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얼어있던 회기동에 이른 봄바람이 불었다. 백종원의 솔루션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효과를 발휘했고, 경희대학교 인근 벽화골목은 몰려 온 손님들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솔루션을 신청했던 닭요릿집, 고깃집, 피자집, 컵밥집은 모두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 중간에 고비가 없지 않았지만, 백종원의 도움을 받으며 잘 견뎌냈다. 물론 당사자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사장님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회기동 편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컸다. 첫째, 어느 순간부터 필수 요소가 돼버린 '빌런'들이 등장하지 않았다. 빌런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 홍은동의 홍탁집 아들(도 이제 어엿한 사장님이다), 청파동의 피자집 사장님과 고로케집 사장님 등은 이해할 수 없는 언행으로 시청자들의 혈압을 올렸고, 더불어 시청률도 함께 끌어올렸다. 청파동을 다뤘던 48회는 시청률 10.4%로 최고 기록을 찍었다.

둘째, '빌런이 없어도 된다'는 걸 증명했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빌런들의 덕(?)을 잔뜩 봤던 제작진의 입장에서 '빌런의 부재'가 가져올 변화가 불안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의 공식을 예능에도 적용했던 대표적인 사례였다. 매회마다 논란이 반복되고, 그 수위도 점점 높아지자 제작진은 칼을 빼들었다. 지난 20일 방송된 54회는 시청률 8.9%로 끄떡 없었다.


셋째, 빌런이 빠진 자리를 연예인이 가득 들어찼다. 아무래도 화제성이 떨어지는 공백을 어떻게든 채워야 한다는 제작진의 불안감이 도드라졌던 대목이다. 물론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연예인의 출연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문제는 등장하는 횟수와 분량이었다. 지난 회에서 가수 크러쉬가 자신의 '매니저와 함께' 출연해 낮술까지 마셨는데, 그 분량이 이전과 비교해 지나치게 길었고, 게다가 여러가지 의도가 있어 보였다.

이번 회에는 차은우가 등장해 백종원과 피자 시식과 평가를 맡았다. 또, 걸그룹 네이처의 새봄, 로하, 유채와 SF9의 찬희와 다원, 프로미스나인의 이나경, 송하영, 장규리가 등장했다. 이렇듯 아이돌로 채워졌는데, 아마도 연예인 최다 출연 기록이었을 것이다. 홍보 효과에 있어서 윈-윈을 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시청자들이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바라는 건 일반 시민들 중심의 방송인 만큼 제작진이 깊이 고민해 봐야 할 부분이다. 분명 '과유불급'이었다.


"우리 절대로 더 이상 울면 안 돼. 사람들이 가식이라고 운다고 해."

넷째, 빌런이 없어도 악플은 계속됐다. 실제로 고깃집 사장님 부부는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에 상처를 입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동안의 고충과 현재 상황의 어려움이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흘린 눈물에 일부 시청자들이 악플을 달아 놀았고, 기사를 살쳐 보다가 그걸 보고 마음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고깃집에 달린 악플은 약과였다. 진짜 포화를 당한 건 컵밥집이었다. 도대체 왜 컵밥집 사장님 부부는 욕을 들어야 했을까?

PPT까지 준비하며 백종원과 대립각을 세웠기 때문일까? 그들이 100% 옳다고 할 순 없지만, 노량진의 컵밥이 '섞으면 그 맛이 그맛'이라는 분석 자체는 틀린 게 아니었다. 젊은 부부가 겪는 시행 착오에 대해 우리가 지나치게 각박했던 건 아닐까? 컵밥집은 빌런이 없었던 회기동 편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논란거리가 됐다. 그런데 초반의 비난이 컵밥집의 경영방식에 국한됐다면, 그 이후로 갈수록 비난이 점차 야비해져 갔다.


'화장 좀 적당히 하라', '목폴라에서 손 좀 떼라', '모자를 몇 번이나 만지는 거냐.'

포털 사이트에 달린 댓글은 차마 인용하기 민망할 정도다. 그 내용은 다름 아니라 컵밥집 사장님의 외모, 즉 옷과 화장에 대한 것이었다. 그 댓글들은 결론적으로 '위생'과 연결지어져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추구하려 했으나, 실제로 그 댓글들이 가리키는 건 스스로의 편견과 선입견이었으리라. 요식업을 하는 자영업자의 생김새와 옷차림이 정해져 있는 것일까? 요식업을 하면 외모를 가꾸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걸까?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에게 방송을 의식해 꾸민 것 같다는 지적은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만약 우리가 그 자리에 있게 된다면, 옷매무새도 가다듬지 않고 초췌한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을까? 또, 애초에 조리 과정에서 위생 문제가 있었다면, 방송에서 백종원이 지적을 했을 게 자명하다. 하지만 그런 문제는 노출되지 않았다. 그러자 인터뷰 도중에 (긴장해서) 모자를 만지는 것까지 문제삼는다. 이건 도가 지나쳤다.

