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경이로운 김혜수가 이끈<굿바이 싱글>, 메시지의 확장성은 아쉽다

너의길을가라 2016. 7. 9. 10:48
반응형


질문으로 글을 시작해보자. 도대체 '배우 김혜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배역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 질문은 어떤 옷을 입혀도 태가 안 나서 푸념처럼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역으로 어떤 옷을 입혀도 '제 옷'같이 꼭 맞을 때, 이 경이로움을 어찌할 바를 몰라서 내던지는 감탄이다. '배우 김혜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배역은 '솔직히' 모르겠다. 아니, '없다'고 말하고 싶다. 놀랍게도 그는 모든 배역을 '김혜수'의 것으로 완벽히 소화한다.


2006년 <타짜>의 "이대 나온 여자" '정 마담'을 통해 배우로서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한 김혜수는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좋지 아니한가>, <바람 피기 좋은 날>, <모던 보이>, <이층의 악당> 등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을 자신만의 톤으로 연기하며 종횡무진 활약한다. 다만, 흥행에서 이 작품들은 부침(浮沈)을 보였는데, 그 아쉬움을 2012년 <도둑들>의 '펩시'를 통해 한방에 만회한다. 



'펩시'는 <타짜>의 정마담의 농염한 팜므파탈의 카리스마를 변형시킨 듯 했다. 자칫 잘못하면 '김혜수'라는 배우는 '섹시한 것만 잘해'라는 선입견이 굳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관상>에서 관상 보는 기생 '연홍'을 맡은 건 '쉽게' 가려는 타협이 아닌가,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기어코 '잘' 해내는 데 굳이 태클을 걸 이유는 없겠지만, '김혜수'라는 배우가 가진 '잠재력'이 묻히는 건 관객으로서 '손해'가 아닌가.


적절한 시기에 브라운관 복귀를 선택한 김혜수는 직장인들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KBS2 <직장의 신>에서 못하는 게 없는 슈퍼 갑 계약직 '미스 김'으로 분(扮)해 이른바 '미스 김 신드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시청자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걱정거리였던 원작인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 만능사원 오오마에>과 차별성은 김혜수의 탄탄한 연기를 통해 확보할 수 있었는데, 그의 스펙트럼이 또 한번 진화하는 순간이었다. 



김혜수의 만족을 모르는 진화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차이나타운>에서는 차이나타운의 실질적 지배자이자 뒷골목의 냉혈한인 '엄마'로 변신해 (섹시함을 과감히 벗어던지) 뱃살과 주근깨로 분장했는데, 김혜수라는 배우가 가진 '얼굴'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확인시켜줬다. <차이나타운>에서 보여준 카리스마는 기존의 <타짜>나 <도둑들>에서 보여줬던 섹시함이 묻어 있는 장악력과는 결이 다른 것이라 더욱 호평을 받았다.


2016년 상반기 최고의 드라마로 등극한 tvN <시그널>의 차수현은 김혜수가 아니라면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를 짊어진 캐릭터였다. 특히 비닝봉투를 뒤집어 쓰고 살인마로부터 도망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찾아가는 장면은 그야말로 프로 정신이 돋보인 장면이었다. 게다가 현재의 차수현뿐만 아니라 막 순경이 된 과거의 차수현까지 연기하면서 사실상 1인 2역이라해도 무방할 연기를 선보이지 않았던가.




다소 뻔한 스토리 라인으로 전개되는 <굿바이 싱글>이 영화 내부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는 까닭은 오로지 김혜수의 열연 덕분(마동석의 에너지도 한몫한다)이다. 영화는 등장부터 입술에 필러를 맞아 퉁퉁부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등 거침없이 망가지는 김혜수를 앞세워 중반 이후까지 열심히 웃기다가 후반부에서 자세를 잡고 눈물샘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이 전형성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지만, 나름대로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국민 밉상'으로 불리는 철없는 배우 고주연(김혜수)는 '내 편'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아이를 갖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에게 닥친 현실은 '폐경'이고, 산부인과에서 우연히 낙태를 고심중인 중학생 단지(김현수)를 만난다. 고주연은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단지에게 '돈'을 주고 아이를 데려오기로 '계약'한다. 현실에 적용한다면 가당치도 않을 이 불법적 사고방식은 영화에서도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영화의 성패는 그 '계약'이 뒤틀리기 전까지 얼마나 경쾌하고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개시켜 관객들의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 '웃음기'를 뽑아낼 것이냐에 달려 있었을 것이다. 그 이후에 자연스레 전개될 '갈등' 이후의 '눈물'은 전반부의 '매무새'에 맞게 따라오는 보너스 같은 것이다. <굿바이 싱글>은 그 역할을 '김혜수'의 개인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데, 이 기댐은 완벽한 성공을 거둔다. 김혜수의 경이로움은 코미디에서도 발현되는 것이었다! 이쯤되면 김혜수를 '하나의 장르'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굿바이 싱글>은 전통적인 가족이 해체된 현대 사회에서 '대안 가족'의 가능성을 다루는 동시에 '미혼모', 그것도 '청소년 미혼모(미성년자의 혼전임심)'라고 하는 사회적 문제를 겨냥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영화가 갖고 있는 '메시지'에 비해 그 '전달력'이 약하다는 점이다. '코미디'라는 장르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김혜수'에게 맞춰진 조명이 워낙 강해 다른 요소들을 잡아먹는 탓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어찌 김혜수를 탓할 수 있겠는가! 



'청소년 미혼모'와 '대안 가족'이 함께 다뤄지다보니 사회적 문제일 수밖에 없는 이 무거운 문제가 도움을 주는 '후원자'라는 판타지적인 해결책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런 '행운'이 있다며 다행이겠지만, 부분의 10대 미혼모들은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외면된다. 그래도 (계몽적인 뉘앙스로 그려졌지만) 미술 대회에 참가하려는 단지를 도와주기 위해 고주연이 (사회적 편견이라 이름붙여도 무방할) 학부모들과 전면전을 불사하는 장면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소년의 임신을 '일탈'과 '비행'로만 규정하고, 그들에게 지독히도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대한민국 사회의 미성숙함이 영화 속에 적나라하게 표현됐다. 참고로 김혜영 숙명여대 정책산업대학원 전임교수의 '십대 청소년 미혼모의 출산 및 양육경험'이라는 연구 논문에 따르면, 10대 미혼모 중 81%가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이 '매우 심각하다'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애초에 <굿바이 싱글>은 이러한 현실을 비판하고자 했을 텐데, 논의의 확장성이 다소 아쉽기만 하다. 그럼에도 <굿바이 싱글>은 사회 속에 깊이 뿌리 박힌 편견과 차별을 향해 자그마한 돌을 던졌다고 생각한다. 파동이 약하다고 가만히 있을 일은 아니다. 확장성을 부여하는 건 어쩌면 관객의 몫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