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연예

'윤스테이'가 사랑받는 비결, 나영석의 정체 없는 자기복제에 있다

너의길을가라 2021. 1. 14. 23:16
반응형

"모든 국민이 가능하면 집에 머물러야 하는 시기에, 외부 활동이 주가 되는 콘텐츠를 선보이게 되어 송구스런 마음입니다. 하루빨리 이 위기의 터널을 잘 지나, 따뜻한 봄날의 나들이가 가능하길 기대합니다."

정중한 인사였다. 또, 세심하고 사려깊었다. 나영석, 김세희 PD는 자신들의 새로운 프로그램 tvN <윤스테이>를 소개하기에 앞서 시청자들의 마음부터 헤아렸다. 자막에 새겨진 글자들에서 진중함이 느껴졌다. '한옥 체험 리얼리티'라니.. 여행이 사라진 시대, 외부 활동 자체가 조심스러운 시기에 조심스러웠으리라. 그런데 송구스럽다는 말에 생각보다 쉽게 마음의 빗장이 열렸다.

그들이 원래 계획했던 프로그램은 <윤식당>이었다. 시즌3를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듯 코로나19의 여파가 길어졌고, 비행기를 타고 해외의 어디론가로 나가는 건 불가능해졌다. 지난번처럼 인도네시아 발리의 길리 트라왕간(Gili Trawangan)이나 스페인 테네리페 섬의 가라치코(Garachico) 마을 같은 곳을 찾아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환경과 상황을 탓하며 기약도 없이 제작을 미룰 것인가.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외국으로 나갈 수 없다면 국내로 무대로 옮기면 되고, <윤식당>이 지니고 있던 '이색적'이라는 무기는 국내에 있는 외국인을 통해 채우면 될 일이었다. 나영석 PD는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식당을 호텔로 바꿔버렸다. 장르가 달라진 셈이다. <윤식당>이 <윤스테이>가 되는 순간이었다.


한국에 체류한 지 1년 미만의 외국인들, 코로나19로 인해 한국 문화를 제대로 경험할 수 없었던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미와 운치를 알려주기 위해 채택된 장소는 전라남도 구례의 한옥(쌍산재)이었다. 깊은 세월과 자연이 어우러진 고택은 고스란히 호텔로 쓰이게 됐다. 또, 정갈한 한식이 제공되어 외국인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이렇듯 <윤스테이>는 <윤식당>의 확장판이다.

물론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윤스테이>가 기존의 다른 예능 프로그램들과 큰 차이점이 있다고 볼 수 없다. 또, 나 PD의 전작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차승원과 유해진 콤비의 <스페인 하숙>도 떠오른다. 아니나 다를까, 일각에서는 또다시 '나영석의 자기복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나 PD의 새로운 프로그램이 론칭될 때마다 반복되는 뻔한 레퍼토리다.

"곰국처럼 우려먹는다." (윤여정)
"우려먹는 거는 1등이야, 대한민국에서." (이서진)

<윤스테이>는 아예 출연자들의 냉정한(?) 평가로 포문을 열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지난해 말, 나 PD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자신은 자기복제를 좋아한다고 밝히며 항간의 비판을 정면돌파했다. 좋아하는 것이 한정적이기에 자가복제를 하면서 길게 방송을 하려 하는 평범한 PD라고 고백하면서도 그 와중에 새로운 모습을 넣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로 <윤스테이>가 복제만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코로나19 시대에 국내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숙박업을 해보자는 발상의 전환은 그 자체로 '신박'했다. 마치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일상을 선물하는 듯 위안이 됐다. 또, 체류 1년 미만이란 조건을 내걸어 기존의 외국인이 참여하는 예능과 차별점을 줬다. 변화한 상황에 따라 기민하게 조건을 바꿔 정체성을 지키는 동시에 확장까지 이뤄냈다.

<윤스테이>는 <윤식당>의 멤버인 윤여정, 이서진, 정유미, 박서준에 <여름방학>을 통해 새롭게 나영석 예능 세계에 합류한 최우식을 추가하면서 새로운 관계망을 만들어냈다. '인턴'이 된 최우식은 다른 멤버들과 친분도 있는 터라 쉽게 적응했는데, <윤식당>에 없던 캐릭터인 만큼 색다른 흥미를 더했다. 또, 대선배 윤여정과 친구처럼 편안히 대화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한편, 이야기의 연속성도 <윤스테이>를 보는 또 다른 재미다. 윤여정과 '부사장' 이서진은 한층 성장한 '메인 셰프' 정유미와 '과장' 박서준을 보며 물려주고 떠나도 되겠다며 은퇴를 얘기하기도 했다. 그만큼 멤버들의 성장이 눈에 띤다. 규모도 커지고일도 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쏟는다. 그런 모습들이 어김없이 감동을 자아낸다.


<윤스테이>는 첫회 시청률 8.21%(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며 쾌조의 출발을 했다. <윤식당 시즌2> 첫회 시청률 14.047%에 비하면 낮은 수치지만, 동시간대 방영되는 MBC <트로트의 민족>, TV조선 <사랑의 콜센타> 등과의 경쟁 속에서 거둔 성적이기에 더욱 값어치가 크다. 또, 비드라마 TV 화제성 지수에서도 단숨에 5위에 진입하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나영석 예능이 누리는 인기의 정체(正體),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자기복제다. 다만, 그의 자기복제에는 정체(停滯)가 없다. 익숙함 속에 변주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원류가 같은 이야기가 매번 조금씩 변형되어 사람들의 판타지를 충족시킨다. 나영석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으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윤스테이>는 나영석 예능의 집대성이자 또 하나의 발판이다.

일상이 사라진 지금, 그 무엇보다 그리웠을 이야기를 찾아낸 <윤스테이>가 금요일 밤 사람들의 마음에 머무르기 시작했다. 관건은 결국 사람이고, 그 관계로부터 피어오른 이야기가 얼마나 농도있게 전해지느냐에 따라 <윤스테이>의 맛과 향고 훨씬 더 깊어질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