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당선무효 위기? 누구의 관점에서 쓰인 기사인가?

너의길을가라 2014. 7. 25. 08:05
반응형


' 외부로부터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물체의 운동 상태는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관성의 법칙'은 단지 물리학에만 국한된 개념은 아니다. 인간의 감정과 행동에도 관성의 법칙은 어김없이 적용이 되는데, 사실상 우리는 '관성의 법칙'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기자에게도 '관성의 법칙'은 그 위력을 발휘하는데,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없으면 기존의 것들을 답습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만다. 기존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기존의 방식대로 기사를 쓰고, 기존에 써왔던 제목들을 고스란히 '베껴' 쓰게 되는 것이다.


사 실 '일'이라는 것이 반복되다보면 타성에 젖기 마련이다. '기자'라고 다르겠는가? '기자정신'이라는 말이 사라진 지 오래다. 우후죽순 생겨난 인터넷 매체들 덕분에 기자들은 '직장인'이 되어 버렸다. 메이저 언론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양질의 기사를 써나가기보다는 '붙여넣기'가 더욱 익숙한 시대. 씁쓸하지만 이것이 현실이고, 이런 현실에 대해 투정이나 부리는 것이 필자와 같은 블로거들의 몫이 되어 버렸다.



- 새누리당 조현룡 의원 -


'새누리 조현룡 의원, 당선무효 위기' <아시아경제>


우리는 흔히 이런 제목의 기사를 자주 접하곤 한다. 이 해를 돕기 위해 기사의 내용을 조금 살펴보자. 조 의원의 사무장 겸 회계책임자로 일해오던 안 씨는 선거비용 초과지출과 불법선거운동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회계책임자가 선거범죄로 징역형 또는 300만 원 이상의 벌금을 선고받게 되면 후보자의 당선이 무효가 된다.


안 씨는 1심에서 선거비용 초과지출 부분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대로 1심이 확정되면 조현룡 의원은 의원직을 내놓아야 했다. 하지만 2심에서는 '꼼수'와 같은 판결이 내려졌다. 선거비용 초과지출 부분에 대해서 벌금 250만 원이 선고됐고, 불법선거운동 혐의에 대해서는 벌금 700만 원이 선고됐다. 


공 직선거법 위반 범죄를 당선무효형 대상범죄와 비당선무효현 대상범죄로 나누어 놓은 것 자체부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법조계의 입맛에 따라 사건을 '쪼개서' 기소하고 판결을 내리는 것이 가능해진다. 조현룡 의원의 경우처럼 불법선거운동은 비당선무효형 대상범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아무리 벌금이 많이 내려져도 의원직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공직선거법으로 기소된 사건들은 대부분이 이런 흐름으로 흘러간다. 300만 원이 당선 무효인데, 250만 원을 선고했다는 건 의심스러운 대목 아닌가? 그러나 대법원은 "안씨의 일부 범행은 당선무효형 대상 범죄로 봐야 한"다면서 이 사건을 부산고법에 환송 조치했다. 기 존에 비당선무효 대상범죄로 분류됐던 것이 당선무효 대상 범죄에 포함되게 됐으니, 250만 원보다는 많은 벌금이 내려질 것은 당연해보인다. 사실상 조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물론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는 의원직을 유지하게 된다.


기사의 내용을 살피다보니 '화딱지'가 나서 이야기가 조금 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보자. '새누리 조현룡 의원, 당선무효 위기'라는 기사의 제목이 뭐가 문제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자도 이전에는 별다른 문제 의식을 갖지 못했다. 이런 기사를 접하면 "아, 아무개가 선거법 위반을 한 모양이네. 하여튼 정치인들 문제야, 문제!" 정도의 반응을 보였을 뿐이었다.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목에 쓰인 '위기'라는 말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가 '위기'라는 거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선거법을 위반한 국회의원의 입장에서 기사의 제목을 단 것이었다. 조현룡 의원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국회의원직을 상실할 수도 있는 상황이 일생일대의 '위기'로 여겨질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정치적 생명을 비롯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국민'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과연 조현룡 의원이 선거법을 위반(정확히는 조현룡 의원의 회계책임자가 선거법위반)해서 의원직을 상실하는 것이 '위기'일까? 선거법을 위반한 사람이 당선무효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오히려 위법을 저지른 사람이 국회의원에 당선돼 온갖 특권을 누리고 있었던 것에 대해 국민의 입장에서는 화가 나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기자가 진심으로 조현룡 의원의 입장에 빙의해서 기사의 제목을 단 것은 아닐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당선무효'와 '위기' 는 바늘가는 데 실 가는 수준의 콤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무개가 당선위기의 위기에 처했다'는 식의 기사는 언론계에 이미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 온 '관성'인 것다. 그러한 관성이 지금까지 별다른 문제 의식 없이 이어져 온 것이다.


똑 같은 팩트라도 어느 관점에서 바라보느냐, 어떤 관점을 투영하는냐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과 맥락이 펼쳐진다. 지금까지 선출직 공직자들의 '당선무효'를 다루는 기자들의 관점은 철저히 '선출직 공직자'의 것에 머물러 있었다. 이제부터라도 '당선무효'와 '위기'가 함께 기사의 제목에 오르는 씁쓸한 일은 없어지길 바란다.


기 자들에게도 요구한다. '관성의 법칙'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따라왔던 기존의 것들에 대해 과감히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적 사고를 통해 자신의 관점을 점검하길 바란다. 무엇보다 '국민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봐주길 바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