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61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41)

모든 것이 과장입니다. 단지 그리움만이 진실이며 그리움은 과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움의 진리까지도 그리움의 진리라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모든 것에 대한 허위의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엉뚱한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다라고 내가 말할 때,그것은 어쩌면 진정한 사랑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사랑이란, 내가 내 살을 도려낼 때 사용되는 칼이 바로 당신이라는 존재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 카프카,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 -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40)

배는 엔진의 힘으로 나아가지 않고, 저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아는 힘으로 간다. 엔진은 동력을 생산해내지만 이 동력이 방향성의 인도를 받지 못하면 동력은 눈먼 동력일 뿐, 추진력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엔진이 생산하는 동력은 이동의 잠재적 가능성일 뿐이다. 여기에 방향이 부여되었을 때 이 잠재적 힘은 물 위에서 배를 작동시키는 현실적 추진력으로 작동한다. 선박은 자신의 위치를 아는 그 앎의 힘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한다. 내가 어디에 처해 있는지를 알아야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알 수 있다. 철새들이 태양의 기울기나 지구의 자장을 몸으로 감지해가며 원양을 건너갈 때 철새는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알지 못해도 천체가 보내주는 신호에 따라 방향을 가늠할 것인데, 인간의 몸에는 그 같은 축복이 없다. 그래..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39)

어느 벽보판 앞현상수배범 전단지사진 속에내 얼굴이 있었다안경을 끼고 입꼬리가 축 처진 게영락없이 내 얼굴이었다내가 무슨 대죄를 지어나도 모르게 수배되고 있는지 몰라벽보판 앞을 평생을 서성이다가마침내 알았다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죄당신을 사랑하지 않고늙어버린 죄 - 정호승, 「어느 벽보판 앞에서」 -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38)

인간은 아늑하고 풍성한 곳에서 다툼 없이 살고 싶다. 낯설고 적대적인 세계를 인간의 안쪽으로 귀순시켜서, 그렇게 편입된 세계를 가지런히 유지하려는 인간의 꿈은 수천 년 살육 속에서 오히려 처연하다. 세계를 개조하려는 열망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무기의 꿈과 악기의 꿈은 다르지 않다. 철제 무기의 경이로운 날카로움을 정련해가던 가야의 마지막 날들에, 우륵은 가야금을 완성한다. 그의 조국은 한 줄기 산세와 한 줄기 물길에 기대어 있던 부족구가였다. 위태로운 조국의 마지막 순간에 우륵은 가야금을 들고 조국을 떠난다. 그는 적국인 신라의 진흥왕에게 투항했다. 그가 버린 조국의 이름은 그의 악기에 실려 후세에 전해졌고, 그의 악기는 신라 천년의 음악의 바탕을 이루었다. 진흥왕의 팽창주의는 그가 남긴 순수비에 적혀 있..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37)

어느 소년 소녀들이나 알고 있다.봄이말하는 것을.살아라,자라나라, 피어나라, 희망하라, 사랑하라.기뻐하라, 새싹을 움트게 하라.몸을 던져 두려워하지 마라! 늙은이들은 모두 봄이 소곤거리는 것을 알아듣는다.늙은이여, 땅 속에 묻혀라.씩씩한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몸을 내던지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 헤르만 헤세, 「봄의 말」 -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35)

성과사회는 금지 명령을 발하고 당위('해야 한다')를 동원하는 규율 사회와 반대로 전적으로 '할 수 있다'라는 조동사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 생산성이 어느 지점에 이르면 해야 함은 곧 한계를 드러낸다. 생산성의 향상을 위해서 해야함은 곧 할 수 있음으로 대체된다. 착취를 위해서는 동기 부여, 자발성, 자기 주도적 프로젝트를 부르짖는 것이 채찍이나 명령보다 더 효과적이다. 성과 주체는 자기 자신의 경영자로서 명령하고 착취하는 타자에게 예속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자유롭다고 할 수 있지만, 결코 진정으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주체는 자기 자신을, 그것도 자발적으로, 착취하기 때문이다. 착취자는 피착취자이기도 하다.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다. 자기 착취는 자유의 감정 속에서 이루어지..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34)

