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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에 혁명적 변화를 요구하는 세계, 한국은 여전히 뒷걸음질

너의길을가라 2021. 9. 2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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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가장 심오했던 경험은 우주에서 지구의 대기를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결국에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은 태양계에 지구밖에 없다는 것이죠. 이게 유일한 행성이에요. 확실합니다. 우리는 지구를 보살펴야 합니다." (제프 베조스)


민간 상업 우주 시대를 연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우주 여행을 다녀온 후 소감을 남겼다. 그는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은 태양계에 지구밖에 없다"며 "지구를 보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류는 우주를 여행할 만큼 과학 기술의 혁명적인 진보를 이뤄냈다. 하지만 정작 지구는 병들어 가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위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혁명'이 필요한 시기이다.

기후 변화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23일 방송된 KBS2 <다큐 인사이트> 기후변화 특별기획 '붉은 지구' 4부 기후 혁명 편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세계의 혁명적 변화를 조명했다. 제작진은 뜨거운 태양의 땅 텍사스를 찾았다. 미국에서도 부유하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그런데 그곳에 수도와 전기가 끊긴 채로 수 개월째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유는 한파 피해 때문이다.

2021년 2월, 텍사스는 이상 기후의 습격을 받았다. 눈이 펑펑 쏟아졌다. 평소라면 쾌적한 10~15도여야 했지만, 영하 10도의 강추위가 몰아닥쳤다. 밤에는 영하 20도까지 떨어졌다. 얼어붙은 수도관이 대책없이 터져버렸다. 한파로 전력 사용량이 늘면서 400만 가구에 전기가 끊기기도 했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식수를 배급받고 먹을 것을 찾아 헤매야 했다. 끔찍한 상황이었다.

사막의 땅 텍사스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해 미국의 에너지 수도라고 불린다. 덕분에 많은 산업이 발달했다. 그 중 텍사스 오스틴은 IT 산업의 중심지다.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과 1년 내내 따뜻한 기후 덕분이다. 그곳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도 있다. 문제는 텍사스 한파 때문에 전기와 물 공급이 중단되면서 공장이 멈춰섰다. 한달 이상 셧다운 상태에 빠졌다. 손실은 4000억 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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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가 상품 생산과 공급망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 사회에 불러오는 파장은 어마어마합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새로운 자동차의 공급이 매우 부족합니다. 차를 만들 수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차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부족하기 때문이죠." (헨리 시스네로스 전 미국 주택도시개발부 장관)


삼성뿐 아니라 다른 반도체 공장들은 잇따라 가동을 멈추면서 피해는 관련 산업으로 번져 나갔다. 애플의 맥북과 아이패드 생산이 지연됐고, 자동차, 트럭, 냉장고, 컴퓨터 등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대만에서는 삼성의 경쟁사 TSMC가 가뭄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56년 만의 최악의 가뭄이었다. 대만 정부는 반도체 공장에 물을 먼저 공급하기로 결정했고, 그로 인해 농업은 큰 피해를 입었다.

기후 변화는 자연과 환경의 문제를 넘어 인류 문명을 위태롭게 한다. 2021년 9월 뉴욕은 허리케인이 몰고 온 폭우로 물바다가 됐다. 예측할 수 없는 폭우에 속수무책이었다. 세계 기상 기구에 따르면 세계 재난(가뭄, 산불, 홍수, 태풍 등) 총계는 1970년대 711건, 1980년대 1410건, 1990년대 2250건, 2000년대 3526건, 2010년대 3165건으로 큰 폭으로 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산불은 일상이 됐다. 지난 8월 발생한 딕시 산불로 서울의 4배가 넘는 면적이 불탔다. 언제 어디에서 불길이 덮쳐 소중한 것들을 앗아갈지 모른다. 사람들은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방글라데시 가부라섬은 집과 농경지가 모두 물에 잠겼다. 해수면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홍수로 집을 잃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희망이 사라졌다.

지난 200년간 인간은 화석연료의 세례를 듬뿍 받았다. 쉼없이 공장과 기계를 돌렸고, 덕분에 산업은 발전했다. 눈부신 경제 성장도 이뤄냈다. 하지만 그것은 안정적인 기후와 맞바꾼 번영이었다. 인간의 욕망이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지금 우리에게 그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위기에 직면한 인류는 2015년 파리에서 기후 변화 대응과 대대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약속했다.

