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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주인공인 '삼시세끼' 산촌편, 나영석 PD의 변화를 확인했다

너의길을가라 2019. 8. 25.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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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 물은 썩는다는 건 만고의 진리다. 예능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정체되면 도태되고, 변화 없인 살아남을 수 없다. 스타 PD들도 마찬가지다. 김태호 PD는 새판을 짜면서 '확장'을 화두로 꺼내 들었다. '릴레이 카메라'는 그 자체로 새로운 발상인데다 '릴레이 음원(유플래쉬)'로 보폭을 넓혀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플랫폼을 넘나들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산재해 있는 MBC <놀면 뭐하니?>는 개념상 '놀이터'에 가깝고, 그 울타리의 한계는 무한에 수렴한다. 김태호 PD는 외연적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확장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그 방향성이 바깥을 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면적인 의미에 국한할 필요는 없다. 확장은 안쪽으로도 가능하다. 미처 채우지 못했던 내면으로의 확장이라든지, 깊이를 더하는 방식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나영석 PD일 것이다. 그는 매번 비슷한 프로그램만 만든다는 지적을 받는다. '자기복제'라는 날선 비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를 '고인 물'이라 평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나영석 PD도 끊임없이 확장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tvN <삼시세끼>는 나영석 PD의 대표 작품이다. (KBS2 <1박 2일>도 있지만, 좀더 완성형에 가까운 건 <삼시세끼>일 것이다.) 자연 속에서 삼시세끼를 해결하는 아주 단순한 행위를 담은 프로그램에 대중은 열광했다. 2014년에 처음 시작했던 <삼시세끼>는 지금까지도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사람들은 시즌제로 방영되는 <삼시세끼>가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리고, 그 시즌이 되면 어김없이 TV 앞에 앉아 혼탁해진 마음을 씻고 힐링한다. 

<삼시세끼>의 경우 워낙 굳건한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는 터라 굳이 변화를 추구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그저 이서진, 에릭, 윤균상으로 구성된 1팀과 차승원, 유해진, 손호준으로 구성된 2팀을 번갈아 가며 방송에 내보내기만 하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나영석 PD는 내부적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강원도 정선에만 있었던 이서진을 어촌으로 보냈고, 원래 어촌을 담당했던 차승원과 유해진을 산티아고 순례길로 보내 tvN <스페인 하숙>을 찍었다. 

확장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삼시세끼>는 더욱 큰 변화를 단행했다.  그동안 <삼시세끼>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김하늘, 박신혜, 설현, 최지우, 한지민 등이 출연했지만, 게스트로 잠깐씩 얼굴을 비출 뿐이었다. 언제나 주축은 남자 멤버들이었다. (기본적으로 나영석 PD의 프로그램들이 그러했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 예능이 그러했으니 굳이 따로 문제삼을 생각은 없다.) 그런데 나영석 PD는 이번 산촌편에서 과감하게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여자 멤버들(염정아, 윤세아, 박소담)로만 <삼시세끼>를 꾸린 것이다. 이 변화는 굉장히 파격적이었다. 최근 들어 '남탕 예능'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여성들이 주축이 된 예능 프로그램이 기획됐으나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상징적인 의미를 획득하는 데 그쳤다. 재미적인 부분에서 아쉬웠던 케이스도 있었지만, 기획 단계에서 아쉬움이 있거나 애초부터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돼 빛을 발하지 못했던 경우도 있어 안타까웠다. 

<삼시세끼> 산촌편의 경우에도 시작 전부터 색안경을 쓴 악플들이 쏟아졌다. '여자들이 나오면 재미가 없다'는 편견 가득한 말은 예사였다. 그러나 방송이 시작되자 여론은 뒤집어졌다. 우려와 달리 염정아, 윤세아, 박소담은 별다른 이질감 없이 산촌의 환경에 적응했고, 가사 노동이 기반이 된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에 스며들었다. 게다가 재밌기까지 했다. 첫회부터 캐릭터가 도드라지자  몰입이 수월했다. 

음식을 못한다고 걱정스러워하던 염정아는 뚝딱뚝딱 맛있는 요리를 해내고 있다. 또, 맏언니로서 동생들을 잘 이끌며 리더십을 발휘했다. 누구보다 빠른 일처리와 노래를 들을 때 나오는 흥, 그리고 매끼마다 어김없는 큰손은 '열정아'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염정아와 10년지기 윤세아는 채소 준비부터 설거지까지 완벽한 보조 역할을 수행했다. '힘세아'라는 별명답게 괭이질도 척척이고, 기운을 북돋아주는 리액션은 덤이다.

박소담은 겉보기엔 영락없는 막내지만, 일을 할 때는 살림꾼의 의젓한 면모도 보여주고 있다. 일머리가 있다보니 똑부러진 활약으로 언니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이렇듯 세 멤버의 개별적 매력이 발휘되는 가운데 전체적인 호흡까지 돋보여 산촌편은 <삼시세끼> 시즌 중에 가장 재밌다는 평까지 나오고 있다. 그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할 수 있겠지만, 자연스러운 매력이 가장 돋보이는 시즌이라는 건 분명하다.

기존의 <삼시세끼> 멤버가 아닌 새로운 멤버가 출연하게 되자 프로그램 자체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를테면 '초심'으로 돌아가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나영석 PD는 애초에 <삼시세끼>가 추구했던 가치를 재현하고자 노력했다. 최대한 자연에서 얻은 식재료로 삼시세끼를 해결하기, 다 같이 음식을 준비하고 한자리에 둘러앉아 한끼 식사에 집중하기 같은 것 말이다. 특별할 것 없는 소박한 일상적 행위를 통해 행복을 찾는다고 할까. 

이 변화는 올드하기보다 오히려 참신하게 다가온다. <삼시세끼> 초창기의 분위기가 나와 오히려 반갑기까지 하다. 거기에 본래 가사노동에 익숙했던 여자 멤버들이 출연하자 자연스러움까지 더해져 일말의 부대낌도 느껴지지 않는다. 불평이 없어지니 (그걸 재미로 생각했던 사람들은 허전할지 모르겠지만) 한결 편안해졌다. 어쩌면 여자 멤버들이 주축이 된 산촌편은 <삼시세끼>가 구현할 수 있는 가장 본연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영석 PD는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그 움직임은 정중동(靜中動)에 가깝다. 확연히 눈에 띠진 않지만, 차분히 들여다보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어김없이 유효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삼시세끼> 산촌편이 그 새로운 시작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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