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서재

『사회학의 쓸모』, 지그문트 바우만이 던진 병 속의 메시지

너의길을가라 2016. 4. 11. 19:15


세상의 여타 학문들에 비해 사회학(社會學)의 역사는 짧다. 노명우의 말을 빌리자면 옹색하다. 신생학문이라 할 수 있는 사회학이지만, 비교적 빨리 그 패기를 잃어버렸다.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아카데미 내부에 안전하게 뿌리를 내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학은 이미 보수 학문의 대표 주자가 되어버렸다. 역사는 짧지만, 급속도로 늙어버린 학문인 셈이다.


영기(靈氣)로 가득 차 있던, 패기 넘치던 사회학이 이제 그 '쓸모'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놓였다는 건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것은 '자신의 패기를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그 패기의 정교화를 선택했'던 사회학이 스스로 자초한 몫이었다. 분석적인 과학을 닮고자 했고, 그리하여 결국 기성 학문 분과로 인정받았지만 인간 존재의 삶으로부터 고립된 것은 사회학이 정작 '사회'로부터 '외면받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불안감보다도 더 해롭다고 판명된 유행이라는 올가미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조심해야 한다. 사실 사회학자라는 우리의 소명은, 더 이상 낭만적인 수 없는 이 시대에 인간적 가치를 옹호하는 용기와 그에 대한 일관성 있는 태도, 그리고 인간적 가치에 대한 충성심이 심사되는 영역이 될 것이다. 우리가 막스 베버의 반세기 전 언급을 사회학 강의실 벽에 새겨 넣는다면 꽤 좋은 충고가 될 것이다. 직업적 사상가가 직접적인 의무감을 지닌다면, 시대에 만연해 있는 우상의 면전에서 차가운 머리를 유지하고 필요한 경우 지배적인 흐름을 거슬러야 한다."


- 지그문트 바우만, 리즈 대학 교수 취임연설, 1972 -


『사회학의 쓸모(What Use is Sociology?)』는 남루(襤褸)한 현실에 직면한 사회학이 그 스스로의 쓸모를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에게 묻고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1925년 생인 바우만은 이제 만 90세의 고령이지만, 여전히 뜨거운 학구열을 뽐내고 왕성한 활동을 하며 '현장'을 누비고 있다. '현장성'을 잃어버린 사회학이 제대로 된 임자를 찾아간 셈이다. 


덴마크 올보르대의 미켈 야콥슨과 영국 헐대의 키스 테스터 교수가 2012년 1월과 2013년 3월 사이에 지그만트 바우만과 가진 4차례의 대담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66개의 질문과 대답을 통해 사회학이라는 학문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다. 또, 사실상 지그문트 바우만 사상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의 오랜 고민과 해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회학은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익숙한 것을 낯설게(익숙한 것이 주장하는 자기 확신의 가면을 벗겨내기) 하고, 익숙하지 않은 것을 익숙하도록 (길들이고, 적응하게 하고, 관리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기) 해야 하죠.


'병속에 든 메시지'는, 실패는 일시적이지만 희망은 지속적이라는 증명입니다. 또한 가능성은 파괴될 수 없으며 가능성의 실현을 방해하는 역경은 단단하지 않다는 증명입니다.


- 『사회학의 쓸모(What Use is Sociology?)』 -


바우만은 이 책에서 사회학은 어떤 학문이며 그 쓸모가 무엇인지, 사회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 사회학이 '쓸모'를 다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회학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등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을 소개하는 어떤 글에는 『사회학의 쓸모』가 지그문트 바우만의 '자전적 사회학 개론서'라고 쓰고 있다.


'유동성'이라는 용어로 근대사회를 설명(『유동하는 근대(Liquid Modernity)』)에 빠져들어 그의 저서들을 꽤나 성실하게 챙겨보는 편이지만, 여전히 그의 글(말)은 어렵기만 하다. 그 스스로도 난해한 전문용어의 발전(뿐만 아니라 가치중립성에 대한 집착, 전문가주의를 이용한 각종 도구의 차용)이 사회학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켰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책들이 어려운 건 사실이다. 



경제학이 스스로의 몸을 낮추려고 했던 최근의 몇 년의 노력에도 여전히 원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을까. 물론 그는 오래 전부터 '사회학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전문가 놀이'를 그만뒀고, 사회학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의 언어가 '어렵긴' 하지만 '사회학 사전(이라는 게 있나?)'을 꺼내놓고 해석을 할 영역의 범주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작은 책은 사회학자가 자신을 과학이라는 세계의 가치중립적인 기술자가 아니라, 자신 또한 세계에 관여하는 행위의 주체임을 인정하기를 권하고 있다.


- 미켈 H. 야콥슨, 키스 데스터 -


사회학을 '인간 경험과의 대화'라고 정의하고 있는 바우만은 사회학의 소명을 '변화하는 세계에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사회학의 쓸모는 구체적인 사람들의 경험으로 구성되어 있는 '당대', '지금' 여기'에 개입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역할을 놓아버리고 '정보만을 제공하'거나 나아가 '권력에 팔려'가버린 사회학은 제대로 된 '쓸모'를 다하지 못하는 위험한 도구에 불과하다.



바우만은 사회학이 '우리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바로 이 윤리적 책무의 빚을 지고 있'고, '이러한 윤리적 본분을 명예롭게 이행하기 위해서 사회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 경험과의 지속적인 대화에 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비단 사회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의 지향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특히 '사회'와 '그 속의 인간'을 연구하는 사회학이라면 더더욱 그래야만 할 것이다.


과연 사회학은 바우만의 쓰디 쓴 지적을 받아들이고, 다시 그 '쓸모'를 다 할 수 있을까? 그 스스로가 자신의 운명을 '병에 넣을 메시지를 휘갈겨 쓰는 것'이라고 되돌아 본 노학자는 자신의 메시지들이 '스마트 미사일처럼 도착점을 찾고 결국 발견해낼 것'이라 낙관한다. 또, 병속의 메시지가 '현대 사회에서 고통 받고 있는 개별 항해사들에 의해 선택받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 항해사들은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그 병을 열고 싶어 할 것이며, 결국 그 속에서 발견한 메시지들을 흡수하게 되겠지요." 이번에도 바우만은 병 속에 자신의 메시지를 가득 담아 물결에 흘려 보냈다. 남은 건 '항해사'들의 몫이다. 과연 우리는 그 병을 열고, 그 속에서 발견한 메시지들을 흡수해 '지금' '여기' 삶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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