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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성범죄' 편견 꼬집은 '알쓸범잡2', '성적 수치심' 대신 '성적 빡치심'을 외쳤다

너의길을가라 2022. 2. 2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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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방송된 tvN <알쓸범잡2> 7회는 녹차의 고장 전라남도 보성을 찾았다. 윤종신, 권일용, 김상욱, 장강명, 서혜진은 격동의 근현대사를 품은 보성을 소개하면서 다양한 '범죄'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보성에서 발생했던 '어부 살인사건'을 다뤘고, 김상욱 교수는 '독살'을 주제로 '방사능 홍차 암살사건' 등을 파헤쳤다. 장강명 작가는 '문화재 반환사건'을 담당했다.

서혜진 변호사는 '노인 범죄'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앞서 권일용이 다뤘던 '어부 살인사건'의 범인이 70대 노인(이 20대 성인남녀 4명을 살해)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노인 범죄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설명했다. 이는 통계 자료도 뒷받침하고 있는 팩트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0년까지 노인의 강력범죄 발생비 추이는 무려 144.4%나 증가했다.

대표적인 노인 강력범죄 사건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숭례문 방화사건(2008년)의 범인은 68세의 노인이었고, 봉화 엽총 난사 사건(2018년)의 범인은 77세 노인이었다. 노인 범죄가 급증하는 이유는 그만큼 노인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면서 '욜드(YOLD)', 그러니까 젊은 노인(YOUNG OLD)이 많아졌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노인의 기준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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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비해 노인들은 젊어졌지만, 노인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낡아있다. 서 변호사는 낡은 시각이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 '노인 성범죄'라며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 사건'을 예로 들었다. 당시 오거돈 전 시장 측 측 변호인은 최종 변론에서 "70대는 양성평등, 성인지 감수성이 약합니다. 힘없고 병든 노인의 미친 짓으로 여기시고 용서해주세요"라며 발언했다.

이에 대해 선고 형량을 낮게 받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서 변호사는 노인 피고인이 경우 이런 변론 방법이 흔하다고 지적했다. 세간의 비난을 받을 것이라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에도 이와 같은 변론 방법을 선택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통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노인이라는 점이 감경 사유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노인에 대한 온정적인 시각에 기대는 것이다.

"판결문에 맥락 없이 '고령임 점' 이런 문구가 들어온다면 피해자는 이 판결을 이해할 수 없어요." (서혜진 변호사)


'고령'이라는 이유로 감경된 사례를 살펴보자. 60대 중학교 체육교사가 볼링을 가르쳐 주겠다며 중학교 1학년 2명을 성추행한 사건에서 1심과 2심 모두 벌금 천만 원을 선고했다. 법원은 '변화하는 시대에 요구되는 성인지 감수성이 다소 부족한 상태에서 경솔한 행동'이라고 양형의 이유를 밝혔다. 또, 그네 타던 8세 여아를 강제추행한 70대 노인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케이스도 있다.


이렇듯 법원의 안일한 판단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었다. 범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7세 여아를 성추행했다. 결국 재범이 기회를 준 격이다. 서 변호사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노인도 있고, 나이라는 권력을 범행에 활용하거나 노인에 대한 온정적 시각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것들을 잘 구분해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는 양형을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반면, 노인이 피해자인 경우도 있다. 서 변호사는 피해자가 노인이라 생기는 편견도 존재하는데, 특히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노인일 경우 편견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61세 이상 노인 대상 성범죄 발생 현황(경찰통계연보)을 살펴보면, 2020년에 798건이 발생했다. 2016년 560건에 비해 증가한 수치로, 매일 2명 이상 노인 성범죄가 발생하는 것이다.

고령의 성폭력 피해자는 신고에 상당히 소극적이다. '수사 기관에서 나의 말을 믿어줄까?'라며 스스로 검열하게 되고, 그런 상황에서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주저하게 된다. 특히 가해자가 훨씬 젊은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서 변호사는 <69세>라는 영화를 소개했는데, 이 작품은 노인 성폭력 피해를 최초로 다룬 영화로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사건의 개요를 이러하다. 하지정맥류 수술을 하고 입원한 60대 여성이 붕대 처치실에서 30대 남자 간호조무사에게 강간 피해를 당했다. 피해자는 남편과 결혼을 앞둔 딸이 있어 곧바로 신고하지 못했다. 얼마 후 가족들에게 먼저 피해를 알렸고, 남편이 병원을 찾아가 가해자에게 범행을 시인한다는 자인서를 받았다. 그런데 이틀 뒤 가해자는 피해자가 원해서 관계를 가졌다고 입장을 바꿨다.

"늙은 꽃뱀이다."
"젊은 남자랑 성관계 했으면 감사해야지."



피해자는 경찰에 신고를 결심했다. 하지만 그후 악성 소문에 시달리게 된다. 수많은 편견들로 인해 고통받았다. '피해자의 저항 의지가 약해 성폭행으로 보기 미심쩍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의 수사가 이뤄졌고, 급기야 현장검증까지 하게 됐다. 하지만 당시 몸이 볼편했던 피해자는 비명을 지르다 가해자가 입을 막는 바람에 의치가 부러질 정도로 저항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네 번째 요청만에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물론 구속 여부와 유무죄와 상관 없는 경우가 많지만, '구속이 기가됐다'는 사실이 아려지며 소문은 점점 더 커져갔다. 결국 피해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유서에는 '내가 아이였거나 젊었으면 그놈은 구속됐겠지. 그놈이 나이가 많았다면 나쁜 소문도 안 났을 거야'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60대 여성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는 과정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끔찍했을까. 장강명 작가는 '에이지즘(연령 차별주의)'라는 용어를 언급하며 '그 사람이 느끼는 피해는 나이와 상관 없다'고 말했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나이가 든 사람은 수치심을 덜 느낄 것이라는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는 노인을 무성적(無性的존재로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수치심은 누가 느껴야 될 감정이냐. 가해자들이 범법행위를 했기 때문에 느껴야 하는 감정이 수치심이거든요. 성폭력 사건에서는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느끼도록 법률 체계나 법원의 판결 방식이 사실상 강요하고 있는 거예요." (서혜진 변호사)


한편, '성적 수치심'이라는 법적 용어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대법원은 강제추행에 대해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켜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과거 성범죄가 '정조에 관한 죄'로 분류되던 시대를 살았던 노인들의 경우 자신이 얼마나 성적 수치심을 느꼈는지를 끊임없이 설명하려 한다. 그런데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건 정작 가해자가 아닐까.

피해자는 '성적 수치심'이 아니라 '성적 빡시심'을 느끼는 게 정상이다. 서 변호사는 성적 수치심은 낡은 개념이라면서 현 시대와 맞지 않다고 일갈했다. 지난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더불어미주당 권인숙 의원은 '성적 수치심'을 '성적 불쾌감'으로 변경하는 법률안('남녀고용평등과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시대착오적인 용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증가하는 '노인 성범죄'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바꿔야 한다. 노인에 대한 개념도 새롭게 정의해야 하고, 그동안 노인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도 지워버려야 한다. 단시간에 이뤄질 일은 아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야 한다. 우선,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한 데 묶어 판단하는 것부터 지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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