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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 어린이 숨막히게 한 ‘나이거참’ 전원책의 일방적 소통

너의길을가라 2018. 11. 2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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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변호사님. 전 변호사님? 전 변호사님!"

11월 22일 첫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나이거참>을 보면서 작년 초에 방송됐던 JTBC 신년특집 대토론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토론 도중에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폭주한 전원책 변호사가 핏대를 세우며 토론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자, 이를 만류하기 위해 애쓰던 손석희 앵커(이솔립 어린이의 표현대로라면 ‘손석희 아저씨’)의 난감한 표정, 그 허탈한 웃음이 자꾸만 오버랩 됐다.

전원책은 무례했고, 배려심도 없었다. 자신의 짝꿍인 10살 어린이 이솔립의 꿈(아이돌)을 ‘잘못된 생각’이라 못박아 말했다. 타인의 꿈에 대해 그리 말할 수 있는 권한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 대상이 설령 초등학생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더욱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전원책은 “우리 때는 대통령을 꿈꿨어. 아니면 판검사나 의사였거든. 그런 꿈을 가져야 돼.”라며 꼰대 같은 소리로 질리게 만들었다.


“할아버지가 잔소리를 너무 많이 해서 오히려 기억이 안 나요.”

전원책의 잔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는 이솔립을 연남동 책거리로 데려가면서 ‘책을 많이 읽어야 된다’고 조언했다. 그러자 이솔립은 “요즘엔 유튜브에 다 나와 있어요”라고 되받아쳤다. 당황한 전원책은 같은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유튜브를 통해서도 다양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는 이솔립을 논리적으로 설득하지도 못했다. 그쯤되면 ‘조언’이라 할 수 없는 ‘잔소리’일 따름이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원책의 소통은 일방적이었다. 그는 설명 중독에 걸린 듯 이솔립에게 계속해서 무언가를 이해시키려 했다. 보는 사람이 숨막힐 지경이었다. 참다못한 이솔립은 엄마에게 배운대로 손을 들고 발언권을 획득하려 했지만, 그조차도 전원책에게 제지당했다. 또, 이솔립이 슬라임을 가지고 놀면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설명하자 “10살은 스트레스 의미도 모를 때”라며 윽박질렀다.

<나이거참>은 할아버지와 10대 어린이가 ‘친구’가 돼 서로의 ‘to-do 리스트(해야 할 일의 목록)’를 함께 하며 우정을 쌓아나가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제작진의 기획 의도는 ‘세대간의 소통’과 같이 근사한 것이겠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건 ‘세대간의 갈등’이다. 다만, 나이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그 갈등이 첨예하지 않고, 적대적이지도 않다. 그 무딜 수밖에 없는 갈등 속에서 웃음 포인트가 숨겨져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전원책은 10살 짝꿍 이솔립과 짝을 이뤘고, 설운도는 개그맨 한현민의 두 딸 소영, 가영 자매와 파트너가 됐다. 변희봉은 '미스터 션샤인'의 이병헌 아역 김강훈을 만났다. 이용수 PD는 “때로는 웃음을 자아내지만 때로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뭉클함을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다.”면서 앞으로 <나이거참>이 보여줄 세 커플의 세대를 뛰어넘은 우정기를 기대해 달라."고 덧붙였다.

‘세대를 뛰어넘은 우정기’라니 참신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출연진 선정에 있어서 좀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면 훨씬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무례한 전원책을 통해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을 수 있겠으나, 당장 꼰대 할아버지의 잔소리에 노출된 이솔립은 무슨 죄란 말인가? 좀더 배려심 있는 할아버지와 짝을 이뤘다면 훨씬 더 좋은 경험들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미안함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한편, 전원책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변호사, 정치 평론가 등 야인의 삶을 살아오던 그의 최근 행보는 참으로 변화무상(變化無常)하다. JTBC <썰전>에서 ‘보수 논객’으로 포지셔닝하며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했고, 시원시원한 화법 덕분에 시청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그 바람을 타고 TV조선으로 날아가 <종합뉴스9>의 앵커를 맡으며 노년의 꿈을 이뤘다.


그조차도 도약의 발판이었을까. 말끝마다 ‘단두대’를 입에 달고 살던 전원책은 결국 다시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았다. 쇄신을 부르짖는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나름대로 큰 포부를 안고 있었겠지만, 결말은 37일 만에 문자로 해촉되며 우스꽝스럽게 마무리 됐다. 2008년 자유선진당의 대변인을 맡았다가 4일 만에 사퇴한 것에 비하면 꽤 오래 버틴 셈일까?

그런 전원책 변호사가 난데없이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무리 정치와 예능의 경계가 얄팍해졌다 하더라도 이리더 쉽게 들락날락해도 되는지는 의문이다. <나이거참>이 전원책의 무대포 캐릭터를 통해 화제성과 시청률(2.064%, 닐슨코리아 유료가구 플랫폼 기준)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프로그램의 질과 만족도만큼은 확실히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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