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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나라 같은 훈련은 싫어" '개훌륭' 강형욱이 말하는 좋은 훈련사란?

너의길을가라 2020. 3. 1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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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경 속에서 대형견을 키운다는 게 저는 너무 끔찍한 거 같아요. 제 마음속에 이렇게 키우는 건 불법이에요."

모니터 화면을 지켜보고 있던 강형욱 훈련사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의 표정을 통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유추할 수 있을 정도였다. 끊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한 강 훈련사는 급기야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차마 볼 수 없다는 심정이었으리라. 개들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전해지는 고통도 훨씬 큰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 어떤 점이 강 훈련사를 그토록 분노하게 만들었던 걸까. 

지난 9일 방송된 KBS2 <개는 훌륭하다>에는 맹견 패밀리가 등장했다. '코카시안 오브차카' 머루와 '핏불테리어' 블리, '로트와일러' 아톰(아빠)과 세리(엄마), 마틴(아들), 욘세(딸)가 그 주인공이었다. 성인 남자를 힘으로 압도하는 대형견이 무려 6마리였다. 보호자는 "대현견을 좋아하다보니까 제가 키우고 싶었던 견종을 입양하게 됐"다면서 "(머루가) 옆에 있으면 든든하"다고 말했다. 이경규와 지상렬은 "남자들, 수컷들은 그런 욕망이 있다"며 맞장구쳤다.

그 말을 듣고 있던 강 훈련사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건 오브차카라는 견종의 특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어로 양치기라는 뜻의 오브차카는 이동한 양들을 지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러시아·중국·몽골 등 넓은 대지에서 주로 활동해 왔던 만큼 엄청난 활동량을 갖고 있었다. 강 훈련사가 "솔직히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오브차카를 키울 수 없어요."라고 단언했던 까닭은 그 때문이었으리라. 

게다가 머루를 낯선 사람을 향해 공격성을 보였다. 보호자에겐 한없이 애교를 부렸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겐 사납기 그지없었다. 보호자는 "머루를 입양하려던 분을 머루가 물어서, 상해를 입혀서 제가 키우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실제로 머루는 훈련사가 가까이 다가가자 몸을 세워 달려들었는데, 입마개를 하지 않았다면 물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강 훈련사는 머루의 공격성은 "목적이 있는 공격성"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머루만이 아니었다. 이어 로트와일러 가족을 풀어놓자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마틴은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견사 안에 있는 머루를 향해 달려들었고, 쉐리는 블리의 견사 앞에서 무력시위를 했다. 머루와 블리 역시 로트와일러 가족에게 지지 않고 대항했다. 보호자 혼자서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한쪽의 싸움을 말리는 동안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싸움이 붙는 식이었다. 게다가 저 6마리는 모두 대형견이 아니던가. 

지상렬은 '개들끼리 한번 다투고 나면 서열정리가 되지 않느냐'며 의문을 제기했고, 강형욱은 만약 보호자가 없었다면 약육강식이 적용됐을 거라고 대답했다. 다시 말해서 보호자를 너무도 사랑하는 맹견들은 '보호자를 위해' 끊임없이 서로를 견제하고 결국엔 싸움까지 벌이게 된다는 의미였다. 심지어 쉐리의 경우에는 견사의 문을 닫지 않은 보호자의 실수로 블리와 싸움이 붙어 다리 한 쪽을 잃어야 했다. 

"저런 친구들 교육해봤는데 안 풀립니다. 관계가 완전히 틀어진 상태니까 피할 수 없으면 죽일려고 할 거거든요. 그래서 누구 하나가 죽어야 된다는 거예요."

솔루션을 위해 현장으로 나간 강형욱은 보호자가 개들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답답함을 호소했다. "'나한테만 괜찮으면 괜찮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아세요? 그 선이 어디까지인지 알아요? 우리 이야기 좀 합시다." 따로 면담을 요청한 강형욱은 "저는 제가 이런 데 올 줄 몰랐어요. 제가 왜 이런 얘기 하는 줄 알아요? 이런 환경에서는 개를 키울 수가 없어요."라며 화를 쏟아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보호자는 눈물을 흘려며 촬영 중단을 요청했다.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보호자도 적잖이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절묘한 해결책을 제시해주리라 생각했던 강 훈련사의 매몰찬 말들에 심적으로 위축된 기색이었다. 자신이 더 노력하면 잘못된 점들을 개선하고 개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강 훈련사가 '이런 환경에선 개를 키울 수 없다'며 몰아붙이자 야속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강 훈련사가 그리 말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저는 꿈나라 같은 훈련은 하고 싶지 않거든요. 희망만 주는 훈련 있잖아요. 노력만 하면 된다, 열심히 하면 된다. 저도 그런 (현실과 타협하는) 훈련사였는데, 나중에 이런 뒷 얘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내 실수로 어떻게 하다보니 둘이 싸워서 한 마리가 죽었어요. 맞아요, 제가 실수했어요. 제가 문을 단속을 못했어요. 훈련을 더 열심히 할 걸 그랬어요.' 제가 스스로 훈련사로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정말 좋은 훈련사란 뭘까. 그냥 보호자에게 '당신은 할 수 있어요. 키울 수 있어요'라고 응원을 해 주는 게 좋은 훈련사일까. 아니면 그런 실수를 하지 않게 하는 게 좋은 훈련사일까. 항상 후회스러운 일들이 훨씬 많았어요. 두번 다시는 이런 사람들이 나오지 않길 바라요. 모든 사람들을 무섭게 만들고.. 어쩌면 우리를 만난 게 다행인 거예요. 뉴스가 찾아오지 않고 우리가 찾아온 게."


강 훈련사는 과거에 자신도 보호자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훈련사였다고 고백했다.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고 의욕을 불어넣어주는 긍정적인 훈련사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꿈처럼 달콤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보호자의 실수로 인해 개들이 싸우다 죽는 경우가 생겨났고, 그로 인해 큰 상심에 빠지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존재했지만, 이를 직시하지 않았을 때마다 엄청난 대가를 치뤄야 했다.

과연 어떤 훈련사가 좋은 훈련사일까.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해주며 '당신은 할 수 있어요. 키울 수 있어요.'라고 응원해 주는 게 좋은 훈련사의 덕목일까, 아니면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끔 따끔하게 조언을 건네는 게 좋은 훈련사의 역할일까. 훈련사로서 강형욱의 성찰은 우리에게도 많은 깨우침을 준다. 그것이 단지 반려인과 반려견의 사이에서만 적용되는 예시가 아니라는 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구에 따라 무작정 반려견을 기르고 보는 건 너무도 무책임한 일이다. 반려견의 특성에 맞춰 기를 수 있는 환경과 여력을 갖추는 게 우선이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모두 불행해지는 결과를 맞을 수밖에 없다. 평생 견사에 갇혀 살아가야 하는 6마리의 대형견의 신세가 딱하지 않은가. 강 훈련사의 말처럼 (큰 사고가 터져) 뉴스가 찾아기기 전에 <개는 훌륭하다>에 도움을 요청한 건 천만다행스러운 일이다. 과연 강 훈련사와 보호자는 어떤 답을 찾아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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