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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많은 도심에 남은 새들, 공존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너의길을가라 2021. 7. 15.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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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선 곳을 지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곳에 살았던 새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얼마 전까지 이곳이 허허벌판이었다는 걸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 생각의 보존이 인간인 나에게만 유효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 매번 같은 곳으로 돌아오는 새들이 아닌가.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고향을 빼앗긴 채 다른 터전을 찾아 떠났을까.

쌩쌩 달리는 자동차 소음을 막기 위해 설치된 아파트 방음벽은 인간의 입장에선 필요한 구조물이다. 하지만 방음벽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혹시 새들이 날아가다 부딪치지는 않을까. 먼지가 껴서 탁해지긴 했어도 기본적으로 투명한 구조물이라 새들이 비행을 하다 못 보고 부닥칠 텐데.. 모르긴 몰라도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방음벽을 말끔히 피해 날아다니기는 정말 힘들 것만 같다.

"최근 들어서 아파트 같은 구조물, 인공 구조물 충돌이라든가 특히 방음벽 충돌 사고로 온 새들이 전체 개체 수의 적어도 60% 이상은 차지하는 것 같아요. 예전보다 급격하게 많이 증가한 현상입니다." (황대인 한강생물보전연구센터 센터장)


지난 11일 방송된 SBS <물은 생명이다> '도심 속 새와 공존하기' 편은 지난 주에 이어 '아파트 탐조단'의 이야기를 담았다. 박임자 씨가 맨 처음 찾은 곳은 불의의 사고로 다친 새들의 재활센터이자 쉼터 한강생물보전연구센터였다. 황대인 센터장은 최근 아파트 등 인공 구조물에 충돌해 부상을 입은 새의 개체 수가 급격히 늘었다며 우려를 표했다. 방음벽 출동 사고는 전체의 60% 이상이었다.


아파트의 유리창이나 방음벽은 새들이 볼 때 빈 공간으로 착각하기 쉬워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참매, 황조롱이, 솔부엉이, 소쩍새 등 굉장히 다양한 새들이 충돌사고로 안타깝게 생명을 잃거나 뇌진탕 등 회복이 려운 심각한 부상을 입는 실정이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도심의 새들이 구조되어 한강생물보전연구센터로 보내진다.

다행히 치료가 잘 되면 새들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치명상을 입은 경우에는 자연에서 도태되기 때문에 한강생물보전연구센터에 남게 된다.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새들은 교육용 새로 활용되는데,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어린이들은 새들과 교감하며 자연스럽게 보호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아파트에서 구조된 새와 일반적으로 구조되는 새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일반 야생 공간에서 구조된 새들은 대개 탈진이 많다. 먹이 활동을 못해서 아사 직전에 온 새들이 대부분이다. 반면, 아파트 관련해서 사고로 온 새들은 뇌진탕 증세가 심하다든지 근골격계에 손상이 있어서 회복이 불가능한 개체들이 많다. 이런 새들의 경우 회생률은 더욱 떨어진다.

"동물을 보는 시각을 조금 달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구촌에서 우리와 같이 상생하는 동반자, 식구라는 의식이 좀 필요하고요. 또 얘들을 보호하고 보전하기 위해서는 특히 어린아이들한테 체계적인 관리 교육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황대인 한강생물보전연구센터 센터장)


새들은 왜 아파트 주변을 떠나지 않는 걸까. 다른 먼 곳, 보다 안전한 곳으로 옮겨가지 않고 어째서 아파트 구조물이나 방음벽에 부딪쳐 다치거나 죽는 걸까. 황 센터장은 새들이 아파트 베란다 같은 곳에 번식하는 이유는 거기가 원래 새들의 서식지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애초의 보금자리가 없어져 굉장히 열악해졌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고향이기에 그곳에서 번식을 하는 것이다.

앞으로 도시 환경은 더욱 급변할 게 분명한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새와 공존할 수 있을까. 황 센터장은 동물을 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고 전제했다. 상생하는 동반자, 다시 말해서 식구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한데, 특히 어린아이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체계적인 틀을 갖춰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파트 탐조단 박임자 씨가 두 번째로 찾은 곳은 경기도 포천시에 위치한 도연암이었다. 그곳에는 나무 곳곳에 인공 새집이 달려 있었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새를 관찰해 온 도연암 산새학교 도연 스님의 작품이다. 그는 지금까지 5천 개가 넘는 새집을 만들며 도시 속 새들과 상생하는 방법을 고민해 오고 있다. 도연 스님에게 인공 새집을 만든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건 정서적으로 먼저 자연을 배려한다는 것이고, 또 아이들에게 생명이 (내 생명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도연 소님은 "도심 속에서 자유롭게 사는 생명체가 있을 때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많이 순화"될 거라며 도심의 새들이 보다 수월하게 둥지를 마련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을 통해 결국 "새보다 사람이 새를 핑계로 더 이익을 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혹자들은 어떤 방식으로도 생태계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견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굉장히 무책임하게 들린다. 이에 대해 도연 스님은 "자연에 대해서 간섭하는 것은 안 좋지만 우리가 이미 알게 모르게 간섭하고 있잖아요. 내가 사는 곳도 사실은 얘들의 영역을 침범한 거잖아요. 미안한 마음에서라도 뭔가 해줘야 하잖아요."라고 말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아파트 단지가 사실은 새를 비롯한 수많은 동물들이 오랫동안 살아왔던 왔던 공간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차마 고향을 떠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머무는 그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는 일은 어쩌면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또, 우리가 행한 무자비한 침범에 대한 반성이고,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야 할 대상과 공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시선의 변화가 정착된다면 그 다음에는 아파트에서 시야를 조금 넓혀서 내 아파트가 있는 공간을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파트가 존재하는 곳이 자연 속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훨씬 더 공존의 범위가 넓어지게 될 것이다. "새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매개체"라는 박임자 씨의 말이 새삼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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