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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 예능의 신선한 변주, <전지적 참견시점>이 넘어야 할 산

너의길을가라 2017. 12. 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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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관찰 예능'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아빠의 좌충우돌 육아 도전기에 박수를 보내고(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 스타들이 홀로 살아가는 모습을 들여다 본다(MBC <나 혼자 산다>). 그런가 하면 엄마의 관점에서 미혼인 아들의 삶을 판단하고(SBS <미운우리새끼>),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을 여행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다(MBC애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장인 · 장모와 사위의 어색한 관계를 보며 배꼽을 잡고(SBS <자기야-백년손님), 본업이 가수인 그 녀석들의 일상을 관찰하기도 한다(tvN <본업은 가수-그 녀석들의 이중생활).


TV를 틀면 어김없이 카메라에 '관찰' 당하고 있는 연예인들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관찰 예능은 현재 예능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쯤되면 관찰 예능의 홍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토크쇼 → 버라이어티 → 먹방 → 음악 경연 프로그램으로 옮겨갔던 유행이 관찰에 당도한 것이다. 언제까지 이 흐름이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관찰 예능의 무궁무진한 변화는 상당히 다이내믹하다. 그것이 변주이든 자기복제이든 간에 말이다.



'관찰'이라는 포맷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매력적이라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그런데 대부분의 관찰 예능들은 초기에 내세웠던 기획 의도와 달리 점차 자극적인 내용들로만 채워지기 급급하다. 독특한 캐릭터를 넘어 눈살이 찌푸려지는 모습들을 연출해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시점에서 또 하나의 관찰 예능이 추가됐다. MBC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시점>이다. 차별점은 분명하고, 그 변별력이 참신하다. 시청률도 5.6%(1회), 5.3%(2회)로 선방했다. 


<전지적 참견시점>은 연예인이 아닌 매니저의 시선을 강조한다. 연예인의 일상을 다룬다는 점에선 여타 관찰 예능과 동일하지만, 화자를 매니저로 설정했기 때문에 관점이 뚜렷해졌다. 기존의 관찰 예능이 연예인이 '연예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채 자신의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연출'에 머물렀다면, <전지적 참견시점>은 매니저의 제보와 폭로를 바탕으로 연예인의 일상을 들여다본다는 '관찰'의 의미가 더욱 강조됐다. 시선의 차이가 곧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 셈이다.


1, 2회에서는 코미디언 이영자와 김생민(의 경우에는 촬영 당시 소속사 및 매니저가 없어 스스로 '김생민의 매니저'라는 티셔츠를 입고 매니저 역할을 대신 했다.), 젝스키스의 멤버 이재진의 매니저가 자신의 연예인의 일상을 제보했다. 그리고 스튜디오에서 코미디언 송은이와 양세형, 방송인 전현무, 정신의학과 전문의 양재웅, 기생충학 박사 서민 교수가 영상을 함께 보며 이런저런 '참견'을 했다. 출연자들은 매니저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자신들의 '낯선' 모습에 놀라워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이영자와 그 31번째 매니저의 에피소드였다. 이영자의 매니저 송성호 씨는 "선배님이 평소 저한테 되게 잘해주는데, 진짜 잘해주는데 힘든 점이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도대체 잘해주는데 힘들다니 무슨 이야기일까? 방송을 보니 이해가 됐다. 정이 많은 이영자는 매니저에게 옷 선물을 자주 하곤 하는데, 출근할 때 그 옷을 입지 않으면 서운함을 표현했다. 또, 자신이 방송을 하는 동안 끼니를 해결하라며 식사 메뉴까지 직접 챙겼다. 인근에 있는 맛집을 소개하고,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살뜰히 설명했다.


매니저 송성호 씨는 "먹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먹은 적이 있다."며 고충을 토로했고, "선배님과 일하면서 5kg이 쪘다."고 털어놔 웃음을 이끌어냈다. 매니저의 어려움을 관찰 카메라를 통해 확인한 이영자는 "매니저에 대한 울렁증이 있다. 퇴사하거나 이별하면서 생겼다. 그래서 더 잘해주려고 노력한다."고 고백했다. 데뷔 26년차 이영자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시선의 변화가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진부했던 관찰 예능을 신선하게 만들었다. 



김생민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주차비를 아끼기 위해 친구의 회사를 찾아 주차를 한 뒤 짜장면을 시켜 먹고, 촬영장에 준비된 빵과 커피 믹스로 배를 채웠다. 한푼이라도 아끼고자 하는 그의 절약정신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또, 강남에서 상암까지 가는 길에 기름이 떨어지자 8,000원어치 주유를 하고, 기름값이 저렴한 단골 주유소를 찾아 9원이 올랐다며 속상해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김생민은 "인간 김생민을 보여준 최초의 방송이다. 너무도 소중하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다만, 보기에 따라 불편한 장면도 있었다. 기름값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비싼 주유소에서 적은 금액을 주유하는 건 알뜰하고 합리적인 소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8,000원 주유를 한 뒤 물까지 한 병 얻어가는 건 '짠돌이'의 선을 넘어선 모습이었다. 대상자의 민낯이 드러나기 마련인 관찰 예능은 김생민에겐 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럼에도 25년 동안 스케줄 관리, 운전, 의상 등을 도맡았던 김생민이 SM C&C와 계약한 후의 변화된 삶을 보여주는 건 방송적으로는 충분히 구미가 당기는 이야깃거리가 아닐 수 없다. 



<전지적 참견시점>은 매니저의 시선이라는 차별화를 통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특히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이영자 편과 알뜰하고 성실한 일상을 잘 녹여낸 김생민 편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지금의 분위기를 봐선 정규 편성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다만, 몇 가지 불안 요소가 잠재돼 있다. 초반이라 신선하게 다가온 매니저의 시선을 언제까지 초롱초롱하게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것이 프로그램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만큼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또, 관찰 예능의 경우 출연자의 호감도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이재진의 독특함을 가장한 무례와 지나친 엉뚱함은 시청자들의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영자를 향해 예의없는 질문을 던지더니 프로그램 내내 반복했다. 패널인 '참견자'들은 애써 웃음으로 넘기려 노력했지만, 씁쓸함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또, 그의 비효율적인 여행은 공감이 어려웠다. '매니저가 무슨 고생인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만약 <전지적 참견시점>이 정규 편성이 된다면 이와 같은 문제들을 엄밀히 짚고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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