하지만 2019년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텍사스에서 미국은 파리 기후 협정에서 탈퇴했다고 발표하는 등 변화에 역행했다. 실질적인 변화는 돈의 흐름이 바뀌면서 찾아왔다. 거대 에너지 기업에 투자하며 몸집을 불려왔던 세계 최대 자산 운용회사 블랙록의 변화가 눈에 띤다.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는 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는 기업은 앞으로 투자를 회수하겠다는 서한을 보냈다.

래리 핑크는 기후변화가 투자에 있어서도 중대한 위험이 될 것이라 주장했고, 점점 더 많은 고객이 보다 지속 가능성을 목표로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보험회사 AXA는 신규 석탄 사업에 대한 투자를 아예 금지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런 흐름은 단순히 기업뿐 아니라 국가에 대한 투자 철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말 그대로 판이 뒤집어진 것이다.

이런 변화에 한국은 얼마나 준비되어 있을까. 그동안 한국 경제는 화석 연료 기반의 중공업 중심으로 성장했다. 2050 탄소 중립을 선언했지만, 전체 에너지 중에서 석탄 화력 비중이 40%가 넘는다. 다시 말해 탄소 의존도가 높다. 지금과 같은 산업과 에너지 구조에서 온실가스를 줄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 세계는 석탄 발전 시대와 과감한 작별을 하고 있다.

2019년 12월 영국 슈롭셔, 2021년 3월 독일 루넨, 2021년 6월 영국 루겔레이, 2021년 8월 미국 앨라배마의 석탄 발전소가 작별을 고했다. 이는 석탄을 퇴출해 탄소 배출과 투자 위험을 동시에 줄이는 일석이조에 해당한다. 대신 새로운 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해 미래 시장을 잡으려는 의도도 숨어 있다. 화석 연료 시대의 종언은 환경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 논리와도 맞닿아 있다.

"석탄발전소의 문제를 좌초자산 위험이라고 합니다. 쓸모가 있을 줄 알았는데 주변 환경이 변하면서 쓸모없어진 자산, 그래서 석탄과 관련된 사업들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든지 중단하고 기존의 운영하고 있던 석탄발전소도 빨리 폐쇄를 시키는 게 기후변화 대응과 온실가스 배출 감숙에 있어서는 가장 빨고 가장 값싼 방식이라는 게 대부분의 나라가 취하고 있는 방식입니다." (윤세종 변호사)


세계 3대 연기금 자산운영사 중 하나인 네덜란드 APG는 한국에 10조 원을 투자하고 있다. 최근 APG는 한국 정부 앞으로 신규 석탄 발전 사업을 중단해 달라는 요구가 담긴 공개 서한을 보냈다. 투자에 리스크가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후 APG는 한국 전력에 대한 투자를 모두 철회했다. 석탄 발전 투자에 대한 손절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됐다.

2021년 9월 13일, 노르웨이 총선 결과가 발표됐다. 중도 좌파 연합의 승리였다. 이 선거가 주목을 받았던 건 최초의 기후 선거였기 때문이다. 선거의 핵심 쟁점이 석유 생산 중단이었을 만큼 유권자들은 혁명적인 변화를 원했다. 노르웨이는 GDP의 14%, 수출의 40% 이상을 석유와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나라조차 석유 의존에서 벗어나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변화의 길로 과감히 나섰다.


반면, 한국에서는 지난 7월 신규 선탄 발전소 7기 가운데 한 곳이 가동을 시작했다. 탈탄소, 탈석탄이라는 세계적인 흐름을 거스를 뿐 아니라 2050 탄소 중립이라는 약속과도 역행하는 일이다. 신서천화력발전소 앞에서 가동 반대 시위에 나선 청소년들은 답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단순히 개인적 실천을 넘어 사회적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기후 위기 시대를 살고 있다.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피해는 더욱 커지고 있다. 그리고 세상은 혁명적인 전환을 요구한다. 그리고 변화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9개월 앞으로 다가온 한국 대선판에는 환경 이슈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 미래를 위한 혁명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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