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대통령은 지금 꼭 휴가를 떠났어야 했을까?

너의길을가라 2014. 7. 2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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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간의 방콕 휴가. 필자의 휴가 계획이 아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여름 휴가 계획이다. 어제 하루동안 박 대통령의 여름 휴가를 놓고 여야의 한바탕 공방이 있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기간은 28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5일 간이며, 장소는 청와대에서 조용히 보내는 것으로 결정됐다.


매년 있는 대통령의 휴가가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문제는 시점이다. 통상적으로 역대 대통령들은 7월 말에서 8월 초에 여름 휴가를 떠났다. 따라서 일반적인 의미의 시점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현재 대한민국은 '세월호 참사'의 상흔이 아물기는커녕 여전히 피가 콸콸 나오는 아픔을 겪고 있기에 대통령의 휴가 시점이 문제 되고 있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유기홍 수석대변인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유족들이 단식하다 줄줄이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는데 박 대통령이 휴가를 가실 땐가"라며 비판했다. 또, "특별법 제정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에 박 대통령이 답이 없어 야당이 29일까지 특별법을 처리하자 제안했는데 휴가 때문에 특별법 처리가 지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제발 대통령과 청와대는 정신 차리기 바란다"면서 작정하고 쓴소리를 했다.


한편, 여당인 새누리당은 재빠르게 '쉴드'를 치고 나섰다. 민현주 대변인은 "국민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지는 데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과 함께 휴가를 활성화하자는 뜻에서 관저에서 휴가를 보낸다. 야당은 침소봉대하고 민의를 교란시키지 말라"며 대통령의 조용한 휴가를 변호했다. 대통령이 청와대 내에서 보내는 조용한 휴가를 선택한 데에는 나름대로 고심에 고심을 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애초에 휴가를 가느냐 마느냐를 두고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는 고민을 했을 것이다.


여야의 대립으로 세월호 특별법이 표류 상태에 놓여 있고, 이를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유가족들은 곡기를 끊고 금식에 나서기도 하고, 십자가를 메고 단원고를 출발해 무려 400여 km를 걸어 진도를 찾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휴가는 자칫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대통령의 휴가가 정상화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 됐다.



<머니투데이>의 경우에는 박근혜 대통령 휴가 '정상화'가 필요한 이유 라는 기사를 통해 "올해는 박 대통령도 휴가다운 휴가를 떠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논지를 펼치기도 했다. 논거는 간단하다. 대통령에게도 재충전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장관과 참모진들도 긴장을 풀고 쉴 수 있으므로 '적당한 휴가는 빡빡한 국정의 윤활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정부가 앞장서서 여름 휴가를 떠나면 100만 명이 넘는 공무원과 공기업 임직원들도 휴가를 통해 돈을 풀 테니 '내수 활성화'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참고로 지난 9일 국무총리실은 정부 각 부처에 "공무원들이 7~8월 여름휴가 기간에 해외여행을 가지 않도록 하라"는 시대착오적 발상의 지시를 내린 바 있다. 이런 양 쪽의 의견을 수렴해서 청와대에서의 조용한 휴가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절충안인 것이다.



독 일의 메르켈 총리는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3주 간의 긴 휴가를 떠나고 업무에 복귀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매사추세츠주 마서스 비니어드에서 다음 달 9일부터 16일 동안 여름 휴가를 보낼 예정이다. 지난 겨울에는 하와이에서 17일 간의 휴가를 보내기도 했다. 이처럼 해외의 국정 지도자에 비하면 박 대통령의 휴가는 5일로 훨씬 짧은 일정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의 휴가를 정상화하는 일은 필요한 일이다. <머니투데이>의 주장처럼 국정 운영에도 윤활유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정상화가 지금 이뤄져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선 역시 의문이다. 세월호 특별법 처리를 놓고 여야가 첨예한 대립을 벌이고 있고, 세월호 유족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대통령은 느긋하게 휴가를 즐기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통령이 휴가 일정을 시작함에 따라 김기춘 비서실장,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윤두현 홍보수석, 김영한 민정수석, 민경욱 대변인 등 청와대의 핵심 비서진들이 모두 휴가를 떠났다. 결국 청와대는 이번 세월호 특별법 국면에서 발을 완전히 뺀 것이다.


지난 5월 16일, 청와대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난 박 대통령은 "유가족 여러분의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저도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검·경 수사를 하고 있는 것 이외에도 진상규명을 (따로) 하고, 특검도 해야 된다"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랬던 박 대통령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시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이미 박 대통령은 휴가 일정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 여름 휴가가 무엇으로 채워질지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휴가 이후 집권 2년차 후반기 정국 구상을 발표할 것이다. 또, 인사 문제에 대해서도 답을 내놓을 것이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비롯해서 청와대 비서관 3명의 자리가 비어있기 때문이다. 또, 사체로 발견된 유병언 전 회장의 수사에 대한 책임을 묻는 문제도 고민거리일 것이다. 과연 어디까지 문책(경질)할 것인지도 관심사다. 그런데 문득 궁금하다. 그 가운데 '국민'이 있긴 한 것일까?


지난 6월 지방선거가 끝난 이후 박원순 서울시장은 부인 강난희 씨와 조카만 동행한 채 직접 차를 몰고 진도를 찾았다. 애초에 계획되어 있던 가족여행을 취소하고,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러 간 것이다. 이 자리에서 박 시장은 실종자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자원봉사자 등을 격려했다. 휴가기간 동안 박 대통령이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와 팽목항을 찾고, 진도체육관에 남아 있는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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