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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라기2...ing>의 해피엔딩, 현실에서도 가능하려면..

너의길을가라 2022. 3. 27.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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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출산 시기가 임박했다. 사린(박하선)은 혼자 양말도 신기 힘들만큼 배가 불렀다. 변한 건 그뿐이 아니다. 피부도 나빠졌고, 다리는 퉁퉁 부었다. "옆으로 누워도 힘들고 바로 누워도 힘들"고,  배뭉침이 심해서 여간 아픈 게 아니다. 오랜만에 엄마 영희(강애심)를 만난 사린은 "난 진짜 애가 잠깐 배불렀다가 짠하고 나오는 줄 알았"다며 임신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래도 기쁜 일이 생겼다. 사린이 기획했던 프로젝트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회사 내에서 사린의 입지가 단단해졌다. 대놓고 동료에게 프로젝트를 넘기라고 강요하던 부장도 더 이상 사린을 압박하지 않게 됐다. 물론 임신한 직원을 업무에서 배제하는 게 낫다는 부장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뀐 게 아니라는 점은 씁쓸하다. 여전히 임신한 여성은 회사 내에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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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때는 신생아라서 힘들고, 걸음마 시작하면 여기저기 사고치니까 힘들고, 말하기 시작하면 또 얼마나 떼를 쓰는지. 학교만 들어가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나 봐라. 맨날 애 때문에 동동거리고 있는 거." (도 팀장)



사린은 '워킹맘' 도 팀장(김지성)의 현실적인 이야기에 덜컥 겁부터 났다. 후배는 "역시 결혼, 임신, 출산 이 3종 세트는 여자만 손해인 거 같아요. 결혼하면 시댁 눈치 보느라 며느라기 겪고, 임신은 여자만 하니까 남자들은 얼마나 힘든지도 잘 모르잖아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을 듣던 도 팀장은 "출산하면 며느라기 3라운드가 시작"된다며 그게 바로 육아라고 해탈의 웃음을 지었다.

여전히 많은 '결정'들이 남아 있었다. 이를테면 '자연분만이냐, 제왕절개냐' 같은 선택들 말이다. 엄청난 갈등이 예고된 주제인데, <며느라기2...ing>는 또 다시 전쟁을 치르기보다 우회하고자 했다. 의사는 사린의 경우 양수가 많이 부족하고 태반이 밑으로 내려와 있어 제왕절개가 불가피하다는 소견을 밝혔다. 사린은 심란하고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최선의 선택인 만큼 받아들였다.

또, 협업했던 밀라노 회사 측에서 사린을 꼭 집어 방문을 요청한 건도 큰 무리 없는 선에서 잘 마무리됐다. 구영은 아기가 한창 엄마 손이 필요할 때라며 반대해 두 사람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흘렀다. 하지만 고민 끝에 구영이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 보자."며 유보적인 태도로 돌아섰고, 사린도 "같이 상의해보고 싶었던" 거라며 한발 물러섰다. 잠자리에 누운 두 사람은 다시 손을 맞잡았다.

"안녕, 열무야. 이제 곧 너를 만날 수 있대. 우리 열무가 자라는 동안 엄마도 조금은 더 자랐을까? 사실 엄마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옳은 건지, 내가 진짜 엄마가 될 준비가 돼 있기는 한 건지. 엄마가 되는 일은 정답이 없다는데도 다들 자기 하는 말이 맞다고들 하거든. 그래도 엄마랑 아빠는 우리만의 방법을 찾아갈 거야. 설령 그것이 모두가 말하는 정답이 아니라고 해도, 분명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아낼 거라 믿어." (민사린)



카카오TV <며느라기2...ing>가 12회 '그렇게 진짜 엄마가 된다' 편을 끝으로 종영했다. <며느라기2...ing>는 매주 300만 뷰 안팎의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시청자들의 뜨거운 공감을 자아냈다. 시즌 1이 여성들이 결혼 후 '며느리'가 되면서 겪는 가부장제의 불합리한 점들을 흥미롭게 그려냈다면, 시즌 2는 '임신' 후 벌어지는 남녀 간의 입장 차이를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무엇보다 '임신부'가 된 여성이 겪게 되는 신체적 어려움과 사회적 차별이 생생하게 묘사됐다. 일각에서는 '갈등을 조장한다'는 뻔한 레퍼토리의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며느라기2...ing>가 추구하고자 했던 건 무구영 역을 연기했던 권율의 말처럼, "서로 조금 더 이해하고, 더 아껴줄 수 있고, 화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해를 위해서는 정확히 알아야 한다.

