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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 연예

이필모의 결혼과 김정훈의 거짓말, '연애의 맛'의 진짜 맛은?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연예인이 결혼까지 한 건 초유의 사건이었다. 지난 9월부터 TV조선 <연애의 맛>에 출연했던 이필모-서수연은 실제 연인이 됐고, 지난 9일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동안 수많은 '짝짓기' 예능이 존재했지만, 그건 엄연히 '가상(假想)'에 불과했다. 출연하는 연기자(그들의 직업이 무엇이든 일정한 대본에 맞춰 연기를 한다는 의미에서)'도, 그걸 지켜보는 '시청자'도 그저 모르는 척 할 뿐이었다. 


'실감나게 연기하기만 하면 기꺼이 속아줄게!' 그것이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내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질서였다. 한때 결혼설까지 나돌았을 만큼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김종민-황미나 커플의 경우에도, "지금 생각해보면 '일할 때만 만났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김종민의 고백을 통해 그들이 '연출'했던 달달함이 그저 방송용이었다는 게 증명됐다. 흔한 일이기에 시청자들은 그리 놀라지도 않았다.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MBC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은 왜 몰락의 길을 걸었는가. 시간이 갈수록 식상함이 커지고,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생겨나 희소성이 없어진 탓도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거짓말' 때문이었다. 가상 결혼 중인 출연자들의 '열애설'이 계속 터져나오자 시청자들이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이다. 애초에 진정성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어도, 최소한의 예의는 있길 바랐다고 해야 할까. 



<우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후, 방송사들은 비(非)연예인(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채널A <하트 시그널>, SBS <로맨스 패키지>, tvN <선다방>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하트 시그널>과 <선다방>은 시즌2까지 방송되며 고정적인 팬층을 구축했다. 그러나 비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화제성에서 한계가 뚜렷했다.


그 즈음에서 TV조선이 다시 '연예인 짝짓기' 카드를 꺼내들었다. <연애의 맛>은 초반에 '남자 연예인-여자 비연예인' 구도를 통해 순식간에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특히 김종민-황미나 커플의 감정이 진심인지 아닌지를 두고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첫회 1.45%(닐슨코리아 유로플랫폼 기준)였던 시청률은 꾸준히 상승해 12회만에 5%를 돌파하더니, 22회에서는 최고시청률 5.927%까지 치솟았다. 


<연애의 맛>의 성공은 결국 '진정성' 때문이었다. 김종민-황미나 커플은 뛰어난 연기를 통해 시청자들을 충분히 헷갈리게 만들었고, 이필모-서수연 커플은 <연애의 맛>이 '리얼리티'를 넘어 '실재'라는 걸 증명해 시청자들의 신뢰를 이끌어냈다. 그만큼 상황 설정과 편집에 있어 제작진의 역량이 뛰어났다고도 볼 수 있고, 출연자들(중 일부)의 마음가짐이 진실됐다고도 볼 수 있다. 



이렇듯 '진정성'이라는 날개를 달고 천당까지 올랐던 <연애의 맛>이 김정훈이라는 암초를 만나 지옥으로 추락하기 일보직전이다. 지난 26일, <연애의 맛>에서 연애에 각별한 의지를 내비쳤던 김정훈이 교제 중이던 A씨에게 피소됐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그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A씨에 따르면, 김정훈은 A씨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난 후 임신 중절을 종용했다고 한다. 


또, A씨가 부모님이 있는 본가로 들어가겠다고 하자 이를 만류하며 집을 구해주겠다고 했으나 임대보증금을 지급하지 않은 채 연락을 끊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정훈의 소속사 크레이이티브광 측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A씨의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 여부를 따져봐야 하겠지만, 최소한 김정훈이 현재 '솔로' 상태가 아니라는 건 확실해 보인다. 이건 두말할 것 없이 명백한 기만 행위다. 


<연애의 맛> 제작진은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김정훈이 인터뷰 당시에 '연애를 안 한 지 2년이 넘었다'고 했다며, 그 진정성을 철석같이 믿었다는 것이다. 물론 작정하고 거짓말을 한다면, 실제로 연애를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검증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그 진정성이라는 것이 제작진이 담보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는 이야기다. 판타지를 유지시켜 주던 아주 가는 실선마냥 얄팍했던 신뢰는 깨졌다.  



'연예인의 짝짓기'라는 복고를 끄집어냈던 <연애의 맛>은 예외적이었다. 아니, 오로지 이필모만이 예외적이었다. 여전히 <연애의 맛>과 같은 프로그램이 퇴행적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언제까지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한 '가상 쇼'를 들여다봐야 하는 걸까. 게다가 '연애'라고 하는 가장 사적인 이야기마저도 공개적으로 스토리텔링하는 방송이라니! 정말이지 괴기스럽지 않은가. 


차라리 이쯤에서 그만두는 건 어떨까. 그런데 한번 '맛'을 본 <연애의 맛>이 지금의 쾌감을 포기할 리 만무하다. 김정훈이 빠진 자리는 잠시 공석으로 내버려두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선수'를 데려다 놓고, '이건 진짜인지 가짜인지 맞춰봐'라며 시청자들을 농락할 게 분명하다. 그나저나 김정훈과 함께 '커플 연기'를 해야 했던 김진아는 또 무슨 죄란 말인가. <연애의 맛>이 알려준 그 맛이라는 게 참 여러모로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