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도서정가제 1년, 당신은 몇 권의 책을 구입했습니까?

너의길을가라 2015. 11. 2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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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동안 몇 권의 책을 구입하셨습니까?"


'과도한 책값 인하 경쟁을 막고, 중·소형 출판사와 동네서점을 살리겠다'며 책값 할인율을 최대 15%로 제한한 새[新] 도서정가제가 지난 21일 도입 1주년을 맞았다. 과연 원래의 취지에 맞는 결과를 얻었을까? 고작 1년이라는 짧은 기간만으로 성공 혹은 실패를 규정한다는 건 섣부른 일이지만, 중간 평가를 통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는지는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책값 거품이 빠진다고 했으나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정가는 그대로인데 할인율이 낮아지면서 오히려 도서 구입비가 늘었다. 평소 할인이 많이 된 중고 책을 여러 권 사다놓고 읽곤 했는데 지금은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책 구입량이 절반 정도로 줄었다." (소비자 김선미(35·여)씨) , <뉴시스>, [시선]도서정가제 시행 1년, 성적은?


"독자에게 돌아온 혜택이 뭔지 잘 모르겠다. 부담만 늘어난 것 아니냐." (월 2회 이상 책을 구입한다는 독자 차상원씨) , <조선일보>, 도서정가제 1년.. 누가 혜택 받았나



우선, 독자들의 반응은 '불만'으로 가득차 있다. <뉴시스>와 인터뷰한 소비자 김선미 씨는 "책값 거품이 빠진다고 했으나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오히려 도서 구입비가 늘었"다고 말했다. 신간(新刊)을 비롯해 구간(舊刊)도 최대 할인률 15%의 적용을 받다보니, 아무래도 신간을 위주로 구입을 하게 되고, '반값 할인'과 같은 높은 할인율이 적용됐던 구간에는 차마 손이 가지 않게 됐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조선일보>가 인터뷰한 차상원 씨도 "독자에게 돌아온 혜택이 뭔지 잘 모르겠"다며 묵은 불평을 쏟아냈다. 물론 혜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21일부터 올해 10월 31일까지 출간된 신간 단행본의 평균 정가는 1만 7,916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만 9,106원에 비해 6.2%p(1,190원) 하락했다. 수치상으로는 가격이 떨어졌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피부에 와닿을 만큼의 변화였는지는 의문스럽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신간 도서의 가격 하락이 도서정가제 덕분이라며 자화자찬(自畵自讚)을 쏟아내고 있다. 게다가 지역 중소 서점의 경영 여건도 개선됐고, 건전한 출판 유통 질서가 정립 됐다나? 똑같은 조건(엄밀히 말하면 비교적 적은 차이의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동네 서점들의 숨통이 트인 것은 사실이지만, 문체부가 자찬을 늘어놓을 만큼 현장의 상황이 밝아보이진 않은 것 같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신간 가격은 다소 낮아졌지만, 가구당 월평균 도서구입비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독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월 누계 평균 서적구입비(서적구입비 누계를 분기 수로 나눠 산출)는 1만 7,402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3%p 줄었다. 분기 별로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도서구입비의 감소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2015년 1분기의 월평균 서적구입비는 2만 2,123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8.0% 감소했고, 2015년 2분기의 월평균 서적구입비는 1만 3,330원으로 지난해 2분기보다 13.1% 감소했다. 2015년 3분기의 월평균 서적구입비는 1만 6,752원으로 지난해 3분기보다 4.6% 감소하여 3분기 최저치를 기록했다. 3분기에 다소 회복되긴 했지만, 2분기의 1만 3,330원은 2003년 이래 전분기를 통틀어 최저치다.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독자들은 '손해'를 본 것은 분명해보인다. 더 이상 저렴한 가격에 책을 구입해서 읽지 못하게 되는 것이야말로 독자로서는 가장 큰 손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출판사 쪽의 분위기는 어떨까? 단행본 출판사 모임인 한국출판인회의는 전체 114개 출판사 중 71%가 매출이 작년보다 줄었다고 밝혔다. 그야말로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인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8개 상장기업 출판사의 누적매출액은 2.1% 감소했고, 영어이익도 9.7% 줄었다. 


죄다 '울상'을 짓고 있는 상황에서 하지만 유일하게 '미소'를 지은 쪽은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이다. 특히 온라인서점은 '대박'을 터뜨렸다. 온라인서점 YES24의 경우,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128억 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46.5%p 급증했다.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 "박익순 소장은 알라딘과 인터넷 교보문고 등을 포함한 대형 온라인서점들 또한 도서 판매량과 매출액이 다소 감소했더라도 영업이익은 큰 폭으로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도서정가제 1년의 성적표를 종합해보면, '대형서점은 웃고 출판사와 독자는 울었다'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대안이 있을까?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편법적인 할인의 여지까지 제거한 '완전 도서정가제'가 대안이"라고 말한다. 한국출판인회의의 조사에서도 60.5%가 '완전 도서정가제를 선호했다.


하지만 독자들의 부담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책값 거품'을 빼야만 한다. 할인을 고려해서 애초에 높게 측정된 책값을 낮추는 등 양질의 책을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하는 구조가 마련되어야만 한다. 도서정가제를 되돌릴 수 없다면,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보완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제도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정부 차원의 고민이 요구된다. 장기적으로 출판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독서문화를 친숙하게 만드는 등 지원 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


출판인회의 윤철회 회장은 "문체부가 제도 도입 전 도서관 예산을 늘리기로 했으나 오히려 줄었다"고 지적한다. 문체부가 자화자찬을 늘어놓기 이전에 자신들이 했던 약속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서두에서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자. "지난 1년 동안 몇 권의 책을 구입하셨습니까?"



올해 온라인 서점에서 총 5권의 책을 구입했고, 총 57,870원을 지출했다. 선물을 하기 위해 급하게 동네 서점에 들러 산 책은 5권 정도이고, 가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대략 온라인 서점에서 결제한 것과 비슷한 금액을 썼을 것이다. 할인이 되지 않으니(간혹 현금으로 결제를 하면 10%를 빼주는 동네 서점도 있다) 오히려 조금 더 지불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봤자 월 평균으로 따지면 1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다보니 책을 구입하는 횟수나 비용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그 책임을 오로지 '도서정가제'로 돌릴 수는 없지만, 할인의 폭이 큰 구간의 경우에 조금 과감하게 '카트'에 담았던 예전에 비하면 소비심리가 위축된 것은 분명하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면 아무래도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마냥 독자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는 없는 일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공존'의 길을 지향해야 한다. 동네 서점이 살 길도 마련해주어야 하고, 출판업계의 답답함도 풀어주어야 한다. 쉽사리 눈에 띄지 않지만, 모든 것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독자로서의 이익을 지키는 것만큼 '책'을 위한 고민과 양보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 양보는 명확한 청사진이 제시됐을 때 유효한 것이다. 도서정가제 시행 1년의 아쉬움이 더 큰 발걸음을 위한 도약의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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