빌런이 빠진 자리에 제작진은 연예인을 불러 들였고, 시청자는 자신들만의 빌런을 만들어 화살을 마구 쏘아댔다. 다행히도 거제도로 떠나는 다음 편에는 연예인의 출연이 용이하진 않을 듯하다. 그러나 워낙 과격한 사장님들이 예고편을 수놓은 만큼 걱정이 되기도 한다. 제작진과 함께 시청자인 우리도 함께 고민해 봐야 할 부분이다. 상처입은 고깃집 사장님에게 백종원은 "상처 받지 마세요. 대부분의 시청자는 응원해요."라고 위로했다. 컵밥집도 마찬가지다. 부디, 힘을 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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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맛이야!"

추억의 광고 속 한 장면을 드라마에 이토록 절묘하게 녹여낼 줄이야! 웃다가 울다가, 이번에는 깜짝 놀랐다. '국민 배우' 김혜자를 위한 오마주였을까. 이미 웃음이 터졌고,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김혜자가 출연했던 조미료 광고의 저 맛깔스러운 대사를 접하지 못했던 세대들이야 별다른 생각없이 지나갔겠지만, 그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드라마 속 김혜자의 입으로 재현된 저 장면이 반가워 한참동안 마음이 울렁거렸을 것이다.

JTBC <눈이 부시게> 3, 4회는 교통사고가 난 아빠를 살리게 위해 시간을 되돌린 25살 김혜자(한지민)가 그 대가로 70대로 늙어버린 후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갑자기 할머니가 된 김혜자(김혜자)는 좌절했다. 한순간에 젊음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렸으니 그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지났고, 혜자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 조금씩 마음을 열어 갔다. 바야흐로 '김혜자의 웃픈 70대 적응기'가 시작된 것이다.

<눈이 부시게>의 최대 관건은 2인 1역을 맡은 한지민과 김혜자가 '김혜자'라는 캐릭터를 얼마나 이질감 없이 연기하느냐였다. 그건 온전히 김혜자의 역량에 달려 있었다. 다시 말해서 김혜자가 '몸은 70대지만, 마음은 25세인 김혜자'를 얼마나 실감나게 연기하느냐로 결정되는 문제였다. 사실 걱정은 하지 않았다. 김혜자가 누구인가. 데뷔 56년의 공력을 지닌 '국민 배우'가 아닌가. 그런데 김혜자는 기대 그 이상을 해냈다.


김혜자의 연기는 매우 섬세했다. 그는 25세 김혜자를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것보다 얇은 목소리를 내고 있고, 말의 속도도 평소보다 빠르게 했다. 김혜자는 한지민이 탄탄하게 구축해 놓은 캐릭터를 완벽히 본땄다. 머리 스타일과 목소리 톤, 말투를 일치시켜 싱크로율을 한층 끌어 올렸다. 어느 순간, 시청자들은 한지민과 김혜자가 한 사람으로 겹쳐 보이는 신기한 경험까지 할 수 있었다. 김혜자의 연기가 '설득력' 그 자체였던 셈이다.

최근 '타임 리프'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워낙 쏟아졌던 터라, <눈이 부시게>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뻔하다는 인상을 줬을지도 모르겠다. 첫 회 시청률 3.185%(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와 2회 시청률 3.188%는 '넌 좀 달라?'라는 시청자들의 유보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그런데 <눈이 부시게>의 타임 리프는 분명 남달랐고, 그 색다름에 시청자들은 자연스레 빠져들었다. 3회(3.743%)부터 상승 곡선을 그린 시청률은 4회 5.368%로 껑충 뛰었다

<눈이 부시게>의 최대 강점은 섣불리 비탄에 젖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드라마의 이야기는 슬플 수밖에 없다. 혜자는 생기 넘치는 25살에서 얼굴에 주름살 가득한 70대 할머니가 됐다. 단순히 외모의 변화뿐만 아니라 신체의 노화도 겪었다. 이제 계단 5개만 올라도 무릎이 '찌그덕'하고, 조금만 뛰어도 숨이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70대 할머니가 25세가 된다면 그 자체로 코미디겠지만, 청춘의 상실은 비통하기만 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 나이만큼 약을 먹는 거나 다름없다. 어르신들이 밥상 앞에서 밥맛없다고 하던 게 이해가 간다. 식사보다 그 이후에 먹어야 하는 수많은 약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배가 부르니까. 예전에 TV에서 봤던가. 양식장 속 연어들이 밥과 같은 양의 항생제를 매일같이 먹으며 작은 수조에서 살고 있었다. 그쯤 되면 연어들은 스스로 사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약발로 사는 거였다. 앞을 가로막는 세찬 물살도, 매서운 곰의 발톱도 경험해보지 못한 연어는... 연어초밥 먹고 싶다."

