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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은 소신 꺾지 말길, 연예대상 없어도 이미 충분하니까

너의길을가라 2020. 12. 17.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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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장' 김병만이 SBS 연예대상 후보 자리를 고사했다. 이미 SBS에서 두 차례(2013년, 2015년)대상의 영예를 안았던 그는 "수상 후보의 자리는 조심스레 내려놓고, 한 해를 기억하기 위한 축제의 장에서 누구보다 큰 박수로 행사를 즐기고 축하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수상 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김병만다운 겸허한 행보이다. 그렇다면 2020년 SBS 연예대상은 누가 수상할까.

SBS 유튜브 '뮤비딕' 채널의 웹예능 <제시의 쇼터뷰>에 출연한 김구라는 누가 대상을 탈 것 같냐는 질문에 백종원을 콕 집었다. 그는 "SBS는 잘 되는 프로가 많은데 백종원 씨의 프로그램이 좋아요. '나는 상을 받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이제는 백종원 씨가 받아야 된다고 생각"다고 주장했다. 이젠 때가 됐다는 뜻일까, 백종원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의미일까.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시상식과 관련한 얘기들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걸 보니 연말이 다가오긴 한 모양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방송사마다 그들만의 시상식을 개최할 모양이다. 작년 연말 '시상식을 강타했던 김구라의 '구색론'은 그때만 반짝했을 뿐, 그가 강변했던 '방송 3사 통합론'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올해도 납득할 수 없는 후보와 이해하기 힘든 수상이 남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코로나19의 여파로 방송가가 한껏 위축된 가운데 지상파 예능은 종편에 속절없이 밀렸다. 시상식을 개최하는 게 민망한 수준이다. 그나마 MBC는 <놀면 뭐하니?>로 부캐 열풍을 일으킨 유재석을 앞세워 체면치레를 했다. KBS는 <신상출시 편스토랑>과 <개는 훌륭하다>에서 활약한 이경규의 수상이 유력하다. 10년 만의 대상이나 무게감은 조금 떨어진다.


한편, SBS의 표정은 사뭇 어둡기만 하다. 김구라가 "이제는 백종원 씨가 받아야 한다"고 말한 까닭은 백종원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후보의 면면을 살펴보면 <런닝맨>의 유재석, <동상이몽>의 김구라, <미운우리새끼>의 서장훈과 김종국, <집사부일체>의 이승기 정도이다. 모두 대상을 안기기에는 임팩트와 명분이 약하다. 결국 백종원밖에 없다.

2014년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통해 예능에 발을 디딘 백종원은 자신의 이름으로 프로그램을 론칭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송인이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공익과 재미라는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은 대표적인 예능이다. 벌써 7년째 방송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다양한 아이디어를 방송과 접목시키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방송인 백종원의 확장은 현재진행형이다.

문제는 백종원의 소신이다. 그는 2019년 SBS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연예대상은 1년 내내 고생하신 연예인"의 몫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선을 그었다. 자신은 연예인이 아니라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주면 받을 거냐는 김성주의 질문에도 안 받는다며 단호히 거부했다. 2018년에도 백종원의 연예대상이 유력했으나 SBS 측은 백종원의 의사를 받아들여 어떤 상도 시상하지 않았다.


그런 백종원이 올해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고 연예대상 트로피를 들어올릴까.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받고자 했다면 2018년이나 2019년에 받는 편이 모양새가 좋았다. <백종원의 골목식당>과 <맛남의 광장>이 여전히 사랑받고 있지만 시청률이 5%대에 그치고 있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정점에서 살포시 내려왔다는 점에서 공로상의 의미가 조금 더 짙게 느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백종원이 지금까지 지켜왔던 자신의 소신을 꺾을 필요가 있을까. 언론에서는 '이제 받을 때도 됐다.', '소신을 꺾을 때가 됐다'며 군불을 때고 있다. SBS에 마땅한 후보가 없다는 건 내부적 사정일 뿐이다. SBS 연예대상을 수상한다면 앞으로 그의 정체성을 '예능인'으로 인정한다는 뜻이기에 타 방송사와의 관계도 애매해진다. 당장 백종원은 MBC에서 <백파더 : 요리를 멈추지 마!>를 진행 중이다.

이러다간 자칫 백종원이 매년 시상식의 끝을 책임지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그것도 방송사마다 돌아다니면서 말이다. 그건 백종원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개국 30주년을 맞은 SBS로서는 잔칫상을 제대로 차리고 싶겠지만, 생각만큼 풍성하짐 않을 전망이다. SBS 측의 고충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그 해답을 백종원에게 찾는 건 조금 비겁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SBS 내에서) 백종원을 능가하는 방송인은 없었다. 그렇다고 그가 소신을 꺾을 필요는 없다. 그러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건 장기적으로 볼 때도 바람직하지 않다. 김구라의 외침이 있었음에도 이해관계에 매몰된 방송사들은 1년 동안 그 어떤 변화도 이끌어내지 않았다. 그에 대한 자성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매번 구색만 맞추는 뻔한 시상식을 돌려막기할 게 아니라.

그리고 자신은 예능인이 아니라며 연예대상을 극구 사양하는 방송인이 한 명쯤 남아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상에 초탈한 어떤 소신, 그걸 꺾어야 할 때는 앞으로도 없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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