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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남자', '역시 신하균'이거나 '신하균 뿐'이거나

너의길을가라 2018. 12. 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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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건 현장에 증거를 심었다고요. 살릴 수 있었는데도 죽으라고 내버려뒀고. 이런 거 조사하셔야죠."

"무슨 꿍꿍이야?"

"꿍꿍이 같은 거 없습니다. 죄 짓고도 벌 안 받는 놈들 꼴보기 싫어서 형사짓 했는데, 제가 그런 놈이 될 순 없지 않습니까? 제대로 조사하세요. 죄 지은 만큼만 벌 받을 거니까."


여기 독한 형사(刑事)가 한 명 있다. 이름은 우태석(신하균). 전국에서 강력범죄 검거율 1위다. 날렵한 몸에 수트를 걸치고, 날카롭고 매서운 눈빛으로 현장을 누빈다. 말투는 정중하지만, 그 안에 가시가 돋아있다. 상대방의 빈틈을 공략하는 심리수사가 특기다. 게다가 집요하기까지 하다. 사건을 한번 물면 놓지 않고, 끝까지 추적한다.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태석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죄 지은 자에게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한다'는 원칙이다. 그는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서라면 범죄자를 난간에 거꾸로 매다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걸핏하면 법의 테두리를 넘나드는 그의 수사방식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 십상이고,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다. 그래서 태석은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우태석은 '나쁜 형사'다. 



그런데 무엇이 태석을 '나쁜 형사'로 만들었던 걸까. 13년 전, 당시 순경이었던 태석은 여고생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서울대 법대생 장선우(김건우)를 지목한다. 유일한 목격자인 여고생 여울의 진술이 결정적인 단서였다. 그러나 태석에겐 아무런 힘이 없었다. 선우의 집안은 서장에게 압력을 행사해 수사를 막았고, 태석은 유유히 사라지는 살인마 선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목격자였던 여울마저 실종됐다. 꿈 많았던 평범한 여고생 여울은 사건을 본 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런 여울에게 태석은 "나한테 너만한 여동생이 있어. 네가 내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비밀 꼭 지켜줄게."라고 약속했지만, 수사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태석에게 여울의 얼굴을 노출시켜 버렸다. 여울은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혀 사라지고 만다. 이 때의 무력감과 죄책감이 태석을 물불가리지 않는 나쁜 형사로 만들었다.


법대생이었던 선우는 검사가 돼 태석 앞에 나타났다. 장형민으로 이름까지 바꾼 채로 말이다. 그는 여성들의 치아를 뽑는 등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며 자신의 쾌감을 채우는 연쇄살인마가 돼 있었다. 태석은 그런 형민을 잡기 위해 현장을 조작해 미끼를 물게 만든다. 그리고 현장에 나타난 형민과 태석의 추격전이 벌어지고, 형민은 난간에 겨우 매달린 채 태석을 향해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13년 전에 죽였어야 했어. 그럼 영호 엄마도 살았겠지. 여울이도 살았고."


아무리 죽이고 싶은 나쁜 놈이라고 할지라도 형사라면 마땅히 눈앞의 범죄자를 구해서 '법의 심판대'로 보내는 선택을 해야 하지 않을까? 기존의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들은 그런 판단을 해왔다. 극도의 분노를 겨우 추스르고 이성을 되찾는 형사들의 모습을 우리는 숱하게 봐왔다. 그런데 MBC <나쁜형사>는 좀 다르다. 태석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시한폭탄 같은 형사가 아니던가.


태석은 난간에 매달린 형민의 손을 구둣밟로 짓밟아 그를 떨어뜨리고 만다. 검사인 형민을 법의 심판대로 보낸다고 해도 제대로 된 수사와 처벌이 이뤄지지 않을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년 전에도 이미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태석은 스스로 심판자가 돼 응징에 나선 것이다. 이는 굉장히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다. 일단 시청자들은 태석의 행동에서 '통쾌함'을 느꼈던 모양이다. 


아무리 태석의 행동이 통쾌하게 느껴질지라도 그의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태석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경정으로 승진하며 '영웅' 대접을 받게 된다. 그리고 강력연쇄사건 전담팀을 이끌게 된다. 현재의 사법 시스템을 유지하고 싶은 검찰과 이 사건이 밝혀질 경우 타격을 입는 게 두려운 경찰 조직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거래'의 도구로 이용된 셈이다. 


영드 <루터>의 리메이크 작품인 <나쁜형사>는 매우 흥미롭다. 우선, 태석이라는 캐릭터가 주는 신선함이 생각보다 강렬하다. 끔찍한 흉악 범죄가 시시각각 벌어지고 있음에도 그에 대한 (공적) 처벌이 터무니없이 약한 경우가 빈번하다보니 태석의 '(사적) 응징'이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신하균은 탄탄한 연기력을 통해 자칫 잘못하면 위험하게 비칠 수 있는 태석이라는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했다.



역시 <나쁜형사>의 구심점은 신하균인데, 문제는 그와 합을 이뤄야 할 다른 배우들이 생각만큼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경태를 수석 졸업한 원칙맨 채동윤 역의 차선우(바로)의 연기는 뻣뻣하고, 이야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이코패스 기자 은선재 역을 맡은 이설은 다소 어색한 연기력으로 몰입을 방해한다. 정돈되지 않은 날것 같은 연기가 신선하긴 하지만, 안정감이 없고 때로는 과한 연기톤이 불편하다.


박호산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지만, 태석과 대립하는 그의 캐릭터는 전형적이다. 결과적으로 신하균의 어깨가 (또 한번) 무거워졌다. 그럼에도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호의적이고, 시청률도 1회 7.1%-2회 8.3%, 3회 8.6%-4회 10.6% 로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과연 MBC가 신하균을 앞세워 '드라마 왕국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릴 수 있을까? 일단 시청자들에게 '궁금증'을 안기는 데까지는 성공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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