그런데 <눈이 부시게>는 슬픈 이야기를 슬프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구성이 아니다.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부분적으로도, 전체적으로도 적절한 무게감을 유지한다. 그 균형감각이 놀랍기만 하다. 가령, 늙어버린 혜자가 신세를 한탄하다가도 문득 내면의 25세 혜자가 튀어나와 시청자들을 웃게 만든다. 또, 오빠 김영수(손호준)는 드라마 내에서 다소 엉뚱하다 싶었던 캐릭터였지만,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자신들보다 훌쩍 늙어버린 딸이 낯설고 어색한 엄마 이정은(이정은)과 아빠 김상운(안내상)의 눈빛은 보는 이의 마음을 절절하게 만들지만, <눈이 부시게>는 시청자들을 슬픔에 잠겨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엄마가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손님들에게 자신을 브라질에서 온 이모라 소개하는 혜자의 능청스러움을 통해, 아파트 경비 일을 하는 아빠의 도시락에 멸치를 가득 넣는 에피소드를 통해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또, 혜자의 반려견 '밥풀이'를 등장시켜 혜자와 이준하(남주혁)을 연결짓고, 웃음까지 이끌어 내는 대목은 감탄스러울 정도다. 물론 아직 큰 산들이 제법 남았다. 당장 기자를 꿈꿨던 준하가 가정 형편 때문에 꿈을 접고 노인회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걸 발견하고 충격에 휩싸인 혜자,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지 쉽사리 예측하기 어렵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눈이 부시게>는 남다른 균형 감각으로 웃음과 눈물을 적절히 조화시킬 테니까.

4회까지 방영된 <눈이 부시게>의 가장 큰 장점은 균형과 조화였다. '젊은 사람들은 늙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나이든 사람들은 젊음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을까'라는 묵직한 주제의식, 그 질문을 무겁지 않게 풀어내는 영리한 방식, 그 질문과 방식을 연기라는 그릇에 담아낸 배우들, 모든 것들이 적절히 조화로웠다. 한마디로 <눈이 부시게>는 정말이지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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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얼마를 냈을까?'


tvN <커피 프렌즈>를 보면서 수없이 들었던 물음이다. 유연석이 만든 흑돼지 토마토스튜와 귤카야잼이 듬뿍 발라진 프렌치 토스트를 먹고 얼마를 내는 게 적당할까? 손호준이 손수 내려준 고소한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고 얼마를 계산하는 게 적당할까? 최지우가 갈아준 100% 감귤주스의 적정가는 얼마일까? '알바생' 백종원이 특별 제작한 딱감바스 파스타에 얼마를 지불해야 '잘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커피 프렌즈>는 쉽고 간단한 방식으로 즐기며 기부하는 문화를 일컫는 '퍼네이션(Funation)'을 담아내는 프로그램이다. 많은 사람들을 기부의 장으로 이끌어 참여의 기쁨을 나눠주는 한마디로 '착한' 예능이다.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한없이 따뜻하고 편안해진다. 시청률도 6.135%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얄궂다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가격'이 없기 때문이다. 


흑돼지 토마토스튜 얼마, 프렌치 토스트 얼마, 감귤주스 얼마, 이런 식으로 각각의 메뉴에 가격표를 달아놨다면 고민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손님들은 적혀 있는 가격만큼만 지불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런데 <커피 프렌즈>의 메뉴판에는 가격이 없다. 굳이 규칙이 있다면 '내고 싶은 만큼' 내는 것이다. 



당장 돈을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 주문하는 목소리가 가볍고 경쾌하다.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으니 일단 시켜보는 것이다. 막상 먹을 때는 눈과 입이 즐겁기만 하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다는 반응이다. 출연자들이 그만큼 열심히 준비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어느새 그릇은 싹싹 비워진다. 이제 슬슬 고민이 시작된다. '우리 얼마 내야 하지?'


물론 정해진 '답'은 없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비슷한 종류의) 요리와 프랜차이즈 커피의 값을 생각하면 대략적인 틀은 나온다. 거기에 유연석과 손호준이 무려 '나를 위해' 직접 음식을 만들어줬다는 노고를 감안하면 지금 생각했던 금액보다는 조금 더 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유연석과 손호준의 '정성'과 '손맛'에 얼마나 가치를 매길 것인지는 개인의 몫일 것이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기부'라는 좋은 취지와 그에 일조한다는 의미가 남아있다. 어쩌면 이 부분이 가장 핵심적인 포인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불한 돈이 전액 기부된다는 걸 고려하면 조금 더 넉넉하게 써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그리 이론적으로 흘러가진 않는 모양이다. <커피 프렌즈>의 '매출액(기부금)'을 둘러싼 논란이 제법 시끄럽다.