<며느라기2...ing>는 기존의 드라마 들이 별다른 고민 없이 답습하던 '클리셰'를 과감히 배제하면서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갔다. 임신 소식을 알게 된 사린의 얼굴에 우울과 걱정이 가득해지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임신=축복'이라는 일반적 공식에서 과감히 벗어났다. 자신의 꿈을 중요시하는 직장인의 입장에서 (계획하지 않은) 임신은 청천벽력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당장 회사에서 맡고 있는 프로젝트가 떠올랐을 테고, 임신 후 상사로부터 눈총을 받고 업무에서 배제된 선배들이 생각났을 것이다. 그래서 사린은 구영처럼 마냥 신날 수가 없었다. 실제로 임신은 남성들에게 '직접적인' 고난을 야기하지 않는다. 신체적인 변화도 겪지 않고, 회사 내에서의 입지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물론 나름의 고민을 하고 책임감을 갖겠지만, 여성에 비할 바가 아니다.


<며느라기2...ing>는 임신 후 여성들이 회사에서 겪는 어려움을 적나라하게 보여줬고,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도 보여줬다. 물론 드라마는 '해피엔딩'을 그려내려고 했다. 희망을 제시하고 싶었던 것 같다. 구영은 사린의 힘든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려 노력했고, 구일(조완기)은 혜린(백혜린)의 꿈(과 연봉)을 존중하며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했다.  

드라마가 헤피엔딩인 까닭은 그만큼 현실이 고달프기 때문일 것이다. 임신,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험난한 과정은 여전히 여성에서 훨씬 많은 희생을 강요한다. 구영과 구일 같은 남편은 굉장히 드물다. 아빠의 육아휴직 사용율은 3.4%(2020년 잠정치)에 불과하다. 현실 속 많은 남편들은 치열한 고민 끝에 자신들에게 '맞는 답'을 찾기보다 이미 굳어진 답을 답습하고 있다.

"지금의 젊은 여성들은 덜 차별받고 살기 편해졌다. 그 점이 바로 요즘 젊은 여성들이 싸우는 이유다. 제도적 차별이 일부 시정되고 '남존여비' 등 차별을 정당화하던 명분이 사라졌기에 남아 있는 차별이 더욱 억압적으로 느껴지고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가증스러워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박신영 작가, <한국일보> "요즘 차별이 어딨어"..젊은 여성들은 왜 불만일까 [젠더살롱])


임신 계획이 있다고 하면 최종 면접에서 떨어질 확률이 높아지고, 상장법인 2246곳의 전체 임원 중 여성은 고작 5.2%에 불과하다. 여성은 분명 취업과 승진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 '구조적 성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윤석열 당선자의 말은 현실을 적극적으로 왜곡한다.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아등바등 뛰어 있는 여성들의 사기를 꺾는다.

선거 공약으로 부모 급여, 육아휴직 및 배우자 출산휴가 확대, 돌봄서비스 확대 등을 내세웠지만 저런 동떨어진 현실 인식으로 얼마만큼 실질적 성과를 가져올지 미지수이다. 게다가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만들겠다는 부처의 이름이 '인구가족부'라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것만 봐도 윤석열 정부가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을 알 수 있기에 앞으로의 상황은 그다지 녹록치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건 기성세대가 아니라 무수한 민사린과 무구영 들이기에, "서로 조금 더 이해하고, 더 아껴줄 수 있고, 화합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낼 것이라 희망을 갖는다. 중요한 건, 옳은 결정이 아니라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자신들에게 맞는 결정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며느라기2...ing>가 준 교훈이 하나의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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