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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의 삭발 지시, 우리는 왜 이토록 관대한가?

너의길을가라 2014. 11. 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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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전 넥센 승리, 2차전 삼성 승리. 3차전 삼성의 극적인 역전승! 삼성과 넥센의 한국 시리즈가 한창인 지금, 프로야구 팬들의 관심은 오히려 '롯데'와 '한화'를 향해 있는 듯 하다.



롯데의 경우에는 '프런트 야구'에 대한 팬들의 오래된 불만이 터져 나왔고, 급기야 'CCTV 사찰' 사건이 밝혀지면서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한편, 한화의 경우에는 '야신' 김성근 감독이 취임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큰 기대가 쏟아지고 있다. 한화 선수들은 '지옥 훈련'이라고 불리는 김성근 식 '마무리 훈련'에 돌입하며 벌써부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한화 선수들의 '울상(?)'을 담은 사진과 기사들이 매일마다 팬들의 가슴에 뿌듯함(?)을 불어넣고 있다.


'야신' 김성근 감독의 프로야구 복귀는 반가운 일이다. 리더십에 대한 분명한 철학, 팀 운영에 대한 명쾌한 해답, 승리에 대한 초인적 집착은 김성근을 지금의 '야신'으로 만들었다. 3년 연속 꼴찌에 그친 한화 팬들은 앞다워 김성근 영입을 부르짖었고, 결국 한화를 그 바람을 받아들였다. 과거 프런트와 마찰을 빚으며 불명예스러운 퇴진을 반복했던 '불편한 감독' 김성근을 불러들인 것은 그만큼 한화 측의 의지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이 와중에 한 가지 불편한 대목이 눈에 띄었다. 바로 '삭발'이다. 지난 10월 28일, 김성근 감독은 취임식에서 "선수들의 머리가 너무 긴 것 같다. 내일부터는 다 짧은 머리를 해야 할 것이다"고 선언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FA 자격을 얻는 김경언은 취임식 후 따로 김 감독을 찾아가 마무리 훈련에 합류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선수의 의지를 높게 산 김 감독은 합류를 허락했고,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건넸다고 한다 "근데 너 머리랑 수염은 깎고 와라"


감독의 불호령에 선수들은 너도나도 미용실로 향했다. 이미 머리를 깎았다고 해도 김 감독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시 머리를 다듬어야 했다. '불합격' 판정을 받은 선수들은 바리캉으로 서로의 머리를 밀어줬다고 한다. "마치 군에 입대하는 젊은이들처럼 표정들이 진지했다"는 한화 관계자의 말을 통해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스포츠에서 '개인 삭발'은 간혹 찾아볼 수 있지만, '단체 삭발'은 흔치 않다. 팀이 연패의 늪에 빠졌거나 팀 성적이 극도로 나쁠 때,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삭발을 통해 선수단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강행하는 충격 요법이다. 선수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지만, 단체 삭발이 반드시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일례로 최근 프로농구에서 전자랜드가 7연패를 막기 위해 팀 전원 삭발을 했지만, 결국 패배를 막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팀 고참이 주도해서 선수단이 동참하는 경우는 있지만, 감독이 나서서 선수들에게 단체 삭발을 지시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한화 팬을 비롯해서 프로야구의 팬들은 이 부분에 대해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물론 자발적으로 삭발이 이뤄졌다면 이는 별다른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감독이 나서서 삭발을 강요하는 것은 '인권'에 대한 침해가 아닐 수 없다.



'머리를 깎지 않은 선수=의지가 없는 선수'라는 등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성적이 나쁜 학급이 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우리 학급은 전교 꼴찌를 도맡아 하고 있으므로 삭발을 하라'고 강요한다면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당연히 이런 반론이 제기될 것이다. '프로 선수들은 돈을 받는다. 학생들과는 다르다.'


그렇다면 홍성수 교수의 재반론에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근데 우리가 프로야구선수라고 하니까 뭔가 특별하게 생각해서 그런거지 사실 노동자거든요. 만약 삼성 이건희 회장이, 전 임직원 삭발을 지시했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인가요?" 과연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이번에는 '스포츠의 특수성'을 들이밀 생각인가?



- 머리 길고 수염 있다고 야구 못하는 거 아니지 말입니다 -


아쉬운 건 100억짜리 선수인 김태균에게 ‘훈련으로 반쯤 죽일 것’이라고 통보하는 건, 그를 프로선수로 인정하지 않는 의식이 깔려있다는 점이다. 이 발언으로 김태균은 프로가 아닌 고등학교 아마추어 선수로 강등됐다. 김태균은 김 감독의 말에 “성적이 좋지 않으면 연습을 많이 하는 게 당연하다. 각오는 되어 있다. 고된 훈련은 두렵지 않고 몸이 힘들어도 끝난 뒤에 행복감을 느끼면 되는 것”이라고 수긍하는 자세를 보였지만, 반 강제적으로 프로 선수의 품위를 내려놓은 것이다.


‘따라오지 않으면 죽는다’ 식의 생각은 상명하복의 수직관계에서 나온다. 그 배경엔 우승에 목숨을 거는 성적 지상주의의 병폐가 도사리고 있다. 성적을 내지 못하면 파리 목숨인 감독의 운명, 그리고 야구 자체 보다 승패에 사활을 거는 구단과 일부 팬들의 목소리도 야구 발전의 저해 요소다. 한국 프로야구는 지난 30년 간 압축 성장하며 기술적으로 세계적 수준에 다다랐다. 이제는 강제가 아닌 소통과 균형에 의해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독도 선수도 모두 ‘장인(프로)’다워야 한다. 


[배우근의 야구블랙박스]감독은 선수의 스승인가? <스포츠서울>


'야신' 김성근 감독의 프로야구 복귀는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높였다. 또, 단내나는 훈련을 소화한 한화가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팀'을 강조하는 그의 지도방식도 존중받아야 하지만, '개인'을 '압살'하는 그의 지도 철학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과정도 필요해보인다. "여기(프로)는 학교가 아니라 직장이다"는 김응룡 감독의 철학이 프로야구의 미래일까, 마치 '여기는 학교'라고 말하는 김성근 감독의 철학이 프로야구가 나가야가 할 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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