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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도 스토킹 당한다고? '유퀴즈'와 서아람 검사가 전한 강력한 메시지

너의길을가라 2021. 4. 29.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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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법의 날' 특집으로 꾸려졌다. 방귀 소리도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21년 차 베테랑인 윤병임 속기사,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 뜨거운 한국 사랑에 귀화까지 한 데이비드 린튼 변호사, 드라마가 아닌 현실 속 검사 이야기를 들려준 수원지검 형사3부 서아람 검사, '좋은 판사'를 꿈꾸는 수원지방법원 김동현 판사가 출연해 저마다의 정의를 이야기했다.

"저희가 항상 유혹에 빠져요. 서류 하나를 넘기고 싶은 유혹."

유재석은 그동안 판사, 변호사 자기님은 출연한 적이 있어도 검사 자기님은 처음이라며 서아람 검사에게 많은 궁금증을 드러냈다. 아마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검사의 이미지, 그러니까 날카롭고 매섭게 피의자를 몰아붙인다거나 혹은 권력과 밀접히 맞닿아있는 모습 때문이리라. 공교롭게도 tvN 드라마 <비밀의 숲>의 그 유명한 황시목 검사도 형사3부가 아니었던가.

서아람 검사는 형사3부가 '송치강력'을 전담하는 부서라고 설명했다. 경찰이 초동수사한 무거운 강력 사건을 검찰이 넘겨받아 수사하는 곳이다. 서 검사는 그 중에서 교통, 사행 행위(도박), 가정 폭력을 담당했다. 이야기는 의욕이 넘치던 초임 시절로 이어졌다. 밤을 꼬박 새워가며 비몽사몽 책상에 앉아서 서류를 넘기고 있었는데, 선배 부장 검사가 다짜고짜 혼을 내더라는 것이다.


"너 당장 집에 가서 자고 와라. 너는 검사 자격이 없어."

무슨 까닭이었을까. 부장 검사가 지적했던 핵심은 검사 입장에서는 수많은 사건 중 하나일 뿐이지만, 사건 관련자에게는 평생 한 번 있는 중대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평생 처음 만나는 검사가 비몽사몽 앉아서 자신의 서류를 읽고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걱정스럽고 불안하겠는가. 서 검사는 선배의 따끔한 지적에 정신을 번쩍 차리고, 집으로 가서 잠을 잔 후에 다시 서류를 넘겼다고 한다.

보이스 피싱을 비롯해 다양한 사건과 경험을 얘기하던 중, 서 검사는 방송을 통해 진짜 말하고 싶었던 이슈를 꺼냈다. 바로 '스토킹 특별법'이었다. 그는 검사도 범죄의 타깃이 된다며 그 위험성을 언급했다. 검사를 스토킹한다? 어떤 경우일까. 불만을 품거나 집착하는 케이스였다. 전자는 처벌을 받았거나 고소한 사건을 기소하지 않았을 때였고, 후자는 검사의 행동을 호의로 착각한 경우였다.

서 검사는 형사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그 기저에 스토킹이 깔려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음에도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없어 곁가지의 자잘한 범죄로 처단해야 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동안 스토킹은 그동안 경범죄로 처벌되어 왔다. 경범죄가 무엇인가. 고성방가, 쓰레기 투척, 노상 방뇨처럼 상대적으로 사소한 범죄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그에 비해 스토킹은 죄질이 훨씬 무거운 강력 범죄이다.


"핵심은 스토킹임에도 불구하고 이걸 처벌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걸 처벌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거침입, 폭행, 모욕 이렇게 자잘한 범죄로 처벌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아서 (...) 검사로서 무력감을 느끼고 안타까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어요."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됐던 '세 모녀 살인 사건'의 피의자 김태현의 범죄도 스토킹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애당초 스토킹을 엄중히 처벌하는 법률이 제정돼 있었다면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서 검사가 느꼈을 무력감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다행히도 지난 4월 20일 드디어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란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다. 1999년 처음 발의되고 무려 22년 만의 일이다.

"스토킹행위"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에 대하여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가.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나. 주거, 직장, 학교, 그 밖에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장소 또는 그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다. 우편ㆍ전화ㆍ팩스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물건이나 글ㆍ말ㆍ부호ㆍ음향ㆍ그림ㆍ영상ㆍ화상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
라.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하여 물건등을 도달하게 하거나 주거등 또는 그 부근에 물건등을 두는 행위
마. 주거등 또는 그 부근에 놓여져 있는 물건등을 훼손하는 행위

지금까지 스토킹 행위에 대해 1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나 구류·과료로 처벌했지만, 앞으로는 최대 징역 5년 이하의 징역을 가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당장 적용되지는 않는다. 법 제정 6개월 후인 10월 21일부터 시행된다. 우리 사회가 좀더 경각심을 갖고 발빠르게 대처했다면 무고한 많은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았을 거라는 씁쓸함이 남는다. 방송에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앞으로의 과제도 많다.


지난해 전국에서 스토킹 범죄로 접수된 112 신고 건수는 4천 515건에 달한다. (국회 행정안전위 박완수 국민의힘 의원이 24일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 하지만 처벌로 이어진 건수는 488건(통고처분 338건·즉결심판 150건)에 불과하다. 89.2%에 해당하는 대다수의 사건이 현장에서 종결됐다. 주의나 스토킹 고소 절차를 안내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됐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회 인식의 변화이다. 그동안 가볍게 여겨왔던 스토킹 행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안들을 고심해야 한다.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스토킹행위'의 범위는 여전히 모호하다. 참고로 영국의 경우에는 두 번 이상 반복되면 스토킹 범죄로 간주한다. 또, 피해자가 가해자의 보복으로부터 얼마나 보호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22년이나 걸릴 만큼 지난한 변화였지만, 그럼에도 첫걸음을 뗐다. 서 검사가 그토록 만들고 싶어했던 스토킹 처벌법이 만들어졌다. 남은 건 실효성 있는 법 적용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달라져야 한다. 90년대 유행했던 노래의 절절한 가사를 들어보면 '이거 스토킹인데?'라고 화들짝 놀라는 경우가 제법 있다. 당시에는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불렀던 기억이 있다.

혹자는 지나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좀더 예민해져도 괜찮다. 그래야 더 이상의 무고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을 테니까. 언제나 강력 범죄의 출발은 '그 정도는 괜찮아'에서 비롯됐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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