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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5주기 그리고 <생일>, 전도연이 감사하다고 말한 이유

너의길을가라 2019. 4. 16.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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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의식적으로 주어(와 목적어)를 찾는다. 굳이 쓰지 않아도 의미가 전달되기에 숨겨둔 혹은 일종의 거리두기를 위해 의도적으로 지워 버린 주어 말이다. 일상적인 대화의 경우에는 문제가 없다. 뜻이 통한다면 생략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부연할 것도 없이 주어가 있어야 문장은 훨씬 명확해진다. 의미 전달뿐만 아니라 감정의 소통도 원활해진다. 늘상 그리 꼼꼼하게 따질 필요는 없겠지만, 오늘 같은 날엔 그리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 5주기를 맞았다.'

어떤 언론들은 건조하다. 모름지기 언론이라면 그래야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 말라붙은 문장의 앞머리에 '우리(는)'라는 주어를 붙이면 어떨까. 문장의 온도가 확연히 다름을 느낄 수 있다. 세월호를 이야기하면 혹자들은 인상을 팍 찡그린다 손사래를 치며 '지겹다'고 말한다. 주어를 상실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것이 나의 (가족의) 일이고, 우리의 일이라면 어찌 '지겹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세월호 5주기가 '우리를' 찾아 왔다.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 우리에겐 두 가지 숙제가 남아 있는 듯하다. 첫 번째는 아직까지 떠오르지 않은 진실을 찾는 것이다. 지난 2017년 3월 23일 새벽 4시, 침몰했던 세월호가 다시 그 참담한 모습을 드러냈다. 침몰한 지 1073일 만의 일이었다. 1만 톤에 이르는 세월호는 인양됐지만, 진실의 무게는 그보다 훨씬 더 무거운 것일까. 여전히 진실은 바닷속 깊은 곳에 잠겨 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계속돼야 한다."

지난 15일,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와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서울 광화문 기억공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 18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국가의 수장으로서 참사 발생 보고를 받았음에도 유효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이 그 대상이었다. 또, 침몰 당시 퇴선 명령을 하지 않았던 김석균 해양경찰청장 등 해경 6명도 포함됐다.

한편, 검찰은 세월호 유족들을 불법 사찰했던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충격적이게도 기무사는 세월호 참사 당시 이른바 '세월호 TF'를 꾸려 세월호 유족들의 움직임을 일일이 감시했다. 학력, 정당 당원 여부, 정치적 성향 심지어 인터넷 물품 구매 내역까지 들여다 봤다. 그러고 나서 고작 "유가족들이 언론 플레이해서 떼쓰고 난동을 부리고 있다."는 내용의 첩보를 작성했다.

이런 '진실'들이 5주기가 돼서야 조금씩, 그것도 겨우 밝혀지고 있는데, 어찌 '지겹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쯤에서 그만두자'는 참혹한 말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제야 겨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얼마나 긴 세월이 걸릴 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계속돼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곧 '우리의' 일이기 때문이다. 또, 언젠가 우리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세월호 참사로 인해) 우리 모두가 상처를 받았다. (영화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종언 감독

두 번째 숙제는 바로 '치유'다. 세월호 참사는 많은 이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큰 충격을 받았다. 긴 시간동안 아픔과 슬픔 속에 신음했다. 그건 불안감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도 가족들 중 누군가를 그리 비참하게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말이다. 그 공포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다. 우리가 이 정도이니, 그 유가족들은 오죽하겠는가. 완치는 없을지 모른다.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씻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처를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 조심스러운 마음에 건드리면 겨우 추스린 감정이 터질까 싶어서, 괜히 긁어부스럼이 될까 싶어 외면할 순 없는 일이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오히려 세월호를 금기어처럼 여기고,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아끼는 게 능사는 아니다. 겁이 난다고 해서 그냥 방치해선 안 된다. 우리는 '대면'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러기에 영화는 좋은 매개(媒介)일 것이다.


"세월호 아픔이 너무 컸기 때문에 보기 두려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 역시도 그랬다. 또 다시 아파질까봐 그런 것 같다. 이 작품이 상처를 들춰내서 다시 아프자고 만들었다면 참여하지 않았을 거다. <생일>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여서 선택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전도연은 손석희 앵커와 영화 <생일>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세월호를 소재로 한 상업영화라는 굴레가 그를 계속 압박했을 테고, 무엇보다 '세월호' 자체가 주는 부담이 컸으리라. 전도연은 처음 대본을 받고 "너무도 큰 슬픔을 대면할 자신이 없었"지만, "마음에서 이 작품을 놓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 작품을 하게 돼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이라 털어놓았다.

전도연은 <생일>에는 "유가족 분들을 바라보는 편견, 시선, 피로도가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면서 '이웃'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이야기 했다. "옆집, 이웃의 의미는 누군가가 그러기를 바라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는 그의 말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는다. 아마도 그건 '위로'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게 진정한 위로일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에 앞서 세월호 유가족에게 '(아이들의) 생일'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기로 하자. 



지난 4일 방송된 tvN <어쩌다 어른>에 출연한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은 트라우마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주변 사람들(이웃)들의 '심리적 부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엄마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날 중의 하나가 내 아이의 생일 날이라고 이야기했다. 아이의 상일이 되면 엄마들이 아프기 시작한다며, 그 모습을 보면서 '생일 치유 모임'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소 길지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생일날이 되면 이도 저도 할 수 없어서 엄마들이 막 아파지고, 입원을 하기도 하고 막 그래요. 그 모습을 보면서 생일날 치유를 위한 모임을 해야 겠다고 해서 만든 게 생일 치유 모임인데. 그날 다 모여요. 엄마, 아빠, 아이를 기억하고 사랑했던 친척 사촌 다 모여요. 그 아이의 친한 친구들, 같이 학원 다녔던 친구, 중학교 동창, 그 아이와 친했던 아이들이 다 모여요. 주인공이 없는 생일날 모여서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 아이랑 친구들이 뭘 하고 놀았는지, 어디를 갔었는지, 이런 얘기들을 막 해요. 그 아이에 대해서 얘기를 하다보면 엄마들이 아빠들이 우리 아이가 지금 없지만, 친구들 마음 속에 저렇게 생생하게 살아남아 있구나. 친구들하고 저런 시간들을 보냈구나. 짧은 시간이지만, 의미있고 재미나고 밀도 있고. 안 해본 거 없구나. 이런 느낌들을 생생하게 받으면서 위로가 되는 거예요."


정혜신은 '생일 치유 모임'이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엄마들에게 그토록 큰 위로가 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엄마들이 상처받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내 아이가 세상에 없던 아이 취급을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상처가 될까봐 애들 얘기, 입기 얘기를 하다가도 당사자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갑자기 입을 닫거나 다른 얘기로 화제를 돌릴 때마다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다.

결국 가장 큰 위로는 '기억'이 아닐까? 정혜신은 주변 사람들의 경우에는 더 많이 기억해 주고 얘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직접적이고 친밀한 경험을 공유하지 못한 우리라고 다를까? 혹자들은 세월호를 그만 이야기하라고 하고, 세월호를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정작 유가족들이 원하는 건 조용히 하는 게 아닌지도 모른다. 더 많이 이야기하고, 그로 인해 더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일 아닐까?

그런데 그것이 단지 유가족만을 위한 일일까? 아니다. 치유는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지금도 세월호라는 단어만 들어도 눈물이 주룩주룩 흐른다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아예 외면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 위로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이 아픔과 슬픔을 공유해야 한다. 앞으로 세월호의 생일은 계속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치유까지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우리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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