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공연기

돌아온 국민 연극 '스페셜 라이어', 웃음 뒤에 남은 비릿함은 뭐지?

너의길을가라 2021. 2. 28.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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윔블던에 거주하는 메리 스미스와 스트리트햄에 살고 있는 바바라 스미스, 두 사람은 남편이 귀가하지 않자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한다. 평소 시간을 칼같이 지키던 사람인지라 걱정이 태산이다. 아무런 연락조차 없으니 큰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고 여겼다. 윔블던의 형사 트로우튼과 스트리트햄의 형사 포터 하우스는 동시에 수사를 개시한다. 그들이 찾는 대상의 이름은, 바로 존 스미스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동명이인? 이쯤에서 존 스미스의 큰 비밀이 밝혀지는데, 그는 이중 생활, 그러니까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다. 교대 근무를 하는 택시 기사 존 스미스는 밤에는 윔블던의 메리에게, 밤에는 아침에는 스틀리스햄의 바바라에게 가는 규칙을 철저히 지켰다. 그동안 들통나지 않고 지냈지만, 간밤에 가벼운 강도 사건에 휘말리는 바람에 거짓말이 탄로날 상황에 처하게 된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는 법이라고 했던가. 존 스미스는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하지만, 거짓말이 쌓일수록 상황은 점점 꼬여만 간다. 그러다 친구 스탠리 가드너가 진실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은 힘을 합쳐 주변 사람들을 속이게 된다. 거짓말로 궁지에 몰린 존 스미스와 스탠리 가드너가 기지를 발휘해 탈출하는 과정은 쫄깃한 긴장감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웃음 폭탄을 선사한다.


1998년 1월 초연 후 24년째를 맞은 연극 <스페셜 라이어>가 26일 돌아왔다. (원래 '라이어'라는 제목이었으나 20주년을 맞아 기존 배우들이 뭉친 걸 기념해 '스페셜 라이어'로 공연하기 시작했다.) 아시아 최초이자 대학로 오픈런 공연의 시초인 <스페셜 라이어>는 아시아 최장기 간 연속 공연(24년)과 아시아 최다 공연(4만 2000회), 국내 누적 관객수(630만 명) 등 많은 기록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흥행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국민 연극' <스페셜 라이어>는 '연극은 어렵다'는 대중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을 만큼 재미있고 유쾌한 작품이다. 또, 안내상, 우현, 이문식, 이정은, 이종혁, 김성균, 오정세, 전미도 등 수많은 배우들이 거쳐갔는데, 이른바 '스타 등용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번 공연에도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하고 있는 배우들이 캐스팅 돼 기대감을 불어넣고 있다.

면면을 살펴보면 존 스미스 역에 정겨운/정태우/테이가, 스탠리 가드너 역에 김민교/서현철/김인권이, 메리 스미스 역에 신소율/오세미/배우희가, 바바라 스미스 역에 나르샤/이주연/박정화가, 포터 하우스 형사 역에 이한위/김원식이, 트로우튼 형사 역에 이도국/이동수가, 바비 프랭클린 역에 오대환/홍석천/조찬형이 각각 캐스팅 됐다. 이름만 들어도 티켓팅을 하고 싶어지는 라인업이다.


연극은 시종일관 웃긴다. 웃기려고 노력하고, 작정한 만큼의 결과를 거둔다. 하나의 거짓말에서 시작돼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오르는 거짓말의 사슬이 주인공을 옭아매는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오프닝에서 "연극의 3요소가 뭔지 아세요? 그건 희곡, 배우, 관객입니다. 그만큼 관객이 중요해요."라며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는 오대환의 말처럼, 관객은 연극의 3요소로서 최선을 다해 몰입하고 웃음을 보낸다.

배우들의 연기도 기대 이상이다. 정겨운은 존 스미스를 다소 어리숙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표현했고, 탄탄한 연기력의 김민교는 가장 특색 있는 연기로 웃음을 책임졌다. 나르샤는 지난 시즌에 이어 바바라 역을 맡아 깔끔한 딕션과 연기를 보여줬다. 메리 역의 신소율은 다채롭고 진폭이 큰 연기로 몰입감을 자아냈다. 이한위와 이도국은 각기 다른 성격의 형사 역을 맡아 흥미를 더했고, 오대환은 바비 역을 맡아 반전 매력을 선사했다.

하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후반부에 드러나는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존 스미스는 거짓말을 거듭하다가 급기야 자신과 친구 스탠리 가드너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폭탄 선언을 하게 된다. 물론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거짓말을 진실로 믿게 되고, 그 과정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시선이 고스란히 노출되게 된다.


성소수자를 향해 손가락질 하며 "호모 새끼야!"라고 모욕하고, 마치 '동성애'가 전염되기라도 한다는 듯한 과장된 몸짓과 반응들은 연극을 보는 내내 불편하게 다가온다. 그들이 실제 성소수자가 아니라 거짓말을 한 것이었고, 희곡이 쓰인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더라도 찜찜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스페셜 라이어>는 (레이 쿠니(Ray Cooney)의 희곡 'Run for Your Wife)를 각색했다.)

부끄럽게도 솔직히 고백하자면, 연극을 보면서 막판에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웃고 말았다. 차곡차곡 쌓인 웃음은 후반부에서 여지없이 폭발하고 말았다. 배꼽을 잡고 웃었다. 순간의 불편함은 쉴새 없이 몰아붙이는 배우들의 대사와 실감나는 연기에 휘발되고 말았다. 그만큼 만듦새가 괜찮은 작품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 다시 비릿함이 찾아왔다.

성소수자에 대한 희화화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웃음을 위해 활용되는 현실은 씁쓸하기만 했다. 또, 캐릭터상 진짜 성소수자였던 바비 프랭클린을 그러내는 방식도 전형적이고 낡기만 했다. 물론 가장 언잖았던 건 일정한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결국 분위기에 휩쓸려 웃고 말았던 나 자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 백암아트홀을 벗어나서도 쉽사리 떨쳐지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연극계가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 속에서 홍보가 절실하다는 배우들의 호소에도 <스페셜 라이어>를 '코로나 블루'를 시원하게 날려버릴 연극이라고 차마 소개하기 어렵다. '국민 연극'이라 부르기에 여러모로 민망한 구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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