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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민과 김상중의 상반된 싸움 방식, 당신은 어느 쪽인가?

너의길을가라 2019. 4. 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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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지상파 수목 드라마는 '전쟁' 중이다. 시청률을 두고 드라마 간의 경쟁도 펼쳐지고 있지만, 무엇보다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이 저마다의 싸움을 치르고 있다. 그들이 상대하는 적은 이른바 '거악(巨惡)'이다. 여기에서 거악은 '누구'를 지칭하는가. 시스템의 상단부를 차지하고, 사회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저들. 돈과 인맥으로 자신들의 성을 쌓고, 그 힘을 바탕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안하무인한 저들 말이다.

KBS2 <닥터 프리즈너>의 나이제(남궁민)는 태강그룹이라는 거악과 맞서 싸운다. 서서울 교도소 의료과장이 된 나이제는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태강그룹의 이재환(박은석)을 겨냥하는 듯 보였지만, 그의 진짜 '목표'는 고작 망나니가 아니었다. 나이제는 작게는 전임자인 선민식(김병철) 의료 과장과 대결 구도를 그리고 있지만, 크게는 교도소와 결탁해 온갖 비리를 저질렀던 의사들과 재벌가를 응징하기 위해 온몸을 던지고 있다

나이제의 싸움터가 '교도소'라면 MBC <더 뱅커>의 노대호(김상중)의 무대는 '은행'이다. 대한은행 공주지점의 지점장이었던 그는 권력 다툼의 희생양으로 지점이 폐점되는 아픔을 겪었으나, 행장 강삼도(유동근)의 발탁을 받고 대한은행 감사로 승전(升轉)했다. 다른 이들이라면 영전(升轉)의 기쁨을 누렸겠지만, 올곧은 성격의 노대호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그리고 은행의 상층부에 자리한 부패한 임원들과 권력 다툼에 혈안이 된 자들과 맞선다.

나이제와 노대호는 성실하고 치밀하기까지 한 거악을 상대하느라 고군분투 중이다. 각자의 전쟁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다. 그 싸움에 방심은 허용되지 않는다. 대충은 있을 수 없다. (드라마도 다르고 상대하는 적도 다르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동일하다. 바로 '정의'다. 사회의 시스템을 바로잡는 것, 그래서 더 이상 무고한 사람들이 다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지만, 두 사람이 선택한 싸움의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자기 손에 피 안 묻히고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있을까요?"

나이제는 시원시원하다. 거침없이 나아간다. 그는 악과 싸우기 위해 기꺼이 악이 되기로 결정했다. 그래야만 더 커다란, 더 악랄한 악과 맞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눈앞의 악을 척결하기 위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 나아가 자신이 피를 흘리는 것조차 주저하지 않는다. 나이제는 이미 이 싸움에 사활을 걸옸는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의 결의가 없으면 결코 저들을 상대할 수 없다는 걸 뼈져리게 깨달았던 것이다.

목적한 것을 이룰 수 있다면, 목표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나이제는 불의와도 쉽사리 결탁한다. 가령, 교도소 의료과장이라는 지위를 활용해 JH철강 김 회장의 아들인 사이코패스 김석우(이주승)을 윌슨병이라 주장해 형집행정지로 내보내려는 식이다. 김석우가 여성을 상대로 잔혹한 폭력을 행사한 사이코패스라는 점을 고려하면 나이제의 결정은 의아하지만, 그는 자신의 계획을 필요한 과정이라면 개의치 않는다.

"어떻게 하면 은행이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일까?"

반면, 노대호는 정도(正道)를 지킨다. 그는 더디다. 끊임없이 고뇌하고,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또, '선'으로 악과 맞서 싸운다. 강직하고, 단단하다. 때로는 답답할 정도로 고지식해 보이지만, 눈치보지 않고 해야 할 말을 내던지는 성격이다. 본점에 입성 후 첫 공식 행사인 신임 임원 만찬에서 "이렇게 호화로운 곳에서 식사를 즐기는 여러 임원 분들을 보고 과연 누가 은행이 어렵다고 생각들을 할까요?"라며 직설을 날리는 식이다.

그것이 옳은 일이라면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부행장 육관식(안내상)의 육촌동생인 지점장을 감사 대상에 올려 부행장과의 대립도 주저하지 않고, 끝내 불법대출 승인 건으로 부행장을 해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다. 그러나 새로운 부행장 이해곤(김태우)가 등장해 조직개편과 구조조정을 예고했고,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권력의 정점인 강삼도 행장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노대호의 싸움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일견 매력적인 캐릭터는 나이제이다. (남궁민의 열연도 한몫했겠지만) 악을 꼼짝 못하게 휘어잡고 차근차근 '응징'해 나가는 그의 활약은 카타르시스를 준다. 나이제의 정의구현에 속이 시원하다. 자연스레 응원하고 싶어진다. 설령 나이제가 악당과 다를 바 없는 방식을 취히고 있다 하더라도, 훨씬 더 악랄한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라 여기게 되는 것이다. 나이제는 악이 구축한 시스템을 상대하려면 순진함을 버리라고 말한다.


시청자들은 <닥터 프리즈너>(최고 시청률 15.4%) 속 나이제의 활약상에 열광하고 있다. 마치 SBS <열혈사제>(최고 시청률 18.5%)의 뜨거운 피를 주체하지 못해 막말과 폭력을 일삼는 신부 김해일(김남길)에 환호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쯤되면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이 과정에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니체의 말이 시대착오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됐다고 봐야 할까.

그럼에도 <더 뱅커>의 노대호처럼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소소한 악과 타협하지 않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하는 캐릭터도 있다. 물론 그 싸움은 지루하고 재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또, 인기도 없다. <더 뱅커>의 시청률은 3~4%대에 불과하다. 시청률을 캐릭터에 대한 지지와 동일시할 수는 없겠지만, 노대호가 시청자들과의 '공감대' 형성에 실패했다는 건 분명하다. 대중들은 나이제와 김해일을 원하고 있다.

나이제와 노대호의 상반된 싸움 방식은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올곧게 정도를 지키고, 선으로 악을 상대하는 노대호가 악당이 되기로 자처한 나이제보다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세태가 씁쓸하다. 사람들은 시크하게 말한다. 순진하게 싸워서는 결코 저들을 이길 수 없다고. 어쩌면 그렇게 말했던 사람들, 기꺼이 악과 타협했던 사람들이 구축한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인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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