고 넘어갈 수 있으랴. 첫 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부터 노래를 듣는데, 진도가 도통 나가지 않는다. 어느덧 시간이 한참이 지나 있었다. 욾조리듯 부르는 특유의 창법과 특유의 쓸쓸한 정서에 흠뻑 젖어버린 탓이다. 


불혹(不惑). 어림잡아도 최백호(1950년생)의 나이가 그보다는 훨씬 많을 텐데, 어째서 앨범 제목을 불혹(不惑)으로 정했을까. 알고 보니, 올해로 데뷔 40주년, 불혹(不惑)을 맞이했다고 한다. 1977년에 데뷔를 했다고 하니, (반복하지만) 무려 40년의 세월을 뮤지션으로 지내왔다. 최백호에게 40년이라는 세월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사실 큰 의미는 없다. 돌아보면 여러 굴곡이 있었지만 용케 잘 견뎌냈구나, 참 운이 좋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역시, 그리고 뭔가 최백호다운 대답이다.



"과연 지금의 나는 가수로서 불혹의 경지인가? 좀 돌아봐야겠다."


세상 일에 미혹되지 않는다는 뜻의 불혹, 그러나 40년을 살았다한들 한낱 인간이 어찌 번민하지 않고 살 수 있겠는가. 어쩌면 가장 '미혹되기 좋을 나이' 다시 말해서 '마음이 흐려지기 가장 좋을 나이' 그리하여 '무엇에 홀리기 가장 좋을 나이'가 바로 '불혹'은 아닐까. 40년 동안 가수로서의 화려한 영예와 모진 굴곡을 지나왔을 최백호는 어떨까. 그는 '좀 돌아봐야겠다'고 말한다. 그는 섣불리 '답'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저 '반문과 고민'을 통해 그의 '경지'를 느끼게 된다. 


얼굴에선 세월이 꽤나 지났음이 느껴졌지만(정말 멋지게 나이 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노래'에선 세월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물론 1977년 데뷔 당시 불렀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을 40년만에 다시 불렀으니 '음색'은 변했고, 노래에 대한 '해석'도 달라졌다. 스무 살의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그 사무치는 그리움을 노래로 만들어 불렀던 곡이 이젠 자신을 위한 노래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그의 나이가 벌써 일흔을 향해 가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앨범을 결코 '나이 들었다'고 표현할 수는 없었다. 



"나에게 최백호의 음악은 목소리 하나였다. 톤 자체가 음악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번에 느낀 건 곡 해석력이다. 녹음 후에도 많은 걸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요즘 시대인데 최백호의 노래는 후반 작업을 할 수 없더라. 건드리면 그 느낌이 안 난다." ('에코브릿지' 이종명)


그 이유가 무엇일까. 감히 짐작해 본다면, 그건 후배들과의 협업을 피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열정이 가득하기 때문은 아닐까. 오히려 자신의 '나이 듦'을 인정함으로써 나오는 '힘' 말이다. 사실 <입영전야>(1977), <낭만에 대하여>(1994) 등을 부른 '옛날 가수' 최백호를 다시 듣게 된 건, '에코브릿지'의 <부산에 가면>(2013)부터였고, 그 다음이 '스웨덴세탁소'의 <두 손, 너에게>(2015) 였다. 최백호는 이러한 작업들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 내가 선택됐다는 게 굉장히 행운이라 생각한다"며 겸손한 태도를 취한다.


이번 앨범에서도 '후배들과의 콜라보'는 계속 됐다. 우선, 에코브릿지의 이종명(은 최백호가 가수를 시작하는 해에 태어났다)이 프로듀싱을 맡았다. 최백호는 "에코브릿지는 독특한 자기만의 세계가 있다. 우리 대중음악에서 없던 독특하고 흉내낼 수 없는 장르다. 서서히 사람 마음에 젖어드는 표현세계가 있어 나 역시 그에 빠져 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 앨범에는 뮤지컬 배우 박은태(<새들처럼>)와 '어반자카파'의 조현아(<지나간다>)가 참여했다. 앨범 재킷 디자인을 비롯해 비주얼 디렉팅은 나얼이 맡았다. 


ⓒ 인넥스트트렌드


손을 잡고 함께 거닐던 풍경 속 노래를 부르듯 내 이름 불러주던 그대여. 해 저물어 물든 석양에 등지고 춤을 추듯이 내게 손짓하던 그대. 그 아름답던 얼굴에 다시 한번 입 맞추고 늘 (언제나) 노래하듯 (노래하듯) 춤을 추듯 내 곁에서 사랑을 해주오. (<풍경> 중에서)


트렌디한 음악이 담기면서 전체적으로 신구의 조화가 이뤄진 이번 앨범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와닿았던 노래는 바로 주현미와 함께 부른 <풍경에서>였다. 에코브릿지는 "주현미와 최백호는 목소리는 극과 극이다. 그렇게 드러나는 명암이 이 노래의 백미"라고 설명했는데, 최백호의 짙은 음색과 주현미의 옥구슬이 굴러가듯 청아한 목소리가 묘하게 어우러지며 감정을 증폭시킨다. 노년(주현미를 '노년'으로 분류하긴 좀 그렇지만, 노래의 '화자'가 그러하기에 이해하길 바란다)의 듀엣이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지 감탄을 자아냈다.


에코브릿지는 한 곡을 녹음하는 데 4~10시간 걸리는 요즘 가수들과 달리 "선생님은 2시간 동안 4곡 부르고 가셨다"며 깜짝 놀랐다면서도 "그런데 그렇게 녹음한게 느낌이 너무 좋았다. 편집도 할 필요가 없었다. 음악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는 이야기를 통해 최백호와의 '협업'에 대한 느낌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최백호는 "40년 하다보니 나름 얻은 결론이 완벽한 건 없다이다."고 답했다. 이 한마디에 최백호라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의 '40년 가수 생활' 그리고 '불혹'에 대한 답이 담겨져 있는 듯 하다. 


시대를 초월해 세대를 아우르는 가수,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최백호. 그를 보면, '최백호처럼 나이 들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된다. 그는 '나이'가 주는 원숙함뿐만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젊음' 또한 지니고 있다. 후배들의 귀감이 되는 동시에 함께 작업하고 싶은 선배로 손꼽히는 그의 존재감은 대한민국 가요계에 '보물'처럼 자리잡고 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 '낭만가객' 최백호의 가수로서의 삶이 '불혹'을 넘어 '지천명'에 이르길 기대해 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