"하지만 그러면 우리는 너무나 고립되어버리지 않을까요? 단 한 사람도 설득할 수 없다면, 그 누구도 설득하지 못하고, 또한 그 누구도 우리의 무덤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혼자서 고개를 돌리고 아주 멀리 가버려야 한다는 의미잖아요.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하는 채 말이죠. 우리는 평생 동안 황야에서 양들과 별들만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별들은 죽고 다시 태어나고, 양들도 마찬가지겠죠. 그러면 당신은 세상은 변함이 없노라고 말하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타인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슬픈 자의식조차도 마침내 느끼지 않게 된다면, 그건 너무나 고독해요, 아야미.""그렇다면 고독하기 때문에 타인을 설득해야 한단 말인가요?""왜냐하면 고독은 실패이기 때문이죠." -배수아, ..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32)

만약 어떤 여인이 내게, 네가 똑똑하기 때문에, 네가 정직하기 때문에, 네가 선물을 사주기 때문에, 네가 외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네가 설거지를 해주기 때문에 너를 사랑해라고 말한다면, 나는 실망한다. 이 사랑은 뭔가 이해관계에 의한 것인 듯하다. 한편 이런 말들은 얼마나 듣기 좋은가. 내가 똑똑하지도, 정직하지도 않고, 비록 내가 거짓말쟁이고 이기적이더라도 난 널 미치도록 사랑해. - 밀란 쿤데라, 『느림』-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31)

맨 처음, 사랑의 정의는 간단했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을까 봐 제일 먼저 걱정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쏟아지는 비를 뚫고, 신발장에 우산이 두 개가 있는지 뒤져보고, 걸어서든, 택시를 타든, 차를 몰든 직접 우산을 가져다주는 일. 그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사랑보다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한, 사랑'하다'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로 결심하는 순간, 그 사람의 목덜미에 있는 점은 하트도 아니고 바퀴벌레도 아니고 그냥 점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한 지 3,259일이 되던 어느 날, 문득 그를 보니 … 그 점조차도 어느덧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심영섭, 『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30)

내일, 내일도 오늘 하던 계속의 일을 해야지. 이 끝없는 권태의 내일은 왜 이렇게 끝없이 있나?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을 생각할 줄 모른다. 간혹 그런 의혹이 전광과 같이 그들의 흉리를 스치는 일이 있어도 다음 순간 하루의 노역으로 말미암아 잠이 오고 만다. 그러니 농민은 참 불행하도다. 그럼 이 흉악한 권태를 자각할 줄 아는 나는 얼마나 행복된가. (중략) 끝없는 권태가 사람을 엄습하였을 때 그의 동공은 내부를 향하여 열리리라. 그리하여 망쇄할 때보다도 몇 배나 더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 「권태」-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29)

사랑은 당신에 대한 나의 기대고, 집은 당신을 위한 나의 일이다. 사랑한다는 행위는 그래서 일이다. 당신을 위해 아침을 준비하는 일이고, 당신을 위해 차를 우리는 일이며, 당신을 위해 여행을 준비하는 일이다. 일 없는 사랑은 사람이 살지 않는 집과 같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슬픈 풍경이다. 산골에 혼로 버려진 채 조용히 낡아가고 있는 집들은 얼마나 쓸쓸한 풍경인가. 빈집을 우리가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 것인가? 그와 같이 떠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는 사람의 얼굴도 우리를 애잔하게 한다. 사랑이 항상 누구와의 일이라면 집도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은 늘 그 사랑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사랑하고 있으니까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수 없듯이, 집을 위한 집은 있을 수 없다. 집에는 항상 당신이 있어..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28)

그는 자신의 삶을 바쳐 애쓰면서 살아왔는데 결국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지금은 세상은('시절'은) 개인이 자기 삶을 꾸려 갈 수 있는 힘은 적고, 오히려 자신이 시작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다. 이제 그는 규정과 습관에 따라 일터와 하숙집 사이를 오가며,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가끔 놀라게 된다. (중략) 야콥은 자신이 지금처럼 일상생활에서 가끔 사라지는 일에 대해서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겠노라고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자기 이름을 적어 서명했다. -우베 욘슨, 『야콥을 둘러싼 추측들』-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27)

"엄마, 아침은 왜 자꾸 오는 거야?" 다섯 살 조카가 제 엄마 앞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던진 질문이다. 유치원에 가기 싫은 아들의 질문에 쩔쩔매는 동생을 보며, 나 또한 뾰족한 답을 찾지 못했다. 얼마나 철학적인 질문인가. 그런데 정말 아침은 왜 매일 쉬지도 않고 찾아오는 걸까. (…) "아침은 도대체 왜 오는 거야?"라고 질문한 어린 조카가 좀 더 크면 이야기해주고 싶다. 아침이 온다는 건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모든 것이 아직 살아 있다는 아름다운 증거라고. 아침이 온다는 건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는 뜻이라고, 그리고 아직 사랑할 시간이 남아 있다는 뜻이라고. -정여울, 『그림자 여행』-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26)

