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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 연예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시어머니들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속의 '시어머니'라는 존재들은 대체로 별로이다. 자신만의 '이상형 며느리' 모습을 며느리가 구현해 주기를 바라고, '며느리와 장 본 뒤 요리하기'를 버킷리스트 1위라며 은근히 강요한다. 시어머니의 소원을 들어드리기 위해 방송인 박지윤은 일을 마치고 시댁으로 향했다. 피곤한 몸과 무거운 마음을 안고 달려갔건만, 시부모는 반갑게 맞이하기는커녕 왜 손주를 데리고 오지 않았냐는 타박을 앞세운다. 벌써부터 속이 상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곳은 시댁이라는 '이상한 나라'이고, 그 안에 들어 온 이상 최대한 문제를 잃으키지 않아야 한다. '미스코리아 웃음'을 지으며, 남편이 올 때까지 견디는 수밖에 없다. 살아서 돌아가는 게 급선무이고, 절대적 지상과제이다. 박지윤은 시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들러 양손 가득 식재료를 사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함께 요리에 매진했다. 딸에게는 안쓰러워 요리를 시키지 못했다는 시어머니의 말이 가슴에 매못처럼 박힌다. 


고미호의 시어머니는 "네가 뭐든지 다 잘했으면 좋겠어."라며 자신의 욕심을 노골적으로 내비친다. 그 '뭐든지'가 요리, 청소 등의 집안일이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시어머니에게 며느리(아들의 아내)의 역할은 그런 것이었다. 내 아들의 내조를 잘 하는 것 말이다. 당연히 고미호는 그런 시어머니의 말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이 세상에서 슬픈 게 원하는 걸 다 얻을 수 없어. 나는 며느리로서 다 잘하는 며느리 될 수 없을 것 같아."라며 씁쓸해 했다. 



그런가 하면 오로지 아들만 치켜세우고 며느리의 노고를 무시하는 시어머니도 있다. 애초부터 '남편을 하늘같이 모시라'고 했던 오정태의 엄마는 며느리에게 지나치게 인색하다. 대청소를 다 끝낸 후 식사자리에서 시아버지가 '며느리 덕에 정태가 잘 됐다'고 칭찬을 건네자 "뭘 그래, 아들이 잘하니까 며느리도 따라 잘하는 거지!"라며 쏘아붙인다. 그에겐 오로지 아들뿐이다. 그 상황이 익숙한 백아영은 애써 웃음을 짓지만, 못내 섭섭하기만 하다.


이쯤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시어머니들은 왜 이러는 걸까?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를 시청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지금의 며느리'에 감정이입하게 된다. 그건 당연하다.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지금의) 며느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인공을 괴롭히는 사람, 그러니까 빌런(Villain)은 주로 '시어머니' 쪽이다. 다시 말해 고부(姑婦)가 갈등의 주체로 그려진다. 시아버지와 남편은 보조적 인물이다. '중간자'에 가깝다. 이런 관계 설정은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질문은 이쪽으로 옮겨와야 한다. 도대체 왜 고부갈등이 생기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부딪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자꾸만 일을 시킨다. 요리, 집안일 등 요구하는 게 많다. 그럴 수밖에 없다. 가부장제 사회 하에서 여성들에게 그런 역할이 강제됐기 때문이다. 가사 노동은 오로지 여성의 몫이었다. 그러니 집안일의 최전선에 서 있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트러블이 생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가 보여주는 주요 갈등들, 그러니까 고부갈등은 외적 문제에 불과하다. 본질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고부갈등으로 표출되는 내적 문제, 즉 '가부장제의 모순'을 놓치면 이 프로그램은 오로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대결 구도로만 읽힌다. 그러다 보면 며느리를 괴롭히는 시어머니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결과로 치닫게 된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을 뿐더러 본질적 문제를 은폐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 


"나는 힘들다는 표현을 잘 못해. 그게 왜 그렇게 됐냐면 홀시어머니를 34년 모셨잖아. 그러니까 부모 앞에서 힘들다 소리를 못 했어. 참다 참다 어느날 이제 폭발이 되는 거야."


박지윤의 시어머니의 버킷리스트는 결국 가족들을 먹이는 것이었다. "시어머니 자신도 자신의 정체성이 누군가의 엄마, 이런 정체성이 너무 강한 거예요.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시어머니도 계속 맞춰서 사신 거죠."라는 김선영 미디어 평론가의 지적이 아프기만 하다. 고미호의 시어머니 역시 아들과 며느리를 위해 반찬을 잔뜩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로서의 정체성이 너무 강한 것이다. 그 역시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스스로를 계속 맞춰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백아영의 시어머니는 왜 그토록 아들 오정태만 찾게 된 걸까. 그건 아마도 과거(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에 팽배했던 '남아 선호사상'과 맞닿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 시대에 며느리의 역할은 아들을 출산하는 것이었고, 그래야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에게 오정태는 자랑거리였고, 자신의 답답한 상황을 풀어줄 희망이었을 것이다. 역시 가부장제의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를 시청하면서 간과했던 사실 중 하나는 시어머니도 '며느리'였다는 사실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혹독한 환경에서 '시집살이'를 겪어왔던 지금의 시어머니들을 단순히 시대착오적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 환경에 고착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모른 척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온전히 두둔할 생각은 없다. 시대는 달라졌고, 그렇다면 변하는 게 맞다. 자신의 고통을 되물림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 갈등의 모든 책임을 '고부'에게 떠넘겨선 곤란하다. 고부갈등의 진짜 원인이 가부장제의 모순에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상한 나라'에서 고통받는 며느리들이 해방되려면 결국 가부장제의 혜택을 온몸으로 누려왔던 남성들이 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