지난 15일 방송된 <커피 프렌즈> 여섯 번째 영업의 총 매출액은 2,081,500원이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최고 기록이었다. 이 금액을 확인하고 출연자들은 토끼 눈을 하며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물론 충분히 큰 금액이긴 하다. 그러나 유연석 · 손호준 · 최지우 · 양세종 · 백종원 등이 점심부터 저녁까지 쉴 새 없이 일을 한 노력과 카페의 높은 퀄리티에 비하면 왠지 모르게 소소해 보인다. 


일부 시청자들은 몇몇 손님들이 굉장히 '짠' 금액을 내고 간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실제로 여러 잔의 음료와 여러 개의 음식을 시켜놓고 2~3만 원을 내고 나가는 장면도 여러 차례 눈에 띠었다. 물론 정확한 데이터가 공개된 게 아니라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와는 별개로 제주도의 물가, 재료값 등을 고려하면 만족스러운 액수가 아닌 건 분명하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제작진은 "금액을 떠나 기부가 편하고 즐거울 수 있음을 알리기 위한 취지로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카페를 찾아주신 손님들은 이 취지에 기꺼이 동참해주신 고마운 분들이다. 앞으로 손님들과 <커피프렌즈>를 재미있게 보고 계신 시청자분들로부터 나눔을 생활화하는 문화가 확산되기를 기대한다"며 '모범 답안'을 내놓았다. 액수보다 기부 문화의 정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액수에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의 기부 문화를 돌아보는 좋은 계기로 삼을 수는 있을 것 같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까. 손님들은 자율적으로 계산을 하라는 <커피 프렌즈>의 요구에 꽤나 당황했다. 어쩌면 내가 얼마를 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이 기부 욕구를 갉아먹었을지도 모르겠다. '많이 내면 뭐해? 알아주지도 않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을 법도 하다.


아직 첫걸음일 뿐이다. 우리의 기부 문화는 아직 갓난아기 수준을 겨우 벗어난 정도에 불과하다. 많은 기부금을 모으려면 '부자'들을 상대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차라리 '유연석과 한 끼 식사'를 판매하면 훨씬 더 많은 기부금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커피 프렌즈>는 더욱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기부의 생활화를 추구한다. <커피 프렌즈>의 담대한 걸음이 기부 문화를 성숙시키는 좋은 촉매제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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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차례의) 설이 지나갔지만, 설은 영원히 계속된다. 당장 추석도 남아있다. 우리에게 '명절'은 어떤 의미일까? 모범 답안은 '가족 간의 정(情)을 확인하는 시간'일 테지만, 실상도 그와 같을까? 명절을 떠올리면 '한숨'부터 나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그리고 한숨의 주인공은 대부분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의 보다 '정확한' 이름은 '며느리'다. 


'러시아 며느리' 고미호가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 새롭게 합류했다. 한국 생활 6년차, 결혼 5년차인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부분이 많다. "경애랑 나랑 1살밖에 차이 안 나니까, 그냥 나를 미호라고 부르면 되잖아." 나이와 관계없이 편하게 이름을 부르는 데 익숙했던 그에게 한국의 복잡한 호칭 문화는 난해하기만 하다. 여기까지는 이해를 한다고 치자. 


"(사촌 시누이가) 나보다 나이 한 살 많은데, (왜 나한테) 언니라고 부르지?" 이 합리적인 물음에 대한 한국적인 답은 '남편의 나이가 호칭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절대적 기준은 나이가 아니라 '남편의 나이'였던 셈이다. '미호, 몰랐겠지만.. 한국인에겐 가부장제의 잔재가 뿌리 깊게 남아있어.' 이쯤되면 '기준'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하고, '문화'라고 퉁치기도 뻘쭘하다. 



"오늘 어떻게 보면 제대로 처음 맞는 명절이잖아. 오늘 음식 준비를 해야 되는데, 잘 해봐."

"오빠도 도와주지. 도와주는데, 그런데 내가 도와줄 게 뭐 있나?" 


호칭 문제는 시작에 불과했다. 안타깝고 애처롭지만, 미호의 앞에는 훨씬 더 큰 산이 놓여있었다. 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의 명절 문화를 경험해야 할 차례다. 남편 이경택은 굳이 미호에게 한복을 입힌 채 시댁으로 향했고, 시어머니는 제사 음식을 준비해야 하니 옷을 당장 갈아입으라고 성화다. '나 일하러 온 거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미호는 당황스럽기만 하다. 


