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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킴의 극장

류준열 돋보인 '돈', 흥행과 평가는 별개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었다."


부자(富者)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곧 '모든 것'이다. 돈이 나를 증명하고, 설명하고, 변호하고, 위로한다. 그러니 욕망에는 끝이 있을 수 없고, 소유에는 만족이 없다. tvN <어쩌다 어른>에 출연한 혜민 스님은 "명품가방, 외제차, 강남 아파트를 가지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걸 부정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걸 소유하고 만족이 되면 괜찮은데 만족이 되겠냐"고 점잖게 반문한다. 


그 질문에 어떤 대답이 어울리는지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한번쯤 소유해 보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 아닐까? 영화 <돈>(박누리 감독)의 조일현(류준열)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시골에서 홀로 복분자 농사를 짓는 아버지, 한번 쓴 물건을 버리지 않고 쟁여놓는 어머니,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일현은 궁상스러운 삶이 싫었다. 일현은 '부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키워왔다. 일현은 '주식 브로커(증권사 영업사원)'가 돼 여의도 증권가에 입성했다. 


'한국의 월스트리트'라 불리는 그곳에서 일현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을까? 원대한 꿈과는 달리 현실은 초라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입사 동기 전우성(김재영)과 달리 인맥도 없고, 그렇다고 출중한 능력을 지닌 것도 아닌 일현은 점차 한계를 느낀다. 실적을 올리는 건 고사하고, 주문 실수를 하는 바람에 대형 사고를 터뜨리기에 이른다.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그에게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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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팀 선배인 유민준(김민재)으로주터 베일에 싸인 작전 설계자 '번호표(유지태)'를 소개받게 된 것이다. 일현은 '번호표'와 손을 잡고 어두운 거래에 뛰어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꺼림칙하지만, 돈의 유혹 앞에 양심은 속수무책이다.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돈의 부름에 충실히 응했다. 회사 내 실적 1위는 어김없이 일현의 몫이었고, 그는 동료들의 인정과 부러움을 받는다. 일현은 점차 돈을 맛을 알아가게 된다. 


돈이 가져다 준 달콤함도 잠시, 일현 앞에 곧 위기가 닥쳐왔다. 집요하게 '번호표'를 쫓고 있던 금융감독원 자본시장 조사국 수석검사역 한지철(조우진)이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일현에게 접근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냥개'라는 별명답게 쉽사리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현은 애써 담담한 척 하지만, 심리적으로 쫓기며 점점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대로 괜찮을까?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 과연 일현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니들 하는 짓이 도둑질, 사기랑 뭐가 다른데? 일한 만큼만 벌어."


20일 개봉한 <돈>은 기존에 1위를 지키고 있던 <캡틴 마블>뿐만 아니라 같은 날 개봉한 <악질경찰>, <우상> 등을 제치고 단숨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23일 19시 기준으로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돈'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상업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잘 살린 덕분에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돈>이지만, 작품 자체에 대해 후한 평가를 주긴 어렵다. 


'돈'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전반적으로 밋밋하다는 인상이다. 고민이 깊지 않기 때문일까. 돈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고 싶었던 건 알겠는데, 그동안 수 차례 봐왔던 질문의 답습에 그친다. 그렇다고 대답이 기똥찬 것도 아니다. 그나마 <돈>의 미덕이라면 평범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천재들의 놀이터'가 아니라 '보통 사람의 진흙탕'을 그려냄으로써 관객들은 약간 무능하기까지 한 일현에게 자연스럽게 감정이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악의 구도가 너무도 명확하다는 점은 흥미를 반감시킨다. <돈>이 한지철의 이야기였다면 일정한 쾌감을 이끌어 냈겠지만, 일현의 관점에서 쓰였다는 점에서 그 명쾌함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어디까지가 합법이고, 어디까지가 불법이냐'는 물음은 애초에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옳고 그름에 대한 답이 뚜렷하기 때문에 관객 입장에선 고민의 여지가 주어지지 않아 지루하고, 여운이 남지 않아 허무하다. 



또, 후반으로 갈수록 치달아야 할 이야기가 바람 빠진 바퀴마냥 고꾸라지는데, 그 전개가 아쉽기만 하다. 그토록 치밀하고 완벽했던 번호표의 허술함은 억지스럽기까지 하고, 뻔한 결론을 향한 돌진은 그 어떤 긴장감도 생산하지 못한다. 권선징악은 오락영화의 필수 요소라지만, 일현의 각성은 생뚱맞고 번호표의 몰락은 급작스럽기만 하다. 옳고 그름이 선명했던 <돈>이지만, 일현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그럼에도 <돈>의 상업 영화로서의 위력은 발휘되는데, 그건 배우들의 활약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류준열은 어리숙했던 청년 일현이 욕망에 휩쓸려 타락해 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그의 얼굴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집중해서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류준열뿐만 아니라 등장만으로도 남다른 존재감을 발휘하는 유지태, 어떤 옷을 입어도 그만의 매력을 발산해 내는 조우진 등의 연기도 돋보인다. 


뻔한 영화가 돼버린 <돈>에서 곱씹어 봐야 하는 건 '일한 만큼만 벌어'라는 한지철의 말이다. 물론 그 대사는 '일한 만큼'을 넘어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는 이들에 대한 단죄다. 그러나 대관절 '일한 만큼'이란 도대체 얼마일까? 나의 '일한 만큼'은 얼마의 가치를 갖는 걸까? 노동력이 천지받는 이 땅에서 애초에 '일한 만큼만 보는 것'은 합당한 대우일까? 그리고 그 '일한 만큼'의 가치는 누가 매기고 있는가? 오히려 고민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됐어야 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