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세계가 얻은 진정한 어른, 프란치스코 교황의 빛나는 리더십

너의길을가라 2015. 9. 2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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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지만, 기본적으로 배타적(排他的)인 경향을 지니기 마련이다. 특히 '유일신(唯一神)'을 모시는 종교라면 더욱 그러하다. 다른 신이 '진짜'라면 우리는 당연히 '가짜'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나(혹은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선 상대를 무너뜨려야 하는 것이 종교의 한 단면이다. 서로 각자의 신을 믿고, 자신들의 종교라는 테두리 안에 머문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겠지만, 전도 혹은 표교라고 하는 신의 명령은 결국 종교 간의 갈등을 야기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충돌한 십자군 전쟁 아닐까?


전 세계를 충격 속으로 빠뜨렸던 '9·11테러'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뤄졌던 미국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 역시 '종교 전쟁'이었다. 이라크에 화학 무기가 있다는 그럴 듯한 구실을 갖다대긴 했지만, 당시 부시 대통령은 "이슬람교는 가짜 종교",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은 제2의 십자군 전쟁"이라며 '종교적인 적대감'을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했다. 또, 1948년 이후 중동 지역에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에 벌어졌던 수 차례의 전쟁도 결국 '종교 전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듯 전 세계는 여전히 '종교'로 인한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상처는 곪아 터지고, 그 위에 수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이 흐르고 있다. 수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공존과 화합을 외치지만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가 타인의 모범이 되지 못할 뿐더러 종교의 배타적 특성을 넘어서는 '리더십'을 가지지도 못했던 탓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존재는 더욱 빛난다. 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 중 하나가 바로 '종교를 초월한 교황'이 아닌가?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겨지는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 거침없이 할 말을 하고, 기꺼이 가난한 자들의 벗이 되고자 하는 교황. 기존 교회의 논리대로라면 '죄인'에 해당하는 이혼자와 동성애자에 대해 "(그들을)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에 대해 이제 우리 스스로 고민해봐야 한"다며 전향적(前向的)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교황. 여자 소년원생과 무슬림의 발을 씻겨주는 차별을 뛰어넘은 교황. 2013년 3월 선출된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여줬던 이와 같은 행보는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지난 20일(현지 시간) 쿠바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바나 성당에서 열린 기도회에서 "신은 교회가 가난해지기를 바란"다면서 "부(富)는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고, 우리의 가장 훌륭한 것을 빼앗아버린다. 교회로서는 나쁜 회계사가 좋다. 왜냐면 그들이 교회를 자유롭고 가난하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성직자들이 가장 작고, 가장 버림받고, 가장 아픈 사람들에게 예산과 관리를 집중하는 것을 잊어버린다면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의 가르침을 따르기보다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며 '더 많이'를 부르짖는 탐욕스러운 교회(뿐이겠는가?)에 직격탄을 날리며 "교회가 가난의 정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파한 것이다. 또, 교황은 파벌에 대해서는 비판했지만, "교회에서 갈등과 이견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로 교회가 살아있다는 신호이다. 다투지 않는 공동체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잃어버린 늙은 부부와 같다"며 다양한 의견의 필요성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견고한 담임목사 체제 하에 1인 '독재'로 굳어가는 한국 교회가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이 아닌가 싶다.




쿠바를 거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70차 유엔총회 연설을 위해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쿠바에서와 마찬가지로 부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는데, "물질과 부를 더 가지고자 하는 욕망이 지구 자원을 파괴하고 빈곤을 악화시킨다. 경제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남을 소외시키는 것은 '중대한 범죄"라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인신매매 근절과 핵무기 금지를 촉구했고,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야말로 종교를 넘어 사회적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 발언하는 리더로서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신자들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틴 루서 킹 목사 이상의 존재다. 그가 말하면 수백만명이 경청한다. 무슬림도, 개신교도, 힌두교도, 무신론자도 예외는 아니다" (뉴욕타임스)

"교황은 종교 지도자라기보다 세계 지도자라고 믿는다. 그의 개방성과 현실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것에서 나는 많은 희망을 본다" (사샤 다타 힌두교 성직자)

"겸손하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교황을 존경한다. 모두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 신이 그를 보냈다고 생각한다" (무슬림 무스타파 엘세하미)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교황의 '광폭' 행보에 대해 전세계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NYT와 CBS방송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9월)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5%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가톨릭'이라는 특정 종교에 국한해서 바라보기보다 세계의 지도자이자 인도주의적인 대변자로 여기고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더욱 주목할 부분은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지지는 종교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2월)에 따르면, 백인 신교도의 74%, 무교의 68%가 교황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등장으로 전 세계의 시민들은 공통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진정한 '어른'을 얻었다. 허례허식에 얽매이지 않는 파격적인 그의 행보,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운 사고방식, 가난한 자들의 곁에 서서 자본의 탐욕을 꾸짖는 단호함, 사랑과 화합이라는 명징한 메시지.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렇게 조금씩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피폐해진 오늘날, 사회정의가 사라지고 부패와 탐욕만이 가득한 이 세상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존재는 더욱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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