러시아에도 명절이 있을 터, 미호에게 명절은 '파티'와 동일어였다. "러시아에서 명절은 파티를 해요. 24시간 술 마시고 노는 건데." 그런데 한국의 명절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물론 명목상은 '가족의 정을 확인하는 시간'이라지만, 그 정이라는 녀석을 확인하기에 앞서 과중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그 노동이 남녀를 기준으로 얼마나 불합리하게 배분되는지도 배워나가야 했다.



"러시아에서는 남편들이 안 도와주지?"

"러시아에서는 옛날부터 바뀌었어요. 옛날부터 남자들이 음식 만들어요."


경택의 집안 남자들, (미호를 기준으로) 시아버지와 시숙부, 남편은 거실에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주방은 온전히 여자들, 시어머니와 시누이 그리고 미호의 차지였다. 너무도 극명하게 분리돼 있어 민망할 정도였다. '시대가 바뀌었다'는데, 어째서 이 집안의 풍경은 이 모양인 걸까. 제사가 급하다면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 거실에서 TV나 쳐다보고 있는 남자들의 행동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시아버지는 그 상황이 뻘쭘했는지, 혹은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서였는지 며느리에게 러시아에 대해 물었다가 본전도 찾지 못했다. 아버지, 러시아는 진작에 바뀌었답니다! 그런데 미호가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 "원래 (한국에서) 남자들은 주방에 안 들어오는 거 아니에요?" 권오중이 그 이야기를 어디에서 들었냐고 묻자, 미호는 "시아버지"라고 대답한다. 아, 부끄러움은 도대체 누구의 몫이란 말인가!



"왜 음식도 하기 전에 한숨부터 쉬어. 음식을 하기도 전에 이사람이. 너 오늘 한번 엄마한테 시집살이 좀 호되게 해볼래."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게 낯선 미호는 한숨을 쉬었다가 시어머니에게 된통 혼이 나고 만다. 살벌한 시어머니의 말이 야박하게 들리지만, 그를 탓하기도 뭣하다. 제사는 급하고, 준비는 더디니 속이 답답할 수밖에. 가뜩이나 남자들은 입만 살아서 빨리 준비하라고 아우성이니 그 스트레스가 오죽하겠는가. 이 불필요한 고부 갈등의 근원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거실에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남자들' 아닐까? 


(문화적, 종교적 이유로) 제사를 없앨 수 없다면, 제사를 지내는 데 드는 노동을 합리적으로 분담하면 된다. (명절에 비행기를 타지 않고) 명절 음식을 준비할 거라면, 가족들이 동등하게 일을 나누면 된다. 그리 할 수 없다면 제사를 지낼 자격도, 명절을 즐길 자격도 없는 것 아닐까? 명절이 누군가에겐 먹고 놀고 즐기는 시간이고, 누군가에겐 하루종일 쭈그려 앉아 전을 부치는 끔찍한 시간이 되어선 안 되지 않을까?


"왜 오빠랑 결혼했어요?" 시누이는 사람보는 눈이 정확한 미호가 왜 오빠와 결혼했는지 모르겠다고 물었다. 그 농담 섞인 질문에 미호는 러시아 속담을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 엄청 무서운 거야. 염소한테도 사랑에 빠질 수 있대." 하.. 뭐라 해줄 말이 없다. 물론 장난기가 다분한 대답이었지만, 이렇듯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한국의 '괴상한' 명절 문화를 겪은 미호의 생각은 달라졌을까?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드디어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사춘기'가 끝난 것일까?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찾느라 방황하던 그때의 모습이 아니다. 이번 회기동 편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달라진 게 피부로 확연히 느껴진다.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변화의 핵심은 간단하다. (아직까진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시청자들을 뒷목잡게 했던 '빌런'들이 자취를 감추고, 그 빈자리를 '절박한 식당'들이 들어섰다. 


더 이상 '기본(기초)'에서 헤매지 않아도 됐다. '장사란 무엇인가?', '자영업자란 무엇인가?', '손님에 대한 예의란 무엇인가?' 거시적으로 보면 '장사의 기본'을 물었던 빌런들의 역할이 무의미하진 않으나, 그건 꿈보다 해몽의 영역일 것이다. 공과(功過)를 따지자면, 긍정적인 효과는 티끌에 불과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 제작진은 빌런을 함부로 들인 대가를 '폭로'라는 이름으로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이젠 '불필요한' 질문을 하지 않아도 됐다. 이를테면, '효도란 무엇인가?', '인간개조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따위의 물음 말이다. 빌런의 증발로 인해 백종원은 '본업'에 더욱 충실할 수 있었다. 뜬금없이 도덕 선생님이 돼 그들의 '개과천선'을 이끌어 내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됐다. '장사를 할 생각이 있긴 한 거야?'라는 한심한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됐다. 



