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연예

공들인 '유 퀴즈'의 꽃밭을 짓밟은 건 누구인가?

너의길을가라 2022. 4. 29. 15:45
반응형

예능 프로그램에 정치인이 출연해도 될까? 이 원론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원론적으로 'YES'이다. 정치인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다. 실제로 수많은 정치인들이 그동안 여러 예능 프로그램을 거쳤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윤석열, 이재명, 이낙연 등 (당시) 대통령 후보들이 SBS <집사부일체>에 차례로 출연하지 않았던가. 그만큼 예능은 유연하고, 수용력이 크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정치인이 출연할 수 없는 '특정한' 예능 프로그램이 있을까? 원론적인 대답은 'NO'이다. 물론 정치인이 아무 예능이나 출연할 리도 없지만, 그렇다고 애시당초 그런 제한이 있는 '특정한' 예능은 없다. 결국 이슈가 된다면, 시청률에 도움이 된다면 제작진은 정치인 카드를 쓸 것이다. 물론 제작진도 나름의 이유를 들어 (홍보 효과를 노리는) 정치인의 출연을 고사할 수 있다.

세 번째 질문을 해보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인)의 '유퀴즈 온 더 블럭' 출연은 비난받아야 할 일이었을까? 원론적인 대답은 'NO'이다. 그 자체로 문제될 소지는 없었다. 하지만 13일 윤 당선자가 '유 퀴즈' 녹화에 참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인터넷은 들끓었고 시청자 게시판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동안 소시민들의 일상을 다뤄왔던 '유 퀴즈'가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반응형


초창기의 '유 퀴즈'였다면 그와 같은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렸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며 사람 냄새를 전했으니까.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불가피하게 내부 촬영으로 전환되면서 '유 퀴즈'는 유명인 위주의 프로그램이 된 지 오래다. 따라서 윤석열 당선자가 '유 퀴즈'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프로그램의 성격을 변질시킨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여기에도 전제가 있다. ''유 퀴즈' 제작진이 자의로 윤 당선자의 출연을 결정했을 경우'이다. 어떤 외압도 없었다면 당연히 논란의 여지도 없다. 다만, 윤 당선자의 출연으로 인한 후폭풍, 그러니까 정치적 성향에서 기인한 불쾌감을 느꼈을 시청자들의 불만을 감당하는 건 제작진의 몫이다. 하지만 제작진의 자의에 의한 결정이 아니었다면, 외압이 있었다면 맥락은 완전히 달라진다.

상황이 묘하게 흘러간 건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CJ가 언론에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작년 4월과 그 이전에도 청와대에서는 대통령과 청와대 이발사, 구두 수선사, 조경담당자들의 프로그램 출연을 문의"했으나, "제작진은 숙고 끝에 CJ 전략지원팀을 통해 '프로그램 성격과 맞지 않다'는 요지로 거절 의사를 밝혀왔"다는 것이다.


결국 '유 퀴즈' 제작진은 문재인 대통령의 출연에 대해서 '프로그램 성격과 맞지 않다'는 요지로 거절했으나, 윤석열 당선자에게는 그 문을 활짝 열어 젖힌 것이다.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김부겸 총리, 이재명 전 경기도 지사도 출연를 타진한 적이 있으나 제작진이 거절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확대됐다. 선택적으로 정치인을 출연시켰다는 의혹을 받게 된 것이다.

불똥은 진행자 유재석에게로 튀었다. CJ 측에서 정치인 출연을 거절하면서 "프로그램 취지와 맞지 않다"는 기본 입장에 "진행자가 불편해한다"는 불필요한 말을 덧붙였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 말은 마치 유재석에게 섭외의 전권이 있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일각에서는 유재석이 윤 당선자의 출연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 밝히라고 채근하기도 했다.

아무리 '유느님'이라 불려도 유재석은 MC일 뿐이고, 제작진도 아닌 그에게 책임을 묻는 건 지나친 일이다. 쟁점은 명확하고, 해결 방법도 분명하다. CJ와 제작진이 윤석열 당선자의 섭외 과정을 시청자들에게 소상히 밝히면 된다. 섭외의 출처, 외압 여부, 판단의 근거 등을 책임감 있게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만 '유 퀴즈'를 사랑했던 시청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을 것이다.

"다들 그러하겠지만 한 주 한 주 관성이 아닌 정성으로 일했다. 그렇기에 떳떳하게 외칠 수 있다. 우리의 꽃밭을 짓밟거나 함부로 꺾지 말아 달라고. 우리의 꽃밭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것이라고. 시간 지나면 알게 되겠지."


그런데 '유 퀴즈'가 선택한 해결 방안은 '자기 연민'이었다. 논란이 있고 1주일 후, '유퀴즈' 제작진은 엔딩 자막에 '유퀴즈' 제작진의 제작일지를 실었다. 이를 통해 제작진은 자신들이 얼마나 열정과 소신을 갖고 일해왔는지 강변했고, 한 주 동안 과도한 악플세례를 받았던 유재석을 옹호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꽃밭을 짓밟거나 함부로 꺾지 말"라고 '누군가에게' 호소했다.

제작일지에는 제작진의 억울한 심경이 절절하게 담겨 있었는데, 문제는 거기에 '주어'가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꽃밭은 짓밟은 건 도대체 누구인가. 각도에 따라 그 대상은 완전히 다르게 읽힌다. 시청자들은 여전히 의문을 해결하지 못했고,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 않았다. '유 퀴즈' 제작진의 대처가 아쉽기만 하다. 좀더 명쾌한 대답을 내놓은 수는 없었을까?

남녀노소 불문, 세대 불문,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던 '유 퀴즈'의 꽃밭을 망친 건 도대체 누구일까. 누가 이 인간미 넘치고 따뜻했던 프로그램을 망쳐놓은 걸까. CJ와 제작진은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더 늦게 전에, 더 많은 시청자들이 떠나기 전에 책임 있는 이들이 나서서 꽃밭을 사수하길 바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