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61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01)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산다는 건, 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인생이란 놈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절대로 우리가 알게 앞통수를 치는 법은 없다고. 나만이 아니라, 누구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그러니 억울해 말라고. 어머니는 또 말씀하셨다. 그러니 다 별일 아니라고. 하지만, 그건 육십 인생을 산 어머니 말씀이고, 아직 너무도 젋은 우리는 모든 게 다 별일이다. 젠장. - 노희경, 노희경 대본집 《그들이 사는 세상》-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97)

나는 죽음이 꺼림칙하거나 두려운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앞서 지상을 스쳐 간 많은 목숨이 그러했듯 모두가 언젠가 죽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안심이 된다. 끝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공포는 도리어 그 제한된 삶을 영원으로 믿는 순간에 온다. 영원한 젊을 갖고 싶은가? 그 젊음의 불안과 방황까지도? 영원한 사랑을 하고 싶은가? 그 사랑의 상처와 고통까지도? 끝나지 않는, 끝날 수 없는 영원한 삶이야말로 얼마나 끔찍하고 지루한 것인가?! - 김별아, 『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中에서 -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96)

삶을 바꾸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서른 살이 넘으면 불가능에 가깝다. 누가 내 삶을 충고하면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그래도 삶을 바꾸어야 한다면 아, 그 깨달음의 무게는 얼마나 클 것인가.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깨달았을까. 대부분 '진심'이라고 하는 그 무엇. 나를 변함없이 나로 만들게 하는 그 무엇. 그리고 그 무엇에는 항상 눈물이 따른다. - 김탁환, 『김탁환의 원고지』中에서 -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93)

둘이 사랑할 때, 우리는 여름 안에 있었습니다. 둘이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섬 안에 있었습니다. 둘이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낯선 풍습을 가진 이방인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그 여름, 이방인들의 섬은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세계였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더 이상 뜨거워지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둘만의 섬을 떠나게 될 것이며,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게를 더 이상 낯설게 바라보지 않을 테니까요. 서로 사랑한 두 사람은 늦든 빠르든 세계가 어떻게 종말을 고하는지 보게 될 겁니다. 여름의 한가운데 있는, 신기루와 같은, 둘만의 섬. 잠시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물방울 같은. 그 섬이 그토록 아름다웠다면, 영원하리라 믿었던 것이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졌기 때문이죠. - 김연수, 『우리가 보낸 순간』中..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92)

그래, 상처를 받아본 사람은 상처를 주지 않지.던진 돌에 가슴 한구석을 다쳐본 사람은 남에게 돌을 던지지 않아.한 번이라도 진실의 눈과 눈이 마주한 사람들은거짓을 가까이 하지 않지.이별이란 단어에 생의 한 부분을 베어본 이들은함부로 이별이란 말을 꺼내지 않아. 그래, 다 그런 거야. 진짜 여행을 만나고 온 자들의 입에서좀처럼 여행을 엿들을 수 없듯이. - 장연정, 『눈물 대신, 여행』中 -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90)

왕비의 침전 이름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경복궁의 교태전(交泰殿)은 주역의 태괘에서 나온 것으로, 태괘는 곤괘 아래에 건괘가 겹쳐진 형상이었다. 이는 하늘의 양기는 아래에서 위로 상승하고 땅의 음기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으로, 교태 즉 하늘과 땅이 교차하면서 장차 국왕이 될 적장자가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었다. 또한 창덕궁의 대조전도 대조(大造), 즉 '큰 인물을 만든다'는 뜻으로 장차 국왕이 될 인물이 태어나기를 기대하는 이름이었다.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국왕의 일생』 中 -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88)

악의 활동, 피해가 발생하는 시간은 짧다. 그러나 악의 이유를 묻게 되면 영원히 피해자가 된다. 왜? 라고 질문하는 그 순간부터 '피해자됨'의 진정한 의미, 불행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 당하는 것을 넘어 사로잡히게 된다. 악의 이유에 대한 궁금증은 피해자의 자아 존중감을 파괴하는 악의 본질이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무관심으로 악의 기능을 중단시키자. 그럼, 누가 악과 싸우나? 그건 악 자신이 할 일이다. - 정희진,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中에서 -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85)

행복을 추구하는 한 너는행복할 만큼 성숙해 있지 않다.사장 사랑스러운 것들이 모두 너의 것일지라도. 잃어버린 것을 애석해하고,목표를 가지고 초조해하는 한 평화가 어떤 것인지 너는 모른다. 모든 소망을 단념하고목표와 욕망을 잊어버리고행복을 입밖에 내지 않을 때, 그때 비로소 세상일의 물결은 네 마음을 괴롭히지 않고너의 영혼은 마침내 평화를 찾는다. - 헤르만 헤세, 「행복」-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84)

16세기 유럽 의학계는 아메리카에서 노예선과 함께 건너온 페루산 사리풀에 풀 빠졌다. 저명한 식물학자와 의사들이 앞다퉈 이 풀의 효능을 극찬하면서다. 스페인의 의사이자 식물학자인 니콜라스 모나르데스는 편두통 · 통품 · 치통 · 부종 · 열병처럼 흔하면서도 때로는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20가지 빌병에 대한 이 풀의 효능을 소개했다. 영국 식물학자 존 제라드도 그 의학적 효능을 모두 논하자면 책 한 권 분량에 달한다고 말했다. 페루산 사리풀이란 유럽인이 담배에 처음 붙인 이름이다. 목화와 더불어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비식용 작물로 꼽히는 담배는 이렇게 '만병통치약'이자 '기적의 치료제'로 문명 세계와 만났다. - 신동호, 「흡연 경고 그림」中 -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83)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가져다 주지 않는다. 물론 백지처럼 자아도취에 젖고 마음이 흥분되며, 가슴 한쪽이 갑자기 아릿해지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관능이 새로이 꿈틀거리는 것을 즐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일이 다른 뭔가를 가져다주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사랑의 고전적인 오류는 거기서 싹트는 것이다. 사랑은 지속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사랑은 한 줄기 바람일 뿐이다. - 카롤린 몽그랑, 『밑줄 긋는 남자』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