실제로 회기동 편은 매우 성공적인 컨설팅이 이뤄졌다. 어머니가 주신 돈으로 이전(移轉) 개업을 했다며 눈물을 흘렸던 고깃집 사장님은 치열한 고민 끝에 냉동삼겹살과 갈비탕으로 장사의 방향을 잡았다. 백종원은 끊임없이 숙제를 내주면서 사장님을 자극하는 한편, 업그레이드 된 갈비탕 레시피를 전수해줬다. 사장님은 파절이 연구를 위해 청주를 찾는 등 열정으로 응답했다. 


닭요릿집은 원래 소문난 (가성비) 맛집이기도 했지만, 백종원의 솔루션이 더해지면서 좀더 완성도 있는 맛집으로 변모했다. 부모님으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은 아들의 성장기는 훈훈함을 더했다. 피자집은 벌써부터 몰려든 손님으로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재료가 소진돼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사장님은 피자에 올인하기로 결정했다. 백종원의 솔루션대로 '선택과 집중'에 나선 것이다.


회기동 편에서 그나마 논란이 있었던 컵밥집도 여러모로 많이 개선됐다. 시식단의 냉정한 평가가 도움이 됐던 걸까. 손님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하지 않았던 고집을 버리고 시야를 넓혔다. 맛과 가성비 모두 아쉬웠던 메뉴를 대폭적으로 개선했다. 메뉴를 줄이고, 가격을 단일화시켰다. 백종원은 달라진 컵밥집 부부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보냈다. 또, 제육덮밥의 아쉬운 맛을 '가지'를 추가해 채워주며 끝까지 도움을 줬다.


갈등은 밋밋해졌으나, 감동은 훨씬 진해졌다. 손님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일정한 실력을 갖췄거나, 오랜 경력과 성실함이 몸에 배었거나, 물러설 곳이 없는 절실함을 지닌 사장님들과 백종원의 컨설팅이 만나자 시너지 효과가 발생했다. 거기에는 실질적인 솔루션과 개선이 있었다. 회기동 편이야말로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게다가 백종원이 붕어빵집에서 보여준 '매직'은 놀랍기만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마음을 놓기는 이르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사춘기'가 완전히 끝났다고 보기에 미심쩍은 장면들이 언뜻 보였기 때문이다. 후반부에 갑자기 '오늘의 초대 손님'으로 가수 크러쉬(Crush)가 등장한 부분은 의아했다. 크러쉬는 자신이 닭볶음탕 마니아라며 닭요릿집을 찾아 음식을 맛봤다. '엄마가 떡볶이 해준 맛이 생각난다'며 감탄사를 연발하더니 급기야 매니저와 함께 낮술을 마셨다. 


물론 기존에도 연예인들이 '미리투어'라는 형식으로 조금씩 등장하긴 했지만, 분량 면에서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크러쉬의 경우는 불편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게다가 굳이 낮술을 마시는 장면까지 보여줬어야 했을까? 또, 예고편에는 피자집을 방문한 차은우까지 등장했는데, 이쯤되면 제작진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빌런'의 빈자리를 채우는 게 혹시 '연예인'인가?


빌런을 걷어냈음에도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시청률은 8.5%를 기록했다. 굳이 논란거리를 만들어내지 않아도, 자극적인 장치를 하지 않아도 경쟁력이 충분하다. 백종원은 '선택과 집중'을 강조한다. 그 솔루션을 제작진은 왜 자꾸만 무시하는 걸까. '연예인'을 통해 화제성을 끌어올리겠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이미 파급력이 충분한데, 과연 누가 누굴 홍보한다는 걸까? 제작진이 또 다시 헛발질을 하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방송 전부터 기대를 모았던 SBS <해치>는 역시 '구슬이 서 말'이었다. 우선, '사극'라는 장르의 이점을 손에 쥐고 있다. 동시간대 시청률 1위인 tvN <왕이 된 남자>가 버티고 있지만, 여전히 사극에 대한 시청자들의 요구와 기대치는 여전하다. <해치>가 지상파 시청률 1위(6%-7.1%-6.4%-6.9%)를 기록하면서 다른 경쟁작들에 비해 약간의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 수요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사극은 웬만하면 쪽박을 차지 않는다.


또, 훗날 영조(英祖)가 되는, 천한 무수리의 몸에서 태어난 왕자 연잉군 이금(정일우)을 주인공을 내세우면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소설가 김영하가 말한 '주인공의 세 가지 요건(충분한 시련, 분명한 목적의식, 최소한 한 번의 기회)'을 갖춘(출) 연잉군은 충분히 매력적인 영웅적 인물이었다. 역사 속의 '언더독(Underdog)'을 소환함으로써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기대하게 만든 것이다. 



