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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이 들려주는 ‘노래’, 오랜만에 사색에 잠겼다

너의길을가라 2018. 9. 13.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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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노래’를 들으면서 사색에 잠겼다. 가사를 입안에서 오랫동안 음미(吟味)하면서 그 맛을 느꼈다. 입안을 맴돌던 가사는 머릿속을 유영(游泳)했고, 어느새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창밖의 먼곳을 바라보다 이제는 멀게만 느껴지는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지금의 나를 떠올리며 과거의 나를 기억하고 반추했다. 곱씹고 또 곱씹었다. 그 대상이 노래인지, 나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본 적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소년(혹은 청년)은 ‘끝없이 날이 서 있’었다. 한없이 ‘뾰족했던’ 소년은 멋도 모른 채 이리저리 찌르고 다녔다. 한동안 그런 후에야 깨달았다. 그러는 사이 자신도 상처를 입었음을. 소년의 소원은 ‘어른이 빨리 되는 것’이었다. 그에게 어른은 ‘뭐든 괜찮아지는’ 존재였다. 자신의 ‘몸에 돋은 가시들’을 어떻게든 ‘털어내고’ 싶었다. ‘혼자서 그럭저럭 괜찮은 그런 나이가 되면 불쑥 짐을 꾸려 세상 끝 어디로 떠나려 했’다. 


시간이 흘렀고,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 이제 ‘웬만한 일엔 꿈쩍도 않을 수 있게 돼버렸’다. 마침내 어른이 된 것이다. 감정의 혼돈을 겪지 않고 무심히 살아갈 수 있었다. 하루가 그리 지나갔고, 세월이 쌓여갔다. 그런데 문득 ‘무난한 하루 끝에 ‘‘뾰족했던 나’의 그 ‘반짝임’이 그리워졌다. ‘울어 본 적이 언젠가. 분노한 적이 언제였었던가. 살아 있다는 느낌에 벅차올랐던 게 언젠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지난 11일 김동률이 디지털 싱글 ‘노래’를 발매했다. 지난 1월 발표했던 앨범 ‘답장’의 마지막 트랙으로 유력했던 곡이었지만, 고심 끝에 싣지 않고 따로 공개한 것이라고 한다. ‘답장’은 어느새 선배보다 후배가 많아진 김동률이 가요계 후배들에게 전하는 답가(答歌)였다. 앞만 보고 나아가던 그가 잠시 멈춰서 자신의 위치를 고민하고 성찰한 끝에 나온 곡이었다. ‘노래’ 역시 그와 비슷한 결을 가진 곡이다. 


당시 앨범에 실었어도 메시지의 연결상 맵시가 있었겠지만, 감수성이 영글어가는 가을 무렵에 그의 신곡을 만나게 되니 그저 반갑기만 하다. 게다가 지금 이 계절과 더할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김동률의 목소리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선물이 된 것 같다. ‘노래’는 각종 음원 차트에서 상위권에 랭크됐는데, 오로지 노래의 힘만으로 이뤄낸 성과라 놀랍기만 하다. 



김동률은 사실상 가요계에 남아있는 유일한 낭만주의자이자 로맨티스트다. 그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동료들의 절반은 자취를 감췄고, 나머지 절반은 ‘방송’이라는 매개체와 타협했다. 타협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어감으로 들린다면 시대적 흐름에 부응했다고 새겨도 좋다. 김동률은 여전히 오로지 ‘노래’의 힘만으로 대중들과 소통한다. 수많은 팬들이 TV에 좀 나와달라 성화지만, 그의 생각을 꺾긴 어려워 보인다. 


솔직히 김동률을 예능을 비롯한 방송을 통해 좀더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있지만, 그만큼은 지금의 단호한 고집을 계속 부렸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오로지 ‘노래의 힘’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뮤지션, 그 낭만적 가치를 김동률이라면 지켜갈 수 있지 않을까? 또, 첫 소절을 듣자마자 ‘이건 김동률 노래다!’라고 느낄 수 있는 그만의 음악 스타일과 틀을 지켜갔으면 한다. 노래의 시적인 구성과 에세이 느낌의 가사, 특유의 서정성 말이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던 김동률이 찾아낸 답은 무엇이었을까. ‘내 안의 움찔거리는 그게 뭔지는 몰라도 적어도 더 이상 삼키지 않고 악을 쓰듯 노랠 부른다’ 김동률은 더 이상 ‘삼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가수인 김동률은 ‘악을 쓰듯 노랠 부’르겠다고 한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질문은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 ‘둥글게 되지 말라고 울퉁불퉁했던 나를 사랑했던 너’를 떠올리며 용기를 보내자. 무엇이든 한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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