강인한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나 함께 있을 때나 '똑같은 생각'을 한다. 강인한 사람들은 이중 사고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 아닌 건 영원히 아닌 것이다. 불편한 하이힐을 신고 남 앞에서 애써 우아하게 걷다가, 집에 돌아와 혼자 쓰라린 발바닥을 처량하게 주무르지 말자. 남 앞에서 값비싼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기 위해 엄청난 카드 대금을 걱정하지 말자. 강인한 사람들은 갑의 파렴치함과 을의 소심함을 뛰어넘어, 정의와 자유, 평등의 편에서 세상을 바꿔나간다. -정여울, 『그림자 여행』-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25)

1. 어릴 때는 '안부를 묻는다'는 행위의 소중함을 몰랐다. 왠지 의례적인 인사말 같고, 예의를 차리는 관계에서 필요한 것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안부라는 말에 담긴 수많은 다의적 함축이 눈물겹다. 몸은 건강한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너무 춥거나 덥게 지내지는 않는지, 많이 외롭지는 않은지, 그 모든 타인의 안부를 목마르게 궁금해하는 것이 바로 사랑임을 알 것 같다. 2. 안부를 물을 수 있다는 건 그 사람과 맺은 인연의 끈이 끊어지지 않았음을 증언하는 것이다. 연락이 끊긴 사람에게는 안부를 물을 수 없다. 아무리 미칠 듯이 보고 싶어도, 죽음 사람에게는 안부를 물을 수 없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 지금, 안부는 인연의 절실함을 증명하는 가장 평범하고 아름다운 몸짓임을 이제야 알겠..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24)

'남자 둘'의 관계는 한 사회의 사적 소통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적 성격이 있다. 남녀관계는 성적 관심, 여자 둘의 관계는 피지배자의 연대감이 개입한다. 하지만 원래가 경쟁적이라는 '남자 둘'의 관계는 그런 변수가 없기 때문에 개인적 소통의 정도를 가늠하는 잣대로서 훨씬 예민한 리트머스 시험지일 수 있다. 특히 서로 모르는 성인 남자 둘의 관계, 예컨대 우연히 바에서 옆자리에 앉은 두 남자의 관계는 개인적 소통의 정도를 가늠하는 확실한 지표가 될 수 있다. -남재일, 『사람의 거짓말 말의 거짓말』-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23)

기업들이 피고용인을 '인적자산'과 '인적자원'의 두 종류로 나누는 경향이 있음을 기억하자. '자산'은 고위급 관리자와 꼭 필요한 창의적인 사람들이다. '자원'은 교체 가능한 사람들이다. 가능한 한 최저 수준의 숙련도로, 최저 수준의 급여 및 혜택으로, 고용 보장, 연금, 의료 지원, 쾌적한 노동 환경 등의 노동 조건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최저 수준으로, 병가나 육아휴직도 노동시간의 선택권도 임금 인상이나 보너스도 거의 받지 못하고 고용되는 이들이다. 이윤의 극대화로 정의도는 '효율'을 위해서 말이다. 노동자들은 자산이 아닌 자원으로 취급되며, 아웃소싱이 더 이익일 경우 해고, 계약직 노동자로서의 고용 불안, 실직 등을 겪는다. 기업들의 반노조 조치는 이러한 조건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22)

핀란드 학교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아이들 점심 식사는 단순히 하루 한 끼 먹을거리를 해결하는 행위보다 더 중요한 뜻을 지닌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점심 한 끼를 나누는 일의 중요한 의미는, 아이들이 학교에서도 가정과 마찬가지로 따뜻한 식사를 나누며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다. 학교도 집처럼 편하게 생활하는 공간이라는 점을 느끼고 아이들이 학교를 신뢰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선생님은 어린이들과 식사하며 자연스럽게 식생활 습관을 관찰하고 영양을 고루 섭취하도록 격려한다. 아이들이 또래 친구들 혹은 선생님과 어울려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식사를 하고 신뢰감을 쌓으며 작은 사회를 경험하는 또 하나의 교육 현장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안애경, 『소리 없는 질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