여기에 당시 전설적의 동물인 '해치(獬豸)'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사헌부(司憲府, 조선 시대 3사 중 하나로 관리들의 비리를 감찰하는 기구)를 전면에 내세워 '정의 구현'이라는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적폐 청산, 사법부 개혁 등 시대적 요구가 해소되지 못한 채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드라마가 구현하는 '정의 구현'의 쾌감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의로운 사헌부 감찰 한정석(이필모)은 그런 짜릿함을 극대화할 인물이다. 


이제 남은 건, 주인공이 극복해 나갈 거악(巨惡)의 존재다. <해치>는 연잉군의 숙적으로 밀풍군 이탄(정문성)이라는 악(惡)을 설정하는 한편, 정권 장악을 꿈꾸는 노론세력의 우두머리 민진헌(이경영)을 이금의 정적(政敵)으로 내세웠다. 두 인물은 이금을 담금질해 군왕의 능력과 풍성을 갖추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할 것이다. 다만, 밀풍군을 살인 욕구를 억제하지 못하는 '개차반'으로 만든 부분은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해치>가 그려나갈 이야기는 '천한 왕자' 연잉군이 영특한 머리를 지닌 만년 과거 준비생 박문수(권율), 무술과 수사에 능한 사헌부의 열헐 다모 여지(고아라), 저잣거리 왈패 조직의 우두머리이자 무술의 달인 달문(박훈)과 함께 힘을 모아 왕좌를 차지하는 모험담이다. 고난과 시련은 크면 클수록 좋다. 그럴수록 영웅의 진면모가 드러날 테니까. 시련을 겪은 영웅의 성공신화는 누구나 혹하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그런데 이렇듯 많은 구슬들이 잘 꿰어졌는지는 의문이다. MBC <이산>, <동이>, <마의>, <화정>의 극본을 썼던 김이영 작가는 어김없이 맛깔스러운 재료들을 잘 끌어모았다. 그는 사극의 성공 요소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듯하다. 이쯤되면 이야기가 쫄깃쫄깃해야 하는데, 왠지 모르게 <해치>는 뭔가 아쉽다. 그 부족함의 정체가 뭘까? 그건 아무래도 배우들의 연기가 아닐까? 


역시 드라마 내에서 중심축을 담당해야 할 주연 배우들의 연기가 다소 아쉽다. 우선, 정일우가 연기하는 연잉군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연잉군은 왕의 혈육이지만, 모친인 숙빈 최씨가 무수리 출신인 탓에 왕실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겉도는 인물이다. 출생의 비극 속에 놓인 인물의 내면을 연기하는 정일우의 연기는 직선적이고 단면적이다. 게다가 발음이 정확하지 않고, 대사가 자주 뭉개져 몰입도마저 떨어진다. 



고아라의 연기도 아쉽긴 마찬가지다. 그가 물불 안 가리는 열혈 다모라는 건 알겠지만, 그의 과장된 연기가 사극에 녹아들지 않고 물 위의 기름처럼 뜬다는 인상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주연 배우들의 부족함을 메꾸고 있는 조연 배우들의 열연이다. 밀풍군을 연기하는 정문성, 박문수를 연기하는 권율, 한정석을 연기하는 이필모 등은 <해치>를 이끌어가는 또 다른 동력이자 활력소다.


분명 <해치>는 흥미로운 요소가 가득한 드라마다. 경쟁력이 충분하다. 그러나 그 장점들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제 아무리 구슬이 많으면 무엇하겠는가. 제대로 꿰지 못하면 빛을 발할 수 없다. 그 역할은 누가 하는 것일까? 역시 '배우'일 수밖에 없다.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일우 · 고아라, 두 젊은 배우의 각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청춘의 설렘과 풋풋함이 가득했던 JTBC <눈이 부시게>가 너무도 슬퍼졌다. 혜자(한지민)와 준하(남주혁) 앞에 놓인 시간은 가혹하기만 했다. 결국 시계를 거꾸로 돌린 건 혜자였다. 그의 인생에 크나큰 불행이 닥쳤기 때문이다. 혜자는 교통사고를 당한 아빠(안내상)을 살리기 위해 준하에게 줬던 시계를 되찾아와 시간을 되돌린다. 과연 오랫동안 봉인해뒀던 시계가 제대로 작동할까? 다행히 어처구니 없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혜자는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하기 직전으로 돌아가는 데 성공했다. 이제 아빠를 살리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과거를 바꾼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잠에서 깬 혜자가 숨도 쉬지 않고 뛰쳐나갔지만, 아빠의 택시(혜자의 아빠는 택시기사다)는 그보다 매번 빨랐다. 실패는 반복됐다. 시간을 거스르는 혜자의 도전도 계속됐다. 이번에는 길가에 세워진 자전거를 타고 내달린다. 그래도 부족하다. 혜자는 아빠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꼭 구해야 되는 사람이야. 어떻게든 꼭 구해야 하는 사람이야. 근데, 구할 수가 없어. 몇 천 번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데도 도저히 구할 수가 없어."

