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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게 없는 <병원선>의 항로는 여전히 어둡다

너의길을가라 2017. 9. 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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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지만, 2주차 방송에서도 달라진 게 없었다. 하지원의 첫 의학 드라마 출연으로 기대를 모았던 MBC <병원선>은 시작부터 '진부하다', '식상하다'는 혹평을 받았다. <병원선>은 대부분의 메디컬 드라마가 그러하듯, '휴먼 드라마'와 '청춘 드라마'를 적절히 섞어 녹여내고자 했다. 의료 혜택을 받기 힘든 외딴 지역의 섬들을 돌아다니며 진료하는 병원선이라는 소재는 그 자체로 '휴먼 드라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철없는 군의관(공중보건의)들의 성장과 송은재(하지원)의 변화는 '청춘 드라마'의 속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러니까 '재료'는 더할나위 없었던 셈이다.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것들만 골고루 집어넣었으니, 잘 버무리기만 하면 여러 포인트에서 감동을 전달할 수 있었으리라. 그런데 문제가 여러군데에서 터져 버렸다. 드라마 속 캐릭터는 진부했고, 배우들의 연기도 어색했다. 기본적으로 캐릭터 분석과 연기력의 부족이 주원인이겠지만, 문어체가 많은 대사도 단단히 한몫 했다. 배우들의 입에도 달라붙지 않는 그 딱딱한 문체들이 시청자들의 귀에 착착 감길 리가 있겠는가. 


아이돌 출신 남자 주인공의 무게 없는 연기도 아쉬웠지만, 무게감에 짓눌린 하지원의 그것도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다. 지나치게 딱딱했고 경직돼 있었다. 그가 맡은 송은재가 냉철한 의사라는 걸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몰입을 방해하는 수준이었다. 물론 감정 연기를 할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을 선보이며 진가를 드러냈지만, 이번에는 이질적인 모습을 이해시킬 '대본'과 '연출'이 문제를 드러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촌스러웠는데, 일각에서는 '90년대 메디컬드라마'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간호사 폄하 논란'까지 더해져 <병원선>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병원선>에서 표고은(정경순)을 제외한 간호사들은 무능한 존재로 그려졌다. 재벌 2세 장성호(조현재)가 송은재를 보기 위해 '코드블루'를 떨어뜨리라 하자 그 지시에 따르고, 응급 상황에서 남은 마취제를 떨어뜨린다. 또, 응급 환자를 옮기는 과정에서 짧은 치마를 입고 등장한다. 간호사 유아림 역을 맡은 걸그룹 AOA의 민아도 몸매를 뽐내긴 마찬가지다. 결국 송은재로부터 "유아림 선생은 부실하고요"라고 훈계를 받기에 이른다.


'의사'가 주인공인 드라마라고 하더라도 응급 환자를 눈앞에 두고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간호사를 만들어 낼 필요는 없다. 또, 애초에 상하관계가 아닌 의사와 간호사의 관계를 왜곡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누구보다 전문성을 갖추고 묵묵히 환자들을 지키고 있는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모욕이다. 결국 <병원선> 측은 7화부터 간호사 의상을 바지로 변경할 것이라면서 '간호사 논란'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즉각적인 반성은 좋지만, 이런 논란들이 초반부터 제기된다는 건 그만큼 드라마의 '준비'가 부족했다는 걸 의미한다.

 

 

지난 6일 방송된 5회에서는 송은재가 실력 발휘를 제대로 했다. 병원선의 선원인 강정호(송지호)가 짐을 옮기던 중 철제 문에 팔이 끼어 부상을 입자, 괴사를 막기 위해 망설임 없이 손도끼로 팔을 절단한 후 접합수술을 성공한 것이다. 이어진 6회에서는 송은재가 병원선에 오르게 된 이유가 밝혀졌다. 스승이자 외과과장인 김도훈(전노민)이 자신의 의료 과실을 덮으려 하자 "환자에게 사기를 칠 수는 없다"며 진실을 밝히다가 병원에서 쫓겨났던 것이다. 


하지만 병원선에서의 수술은 현실성이 떨어졌고, 그래서인지 긴장감도 전혀 없었다. 또, 꽁꽁 숨겨왔던 송은재의 '비밀'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범위의 것이라 시청자들의 기대치를 만족시키기 어려웠다. 또, 환영회 겸 회식 장면은 불필요해 보였고, 그 연출도 억지스러웠다. 뻔하디 뻔한 배경음악은 드라마에 촌스러움을 더했고, 전형적인 연기로 일관하는 조연 배우들도 분위기를 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처음에는 하지원의 개인기가 <병원선>을 억지로 끌고 갈 거라 여겼지만, 그마저도  거친 물살에 허우적대고 있어 버거워 보인다.

 


하지원의 소속사 해와달엔터테인먼트는 "돌아오는 방송에서는 송은재의 진가와 이를 반영하는 하지원의 울림 있는 연기가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다. 눈을 뗄 수 없이 몰아치는 전개와 송은재의 활약을 기대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선 <병원선>의 항해를 지켜보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올해 초 종영한 SBS <낭만닥터 김사부>를 통해 이미 의학 드라마에 대한 눈이 한껏 높아져 있기 때문이다. 그 울림과 감동이 워낙 컸던 터라 <병원선>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차라리 tvN <명불허전>이 보여주고 있는 번뜩이는 참신함이 있었다면 모를까. 한석규도 없고, 김남길도 없는 <병원선>엔 기댈 구석이 없어 난감하기만 하다. 달라진 게 없는 <병원선>의 항로는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경쟁작들이 워낙 바닥을 기고 있어 시청률 1위를 사수하는 건 어렵지 않아 보이지만, 이런 평가라면 부끄러운 1위라는 오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과연 <병원선>은 반전의 키를 제시할 수 있을까. 그 돌파구가 어설픈 러브 라인은 아니기를 바란다. 가라앉는 한이 있더라도 '정공법'으로 승부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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