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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이 웬말.. '거리의 만찬'을 뿌리채 흔든 건 누구인가?

너의길을가라 2020. 2. 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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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세 명이 모여서 사회를 본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우리만큼 (<거리의 만찬> 진행을) 잘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바뀝니다."

KBS2 시사토크쇼 <거리의 만찬>은 우리 시대의 훌륭한 '스피커'였다. 시작점부터 남달랐다. 2018년 7월 파일럿으로 출발한 <거리의 만찬>이 처음 만난 이들은 KTX 해고 승무원이었다.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간 것이다. 상당히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다양한 목소리에 굶주려 있던 시청자들은 뜨거운 호평으로 화답했다. 

같은 해 11월 정규 편성이 된 <거리의 만찬>은 첫회에서 서울시 강서구 특수학교 건립을 위해 투쟁했던 발달장애인 학부모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이후 성소수자, 임신 중단, 스쿨미투 운동, 고(故) 장자연 사건, 톨게이트 노동자 등 젠더 이슈를 적극적으로 다뤘고, 청소년 인권, 고(故) 김용균씨 사고, 여성 방문노동자, 간병인 문제, 공익 제보자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이처럼 <거리의 만찬>은 충분히 말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세 명의 MC 양희은 · 박미선 · 이지혜는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경청자'였다. 발화자의 상황에 진지하게 몰입했고, 또 진솔하게 반응했다.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았고, 섣불리 넘겨짚거나 오해하지 않았다. 대화에는 경계심이 없었다. 위로와 격려, 응원이 만찬 속에 어우러졌다. 

여성 진행자들이 여성의 시선으로 다양한 이슈를 다뤘던 <거리의 만찬>은 기존의 남성 중심의 시사 프로그램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그동안 존재한 적이 없었기에 그 가치가 더욱 소중했다. <거리의 만찬>은 한국 YWCA 연합회가 뽑은 '좋은 프로그램상' 중에서 '성평등 부문', 여성가족부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주최한 '양성평등 미디어상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청률 경쟁을 비롯한 대내외적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저희 프로그램에도 새로운 시도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에 제작진은 오랜 고심 끝에 자체적인 개편안을 마련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지난 1월 19일 시즌1을 마친 <거리의 만찬>이 시즌2를 시작하며 MC 교체를 선언한 것이다. 기존의 MC들이 모두 물갈이 되고, 그 빈자리를 채운 건 배우 신현준과 시사평론가 김용민이었다. 갑작스러웠고 뜬금없었다. 이와 같은 변화는 <거리의 만찬>의 정체성을 훼손할 만큼 퇴행적이었다. 한마디로 헛발질이었고 삽질이었다. 

그러자 SNS를 중심으로 MC 교체에 대한 반대 기류가 형성됐기 시작했다. 특히 김용민에 대한 반발이 컸다. 김용민은 과거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콘돌리자 라이스에 대해 여성혐오 발언을 했던 전력(이 때문에 김용민은 20112년 총선에 입후보했다가 자진사퇴했다)이 있고, 지난해에는 '버닝썬 사태'에서 화제성만 가져와 '버닝선대인'이라는 부적절한 코너명을 짓는 등 물의를 일으켰다. 

KBS시청자권익센터 청원 게시판에는 <거리의 만찬>의 MC를 바꾸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와 이틀 만에 동의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 (7일 14시 현재 14,984명) 또, 기존의 MC들이 그대로 출연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결국 지난 6일 KBS시청자위원회 특별위원회가 소집됐고, 시청자위원들은 "제작 현장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에 놀랐다"며 질타했다. 

"KBS2TV '거리의만찬' 우리 여자 셋은 MC 자리에서 잘렸다! 그 후 좀 시끄럽다. 청원이 장난 아니다!" (양희은)

상황이 급변한 건 양희은이 자신의 SNS에 위의 글을 게시한 후부터였다. 양희은은 '잘렸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거리의 만찬>의 MC 교체가 매끄럽지 않은 과정 속에서 이뤄졌음을 분명히 했다. 이 소식을 접한 김용민은 SNS를 통해 "존경하는 양희은 선생께서 '거리의 만찬'에서 하차하신 과정을 알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이어받을 수 없는 법입니다."라며 사의를 표명했음을 밝혔다.

이렇게 되자 KBS 측은 12일로 예정돼 있던 기자간담회를 취소하면서 "이번 사안과 관련하여 시청자 여러분들께서 보내주신 모든 의견들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앞으로의 프로그램 제작에 있어서도 더욱 신중한 자세로 임할 것"이라며 고개를 조아렸다. 또, "시즌2 제작 논의가 원점에서 다시 시작되는 만큼, 구체적인 내용은 향후 진행 상황에 따라 다시 알려드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거리의 만찬> MC 교체를 둘러싼 논란이 일단락 됐다. 그러나 아직 모든 게 끝났다고 보긴 섣부르다. 현재로선 <거리의 만찬> 시즌2 제작 자체가 불발될 가능성도 농후한 만큼 사태의 추이를 좀더 지켜봐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그림은 기존 MC들이 복귀한 가운데 시즌2가 진행되는 것이다. 또한 차분하게 의심하고 질문을 던져야 할 사안들이 남아있다. 

<거리의 만찬> 제작진은 MC 교체 이유로 '시청률 경쟁'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언급했지만, <거리의 만찬>은 5%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었다. 같은 시간대(일요일 밤 11시 5분)에서 이미 경쟁력을 갖춘 프로그램이었다. 묻지 않을 수 없다. 제작진은 김용민의 투입이 시청률 경쟁에 얼마나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던 걸까? 그리고 그 근거는 무엇일까?

논란이 될 게 뻔한 김용민은 MC로 앉히려 했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 과정에서 어떤 의견 수렴 절차가 있었고, 얼마나 신중한 검증을 거쳤을까? 또, MC 교체와 관련해서 기존의 MC들과 말이 다른 까닭은 무엇일까? (KBS 측은 기존 MC들과 하차와 관련해 원활히 소통했다고 밝혓지만, 박미선은 "조촐하게 셋이 종파티했"다며 "짤린 거 맞지?"라 아쉬움을 드러냈다.)

아무런 문제가 없던 기존의 MC들을 자르면서 논란의 중심에 설 게 불보듯 뻔한 김용민을 MC로 낙점한 사람은 누구일까? 기안은 누가 했고, 최종 결정은 누가 했을까? 시청자들은 공영방송 KBS에 명쾌한 대답을 요구하고 있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던 <거리의 만찬>을 뿌리채 흔든 건 도대체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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