"그래도 구해야지. 혜자야, 네가 얘기했잖아. 어떻게든 구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그래야 하는 사람이면 몇 억 번을 시도해서라도 구할 거야, 난."


낙심하고 있던 혜자는 준하의 진심이 담긴 위로와 응원에 힘입어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몇 억 번을 시도해서라도 반드시 구해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결국 혜자는 '반복 학습'에 힘입어 아빠의 운명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대가(代價), 그러니까 되돌린 시간만큼 나이를 먹어버린 것이다. 두둥, 스물다섯 살의 혜자가 일흔 살의 혜자가 됐다.



그렇게 김혜자가 김혜자가 됐다! 가족들은 너무도 늙어버린 혜자를 낯설게 바라봤다. 당황스럽긴 혜자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소중한 사람을 구해냈지만, 소중한 시간을 모두 잃었다. 꿈 많았던 청춘, 설렘 가득했던 젊음은 몽땅 사라졌다. 갑자기 할머니가 돼버린 혜자는 모든 것이 당혹스럽기만 하다. 그 현실이 쉽사리 받아들여질 리가 없다. 절망감이 온몸에 스며들어 혜자를 잠식해 들어갔다.


이 전개(한지민→김혜자)는 예고된 것이었기 때문에 적당히 이해를 하긴 했지만,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긴 했다. 우선, 혜자가 왜 계속 잠에서 깨어나는 시점으로 돌아가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잠들기 전으로 돌아가면 깔끔하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간단한 결론은 시계를 돌렸을 때 돌아가는 시점이 정해져 있고, 한번 세팅된 시점은 변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아빠의 죽음을 막으려는 혜자의 노력에도 아쉬움이 남았다. 자전거를 타고 쫓아갈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차라리 전화를 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아니면 길가의 돌을 집어서 택시를 향해 던지는 게 성공률 면에서 좀더 높지 않았을까? 물론 <눈이 부시게>의 경우 '타임 리프'를 비교적 '가볍게'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설정의 문제를 깊이 파고들 필요까진 없을 것이다. 핵심은 스물다섯 혜자가 늙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니까.



무엇보다 이런 부정(不正)한 의문에 빠져들기에 <눈이 부시게>의 배우들이 보여준 연기는 너무도 탁월했다. 물 오른 연기력을 발휘하고 있는 한지민은 스물다섯 혜자를 이질감 없이 완벽하게 표현해 냈다. 1회에선 현실의 높은 벽을 체감한 청춘의 좌절을 절절하게 그려냈고, 2회에선 아빠를 살리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하는 딸의 절박한 심정을 실감나게 연기해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남주혁도 자신의 몫을 충실히 해냈다. 1회에서 어려운 현실 가운데 자신의 꿈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청춘의 풋풋함과 강인함을 그려냈다면, 2회에선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빠의 등장과 유일하게 의지했던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와르르 무너져내린 청춘을 연기했다. 남주혁은 준하의 절망적인 상황과 감정들을 과하지 않게 연기하면서 시청자들이 자연스레 몰입할 수 있게 했다. 


이렇듯 한지민과 남주혁의 열연(과 슬프고 무거운 분위기를 한순간에 반전시키는 손호준의 코믹 연기도)도 훌륭했지만, 역시 김혜자의 연기는 특별했다. 그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감정들에 휩싸인다. 연기인듯, 연기가 아닌, 그의 연기 앞에 할 말을 잃게 된다. 한순간에 늙어버린 낯선 모습에 혼란스러워하는 혜자를 표현하는 그의 표정, 몸짓, 말투 모든 것이 경이롭기만 하다.



특히 "아직도 내가 엄마 아빠 딸인 거 모르겠어?"라며 오열하는 장면과 가족에게 편지를 남긴 채 준하와 함께 야경을 바라봤던 원룸 옥상에 오르는 장면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2회에서도 김혜자의 분량은 (아직까지) 많지 않았지만, 감상평을 이야기하라면 '김혜자가 김혜자 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김혜자의 존재감은 강렬했고, 앞으로 그의 연기가 더욱 기대됐다. 


<눈이 부시게> 2회는 시청률 3.188%를 기록(1회 3.185%)하며 기존의 시청자들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또, '명품 드라마'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향후 시청률 상승의 문도 열려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흥미로운 요소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눈이 부시게>는 '가슴으로' 봐야 하는 드라마라는 사실 말이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