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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의 며느리 이현승을 당황시킨 집들이, 자연분만과 다산 강요까지..

너의길을가라 2018. 12. 7.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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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났다. 어떡해? 몇 분이셔?"


아내 이현승은 걱정이 한가득이다. 다름아니라 '집들이' 때문이다. 지난 번에 현승의 집에 방문했던 시아버지가 "와서 보니까 집들이 해도 되겠는데? 언제 집들이 안 하냐?"며 거듭 강요했던 탓에 성사된 집들이다. 남편 윤현상은 "임신 중이니까 힘들면 안 돼서."라며 1차 방어에 나섰지만, 시아버지는 "우리가 일찍 와서 몇 가지만 간단하게 해서 식사 한번 하고."라며 간단히 무력화 시켰다.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MC 권오중은 "집들이를 부부가 결정해야 하는데, 대부분이 시부모님, 여러분들이 권하시는 것 같아요."라고 불합리한 점을 언급했다. 이상하게도 대한민국에선 부부가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가족의 개입이 지나치게 잦고, 그 범위도 너무 넓다. 사실상 모든 일에 '간섭'하고 있다고 보면 될 텐데, 이러한 거리 유지의 실패는 갈등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집들이의 의사결정의 주체가 누구인지 고민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원적인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미디어 평론가 김선영은 "일단 우리가 집들이를 하는 목적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면서 "남들이 다 하는 문화라고 해서 또 오랫동안 지켜온 전통적인 문화라고 해서 그걸 따를 필요는 없어요. 오히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보여주려는 의식이 되다 보니까 부담이 되는 거"라고 지적했다.



무엇이 됐든 간에 그 실질적인 의미, 본연의 가치를 잃어버렸다면 그 존재 의의를 고민해 봐야 한다. 집들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기쁜 마음에서 초대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 의식(意識)적인 의식(儀式)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아무리 민족의례의 성격이 있는 행사라 할지라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필요성과 효용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결국 시아버지의 독단적인 결정에 의해 집들이는 '강제'됐고, 현상-현승 부부는 부담감을 잔뜩 짊어지게 됐다. 당장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집 안에 손님을 들인다는 것 자체부터 스트레스였다. 그것도 시댁의 어르신들을 모시는 자리가 아닌가. 물론 압박을 훨씬 더 크게 받는 건 며느리인 현승일 수밖에 없었다. 남편 현상의 "그냥 하면 돼."라는 속편한 소리가 현승의 귀에 들어올 리 없다. 


무엇보다 현승이 만삭의 인신부라는 사실이 간과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시아버지가 혼자 장까지 보고 요리까지 전담해서 했지만, 그걸 지켜봐야 하는 며느리의 불편함과 고단함은 무시됐다. '저런 시아버지가 어디 있어? 복에 겨운 소리 하지 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배가 잔뜩 불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며느리가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왜 모르는가?



"사실 저는 제가 임심하기 전까지는 임산부가 이렇게 불편하고 힘들 거라는 생각을 못 했어요. 그래서 저는 생각한 게 남편도 그렇고 아버님도 그렇게 임신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얼마나 불편할지 생각은 하지만, 정작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결국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도대체 왜 만삭의 며느리에게 집들이를 강요해야만 했을까? 이지혜 역시 "같은 임산부로서 사실 홀몸이 아닌 상황에서 꼭 집들이를 해야 했었나"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시아버지와 남편은 며느리를 배려한답시고 계속 쉬라고 말했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 어디 그러기가 쉬운 일인가. 그럼 애초부터 그런 자리를 만들지 않았으면 될 일이 아닌가, 라고 대신 따져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현승은 집들이 내내 집안 어르신들의 살뜰한 조언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됐다. "그런데 웬만하면 순산하는 게 좋아. 자연분만이.", "몸 회복이 더 잘돼, 자연분만하면." "첫애라서 의외로 빨리 낳는 사람도 있더라고." 현상은 "이 사람 컨디션에 맞춰서 해야 되는 게 1번이고."라고 대응했지만, 현승의 얼굴엔 이미 미소가 사라진 뒤였다. 도대체 왜 분만(分娩)의 방식까지 참견하는 걸까?



결정타는 시아버지가 날렸다. 그토록 세심히 잘 도와주시던 시아버지는 "좌우지간 애들은 어떻게 하든지 둘 내지 셋까지면 더 좋고.."라며 며느리에게 다산을 요구했다. 현승의 얼굴은 또 한번 굳어졌다. 만약 시아버지가 임신을 해서 그 불편함을 경험했더라면, 출산의 고통을 겪어봤더라면 "둘 내지 셋까지면 더 좋"다는 말을 그리 쉽게 내뱉을 수 있었을까? 결코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시아버지의 폭탄 발언으로 이야기의 주제는 그쪽으로 옮겨갔고, 이때다 싶었는지 시댁 어르신들은 "많기는 뭐가 많아.",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피붙이야.", "그래서 하나 더 낳고 싶은 생각 있어?", "우리 생각으로는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야."라며 한마디씩 덧붙였다. 아무리 '가족'이라 할지라도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제멋대로 판단하고 참견하는 건 무조건 잘못이다. 무엇보다 여성의 몸은 공공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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