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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십으로 타오른 '우리 이혼했어요', 이것이 이혼의 맛인가?

너의길을가라 2020. 12. 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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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도 내가 여자로 보이나? 이런 기대감이 있잖아."

아.. 탄식이 절로 나왔다. 선우은숙은 결국 자신의 마지막 패까지 꺼냈다. 관계 회복의 실낱 같은 가능성을 붙잡으려는 듯했다. 만약 이영하가 다시 잘해보자는 제안을 하면 진지하게 고민해 볼 것 같다던 그의 말이 스쳐지나갔다. 자존심은 중요하지 않은 듯 보였다. 이혼하고 13년 만에 단둘이 마주앉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으리라. 하고 싶었던 말은 하고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선우은숙의 용기는 허무하게 끝이 났다. 이영하는 어젯밤 일을 사과하고 반성한다면서도 또 다시 지인들을 불러 모았다. "자기, 달라졌네?"라고 흐뭇해하던 선우은숙은 실망감을 느꼈다. 마지막 날만큼이라도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희망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 정도면 수모라고 해도 될 정도였지만, 선우은숙은 이영하의 배려없는 행동이 늘상 있었던 일이라는 듯 받아넘겼다.

손님들이 도착하면 대화할 기회조차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선우은숙은 용감하게 마지막 대화를 시도했다. 그는 과거 자신에게 상처를 줬던 배우의 일을 다시 끄집어냈다. 응어리가 쌓여 있었던 모양이었다. 선우은숙은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사람과 굳이 골프를 치러 다녀야 했냐고 따지며, 집 앞까지 와시 기다리다 이영하이 차를 타고 가는 건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 배우와의 갈등으로 방송국에 가는 게 죽도록 싫어서 도피성 임신을 했던 것이라는 말까지 꺼냈다. 선우은숙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나를 위해 내가 싫다는 사람과 만나는 걸 자제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선우은숙이 듣고 싶었던 말은 결국 내 편이 되어 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영하는 그 답을 캐치하지 못한 채 상대방을 변호하고, 자신의 과거 행동을 이해시키는 데 열중했다.

결국 평생에 걸쳐 듣고 싶었던 한마디를 들을 수 없었다. 대화가 통하지 않자 그 제자리걸음이 답답했던 선우은숙은 자리를 뜨고 말았다. 침대에 홀로 앉은 그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오열했다. 서러운 마음이 몰려왔으리라. 시간이 지나도 이영하는 달라지지 않았다. 둘 사이의 벽은 여전히 견고하기만 했다. 서글프지 않았을까. 혹은 헛된 기대를 품었던 자신을 자책했을까.

선우은숙과 이영하에게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는 어떤 의미였을까. 그들이 함께 보냈던 2박 3일의 시간은 어떤 의미였을까. 한 사람은 진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고, 한 사람은 그 만남이 왠지 모르게 불편하고 어색하기만 했다. 이 엇갈림은 이미 과거에 경험했던 것인데, 이혼 13년 만에 다시 재확인해야 했다. <이래서 이혼했어요>가 된 셈이다.


3회까지 방송된 <우리 이혼했어요>가 주는 명확한 교훈은 그들이 숙고 끝에 결정한 이혼이라는 선택이 결국 옳았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그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싶어서 이 자극적인 쇼를 기획했던 걸까. 물론 아닐 것이(라 믿는)다. 실제 이혼한 부부를 통해 이혼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더 나아가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했으리라.

그러나 방송의 뉘앙스는 전반적으로 재결합에 방점을 찍은 채 진행됐고, 신동엽과 김원희 등 MC들도 '두 사람이 잘 됐으면 좋겠다'며 로맨스 드라마를 시청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물론 선우은숙과 최고기가 그런 의도를 내비쳤기 때문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균형 감각이 무너져 있었던 사실이다. 이혼으로 생채기가 난 관계를 예능이라는 얕은 틀에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과적으로 방송 후 남은 건 이혼에 대한 밀도 있는 고민이 아니라 '도대체 선우은숙을 괴롭힌 배우가 누구냐'는 가십뿐이다. 선우은숙의 '폭로' 이후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는 온통 그와 관련한 검색어들로 도배가 됐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는 그 배우의 정체를 추측하는 게시글과 악성 댓글이 쏟아졌다. 그 과정에서 생뚱맞은 이름이 거론되면서 2차 가해로 이어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 배우가 선우은숙과 이영하의 관계를 망친 주범이라 여기는 듯하지만, 사실 두 사람을 힘들게 한 진짜 원인은 외부가 아니라 두 사람 내에 있는 게 아닐까. 그 갈등의 국면에서 이영하의 무심한 태도가 상황을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선우은숙이 원했던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남편이 '남이 편'이 아니라 '나의 편'이라는 믿음이었다. 그 확신만 있었다면 선우은숙은 도망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와인과 함께 진솔한 대화를 나눴던 최고기와 유깻잎의 분량에서 <우리 이혼했어요>의 가능성을 좀더 엿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부부 싸움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가족 이야기부터 이혼 후 발견한 유깻잎의 다이어리 등 지금이라서 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좀더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마도 서로에게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이혼이 그들을 성숙하게 한 것 아닐까.

물론 판을 깬 건 이번에도 MC들이었다. MC들은 최고기와 유깻잎, 그리고 딸 솔잎이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며 '정상적'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비혼 출산 등 가족 형태가 다변화되고 있는 시대적 흐름을 고려하지 않은 올드한 생각이었다. 정말 이혼을 제대로 다루고자 한다면 좀더 다양성을 갖춘 시각을 지난 MC나 패널이 필요하지 않을까. 진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어찌됐든 제작진은 웃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방송을 통해 흘린 가십이라는 불씨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만나 활활 타오르고 있으니 말이다. 시청률은 고공행진 중이고, 화제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되면 난항을 겪었던 섭외 문제도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하지만 내밀한 가족사가 계속 언급될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의 성격상 '부작용'에 대한  제작진의 고민이 필요하다. 

<연애의 맛>과 <아내의 맛>에 이어 <우리 이혼했어요>를 통해 '이혼의 맛'까지 섭렵한 TV조선은 그 어떤 방송국보다 자극적인 맛으로 시청자들을 홀리는 데 성공했다. 이러다가 아예 혀의 감각을 잃어버리게 되는 건 아닐까.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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