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연예/'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톺아보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나리'를 보면서 진짜 화가 나는 대목은?

너의길을가라 2018. 10. 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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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이하 '이나리')는 논란의 여지가 큰 방송이다. 자극적인 소재 때문이다. 그래서 일까. 관련 기사에는 매번 '폐지하라'는 내용의 댓글이 달리곤 한다. 이유는 '갈등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시누이와 올케 간의 대립을 부추겨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주요 골자다. 솔직히 '어떻게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위적인 설정들이 눈에 띤다.


그런데 댓글을 또 찬찬히 읽어보면 '나도 그런 일을 겪었다', '꼭 내 얘기 같다.'는 경험담이 심심찮게 보인다. 열렬한 공감과 분노를 표현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 깜짝 놀라게 된다. 그쯤되면 '아, 이게 현실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구나!', '많은 사람들이 겪었거나 겪고 있거나 앞으로 겪을 상황이구나!'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프로그램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아닌게 아니라 '이나리'를 보고 있노라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한숨도 나고, 짜증도 나고, 혈압도 오른다. 그런데 과연 이 프로그램이 갈등을 '유발'하고 있는 것일까? 드러나지 않았고, 드러내지 않았을 뿐 이미 갈등은 상존해 있었던 문제였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미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일을 마냥 외면하는 게 정답은 아닐 것이다. 



'이나리'를 보면서 가장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은 어떤 상황이나 사건들이 아니다. 오히려 '호칭(呼稱)'이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부를 때, 시누이가 올케를 부를 때의 호칭 말이다. 가령, 소이의 시어머니는 "야!", "너!"와 같은 호칭으로 며느리를 부른다(고 쓰고 '쪼아댄다'고 읽는다). 또, 시즈카의 시누이도 시즈카에게 그리 부른다. 어른이라 괜찮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이는 명백한 하대(下待)이다. 존중이 담겨있지 않다. 


상황은 설정일 수 있다. 제작진 측에서 일정한 캐릭터를 요구하고, 출연자들이 그에 맞게 연기를 할 수도 있다. 이미 하차했던 김재욱-박세미 부부가 증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호칭은 꾸며낸 것이 아닐 게다. 카메라가 없는 평상시에도 그리 불러 왔다는 이야기다. 이건 매우 심각한 이야기다. 어째서 '며느리'는 시집 식구들로부터 하대를 받아야 하는가? 왜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존재가 돼야 하는가?


"남편의 동생은 나이가 한창 어려도 '도련님, 서방님, 아가씨'로 존칭을 쓰고, 아내의 동생은 존칭을 쓰지 않는다, 아내는 남편의 집을 시댁이라 하고, 남편은 아내의 집을 처가라고 하는데 이런 것도 차별이다." 김숙자 여성가족부 가족정책과장



어떤 '이름'으로 부르느냐는 건 매우 중요한 문제다. 불리게 되는 상대방에게도 민감한 일이겠지만, 발화자(發話者)의 자존감과도 연결이 되므로 간단히 볼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 문화에는 '차별적 호칭'이 알게 모르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가령, 여성은 결혼 후 남편의 동생에게 '도련님', '아가씨'라는 존칭을 사용하게 되지만, 남성은 아내의 동생을 '처남', '처제'로 부른다. 대표적인 차별적 호칭이다. 


이는 불합리할 뿐만 아니라 성평등에도 어긋한다. 애초에 '도련님'이나 '아가씨'라는 호칭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이런 차별적 호칭이 '표준 언어 예절'(국립국어원, 2012년)로 규정돼 있다는 게 부끄럽고 한심스러운 일이다. 개선을 요구하는 여론이 확산되자 정부는 개선의 필요성을 인정했고, 제3차건강가족기본계획(2016~2020) 보완 방안에 이와 관련한 내용을 포함시켰다. 


사회적인 관행으로 뿌리내린 차별적 용어와 '이나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며느리'를 함부로 대하는 시집 식구들의 태도는 일맥상통한다. '시댁'에 가는 며느리가 사실상 '식모' 노릇을 하게 되고, '처가'에 가는 사위가 '손님'으로 대접받는 건 그 용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도대체 며느리(올케)를 향해 "야!", "너!"라고 하대하듯 말할 수 있는 '권능(權能)'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는 여성이 결혼을 한 후 며느리라는 역할을 부여받으면서 어떤 위치에 놓이게 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부디 이름을 불러주자. 존중하자. 그러면 저절로 당신에게로 가서 꽃이 될 테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나리'를 텍스트로 읽을 때, 우리가 집중해야 할 건 이런 실질적인 '리얼함' 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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