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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퀴즈 온 더 블럭'과 '가시나들', 사람 냄새가 풀풀 난다

너의길을가라 2019. 5. 28.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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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방송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들을 한 단어로 설명하라면 '천편일률(千篇一律)'이 떠오른다. 그보다 적절한 표현도 없을 것이다. 죄다 거기서 거기다. 개성도 없고 특색도 없다. 대부분 음식, 요리를 소재로 하고 있거나 어쭙잖게 '관찰 카메라'의 형식을 취한다. '돌려막기'와 '(자기)복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다. 게다가 출연자들과 그들의 조합도 중복되는 경우가 워낙 많아 식상하기만 하다.

형식이 고착화되자 내용의 발전이 없다. 소재의 다양성이 사라졌고, 주제에 대한 고민도 찾아보기 어렵다. 캐스팅 역시 안정적인 선택만이 살아남는다. 그런 와중에 조금 색다른 예능들이 눈에 띠기 시작했다. 기존의 것들과 달리 자신만의 색깔이 또렷하다. 남다른 독특함에 어쩌면 낯설음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차분히 앉아 바라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빠져든다. 왜냐하면 거기에 '사람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MBC <가시나들>은 그 범주에 속하는 프로그램이다. ('사람 냄새'에만 포인트를 맞추자면 최근 종영한 나영석 PD의 <스페인 하숙>도 '차배진 트리오'와 산티아고 순례자들의 '사람 냄새'를 진하게 담아냈다.) 이전의 관찰 예능이 '사람'을 비추긴 했으나 겉핥기에 불과해 인스턴트의 향이 강했다면,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가시나들>은 '사람 냄새'를 포착해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시즌 2를 맞이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화요일 밤 11시 방영)은 아예 '사람 여행'을 표방한다. 시즌 1과 마찬가지로 유재석과 조세호가 거리를 구석구석 누비고 다니면서 우연히 만난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퀴즈를 내서 문제를 맞히면 상금을 주는 구성이다.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발생하고, 예상치 못했던 웃음꽃이 피어난다. 전문적인 방송인이 아니라 카메라가 낯선 시민들이기에 가능한 웃음이다.

단조롭고 지루하다는 지적이 있었던 시즌 1의 단점을 보완해서 시즌 2는 훨씬 더 알찬 느낌이다. 아무래도 퀴즈의 문항수를 줄이는 선택은 적절했다. 또, '소통의 달인'이라 할 만한 유재석의 진행은 더 훌륭해졌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시민들의 작은 목소리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데, 역시 유재석의 (경청의) 힘이 절대적이다. 또, 조세호의 넉살과 센스는 프로그램에 맛깔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그야말로 찰떡 호흡이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진정한 가치는 역시 '사람'이다.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은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때로는 거침없는 웃음을 때로는 먹먹한 감동을 선사한다. 그렇게 누적된 삶의 이야기들은 프로그램의 큰 자산이다. 시즌 1에서 특유의 입담을 자랑했던 삼청동 갤러리 과장 김세운 씨와 재회한 장면은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지속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여전히 정신없던 그와 티격태격하는 할머니의 활약은 덤이었다.



MBC가 일요일 저녁 6시 45분에 선보이고 있는 <가시나들>은 '(시골의) 할머니'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자체로는 새롭다 말하기 어렵다. 방송이 낯선 시골 어르신들을 예능의 문법으로 조명한 예는 흔하진 않아도 제법 있었다. 그러나 <가시나들>은 그런 뻔한 그림을 빼껴내지 않았다. 정부와 지자체가 한글을 익히지 못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는 '문해교육'을 예능의 영역으로 끌어내면서 확실한 주제의식을 갖췄다.

또, 할머니들을 웃음의 대상으로 희화화하지 않고, 한글을 배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주체로 담아냈다. 그들이 겪어 냈건 굴곡진 삶은 그 자체로 역사라 할진데, 그들이 한글을 배우지 않았다면, 그들이 시나 글로 써내지 않았다면 그대로 매몰될 뻔 했던 역사였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있다. <가시나들>은 억압의 언어인 '가시나들'을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들'로 풀어내 할머니들을 전폭적으로 응원한다.

또, 할머니들의 짝꿍으로 (역시 예능의 문법에 익숙지 않은) 20대 연예인들을 배정해 학교에서 한글 공부를 돕게 하고, 방과 후에는 할머니의 집으로 돌아가 동고동락하며 하루를 보내게 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진솔한 관계는 진짜 할머니와 손주의 그것과 닮아 있다. '사람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다. 따뜻하고 포근하다. 무엇보다 사람이 그리웠을 할머니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이 됐다. 시청자들에겐 그 모습이 깊은 감동으로 전해졌다.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가시나들>은 불필요한 설정과 자극적인 편집 및 자막을 걷어내고, 뚝심있게 오로지 '사람 냄새'만으로도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른바 '청정 예능'의 선두 주자로서 시청자들에게 오염되지 않은 담백한 웃음과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과연 독특한 두 예능 프로그램이 천편일률적인 현 예능의 판도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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