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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생민이 여행 가이드인<짠내투어>, 그래도 짠내나는 여행은 싫다

너의길을가라 2017. 11. 29.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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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짠내투어>는 여행을 콘셉트로 한 흔하디 흔한 예능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이다. "또, 여행이야?", "연예인 호강시켜 주는 프로그램?"과 같은 날선 비판이 제기될 법 하지만, <짠내투어>는 이 위태로운 상황을 '김생민'이라는 돌파구로 과감하고 거침없이 뚫어냈다. 흥미롭지 않은가. '욜로(You Only Live Once)'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여행과 '닥치고 절약'을 외치는 김생민의 만남, 이 이질적인 요소들의 결합은 그 자체로 상당히 신선하고 재미있다. 첫회 2.934%의 시청률은 그 기대감의 방증이다.



김생민이 누구인가. KBS2 <김생민의 영수증>을 통해 공식적으로 검증된 연예계 대표적 짠돌이가 아니던가. 과거 MBC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서 '휴가는 어디로 가냐'는 MC들의 질문에 "보통 휴가가 생기면 부산 처제네 집에 간다. 처제가 있기 때문에 숙박비를 아낄 수 있다"고 대답했을 정도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평소라면 '여행을 간다고요? 스튜핏! TV에서 방송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보면 되는데, 왜 여행을 가죠?'라고 정색을 했을 텐데, 그가 '가이드'가 돼 여행을 계획한다니 궁금증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과연 김생민의 여행은 어떤 모습일까. 물론 머릿속에 짠내나는 장면들이 그려지지만, 실제로도 그랬을지 확인하고 싶은 게 사람의 자연스러운 심리다. <짠내투어>는 김생민과 박나래, 정준영 등 각기 다른 성향의 여행 설계자를 내세웠고, '프로 불편러' 박명수와 여회현을 평가자로 설정했다. 세 명의 설계자가 일정 가운데 하루씩을 맡게 되는데, 정해진 예산 안에서 자신만의 특색있는 여행을 꾸려나가는 게 이 프로그램의 기본적인 틀이다. 이른바 '스몰럭셔리' 체험이라나. 


설계자가 3명이나 있지만, 주인공은 김생민이나 다름없다. 물론 박나래의 '욜로'를 추구하는 여행은 오로지 '가성비'만 따지는 김생민의 여행과 완벽한 대척점에 위치하고, 정준영의 '힐링'을 추구하는 여행은 '체험'에 몰두한 김생민의 여행과 결이 다르다. 하지만 그 차별성도 결국 김생민을 강조하기 위한 포인트처럼 보인다. 첫번째 주자로 김생민을 내세운 것도, 프로그램의 제목에 '짠내'를 집어넣은 것도 다분히 의도적이다. 다시 말해 <짠내투어>는 김생민의, 김생민에 의한, 김생민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놀랍다고 해야 할까. 예상했던 대로였다고 해야 할까. 김생민은 김생민답게 가성비가 뛰어난 오사카 여행을 설계했고, 애잔함이 묻어난 그의 가난한 여행은 나름대로 흥미로운 포인트를 제시했다. 가령, 미리 구입한 주유 패스로 공짜로 고자부네 놀잇배를 타는 경험을 하고, 튀긴 마늘과 김치를 무한 리필해 주는 라멘집을 찾아 따뜻한 국물로 여행의 피로를 녹였다. 또, 100엔 초밥집을 찾아 1인당 1만 원이 넘지 않는 지출로 높은 만족을 이끌어냈고, 와규 1점에 1천 원인 고깃집을 찾아 맛있는 식사를 하기도 했다.


여행을 함께 떠났던 멤버들은 고생 끝에 찾아온 낙(樂)에 행복감을 표현했고, 그 모습은 얼핏 보면 김생민의 여행이 제법 훌륭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되돌아본다면, 김생민이 설계한 여행은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엉망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답이 쉽게 나온다. 스스로에게 '김생민이 가이드인 여행(또는, 김생민이 설계한 여행)에 참여할 생각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보자. 과연 몇 명이나 'OK'라는 대답을 할까. 개인적인 답을 한다면 무조건 'NO'다.



물론 여행에는 '정답'이 없다. 그러나 'ABC'는 있다. 날씨를 챙겨보지 않고 여행을 떠났다는 건 충격적인데, 그가 "자유여행으로 가족을 책임질 용기가 나지 않아 이제까지 저렴한 패키지 여행만을 했었다. 그래서 공항 이용법이나 비행기 표 구매 방법을 잘 모른다."고 고백했던 만큼 이해하기로 하자. 그렇지만 숙소에 먼저 들러 짐을 풀고 나서 본격적인 여행을 해야 하는 사실조차 몰랐던 건 답답한 노릇이다. 그 때문에 멤버들은 빗속에서 무거운 캐리어를 질질 끌고 여행을 다녀야 했다. 


주어진 시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여행에서는 당장의 '돈'을 아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시간'을 절약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김생민의 계획대로 싸고 느린 열차를 타는 바람에 즐거운 인터뷰도 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그 인터뷰는 3,000원 비싸지만 훨씬 빠른 열차를 타고서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달리 생각한다면, 일찍 도착해서 절약한 시간만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가능성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뿐만 아니라 이동의 피로도를 줄이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오사카 성까지 이동할 수 있는 로드 트레인 티켓을 구입할 때도 마찬가지다. 편도 3,000원 왕복 5,000원이라면 당연히 왕복 티켓을 끊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김생민은 비가 그칠수도 있으니 편도를 끊자고 우긴다. 하지만 비는 그치지 않았고, 돌아다니느라 지쳐있던 멤버들은 더 이상 걸어서 이동할 수 없는 형편이라 표를 다시 끊어야 했다. 결국 김생민은 20%를 손해보는 '스튜핏'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김생민의 '짠내'가 장기적인 관점에선 손해일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예산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여행에서 절약은 불가피하고, 그런만큼 가성비를 고려한 지출이 요구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 건, 여행이라는 게 우리네 인생에서 매우 특별한 경험이라는 사실이다. 늘상 있는 일이 아니라 큰 결단이 필요한 드문 일이다. 그 짧고도 스페셜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무작정 아끼는 건 미덕이 아니다. 아낄 때 아끼고, 쓸 때 쓰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김생민이 기획한 여행은 '저럴 거면 여행을 뭐하러 가냐'는 씁쓸함을 남긴다. 



게다가 방송에서 보여진 훈훈함은 정준영과 박나래의 헌신과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연출이 아니었던가. 김생민의 짠내나는 일정은 정답이 없는 여행의 한 가지 답안을 제시했다는 의미는 있겠지만, 그 여행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까지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안돼", "돈 없어"라는 말만 듣는 여행이라면 차라리 집에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짠내투어>는 김생민과 여행을 연결짓는 참신한 발상을 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정해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박나래나 정준영의 설계가 더 기다려지는 건 왜일까. 아무래도 짠내만 나는 여행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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