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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 연예

'1박 2일'이 폐지된다고 한들.. 질문은 다시 시작돼야 한다.



KBS2 <1박 2일>이 존폐의 기로에 섰다. KBS는 18일 공식입장을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제야' 신중해진 걸까. 그저 "결정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장고(長考)에 들어간 셈이다.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간에 이번 사태와 관련해 KBS 측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또, 그 문제제기는 예능계에 자리잡은 하나의 왜곡된 '풍토(風土)'와도 연결돼 있다. 


정준영 사태가 불거졌을 때만 해도(11일), 정준영이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 촬영해 유포한 혐의로 입건됐을 때만 해도(12일) KBS 측은 이상하리만치 '태연'했다. 마치 큰 문제가 아니라는 듯한 반응이었는데, '고작' 정준영의 분량을 최대한 편집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었다. 급기야 15일 오전, 남은 멤버들을 불러모아 촬영을 이어갔다.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한심한 대응이었다. 


여론은 KBS 측의 안이한 태도를 강하게 질타했다. 이번 사건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준영은 2016년에도 여자친구의 신체를 휴대전화로 몰래 촬영한 혐의로 고소를 당한 전력이 있다. 당시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자 KBS는 그의 복귀를 발벗고 도왔다. 범죄가 인정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증거 불충분(정준영은 수사기관에 휴대전화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다)으로 인한 무혐의 처분이었음을 고려하면 KBS 측의 결정은 너무도 얄팍했다. 



날선 비판이 쇄도하자 그제서야 KBS 측은 '반성문'을 제출하고서 '제작 중단'을 선언했다. 어쩌면 그쯤에서 마무리 짓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2007년 8월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12년째 일요일 저녁을 지켜오고 있는 <1박 2일>이 아닌가. <1박 2일>은 단순히 장수 예능이 아니라 시청률 13~15%를 거두고 있는 효자 예능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재미가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오긴 해도 <1박 2일>을 대체할 만한 예능은 없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을 단행할 결단력이 없었던 것이다. KBS 측의 대응은 신속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신중하지도 못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제작 중단'에 들어갔으나, 곧바로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1박 2일>의 멤버 차태현과 김준호가 백만 원의 내기 골프를 쳤다는 보도가 등장한 것이다. 정준영의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을 조사하던 과정에서 두 사람의 내기 골프 사실이 포착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를 보도한 건 KBS <뉴스9>였다. 


차태현과 김준호는 '국외에서 골프를 친 것은 사실이 아니며, 돈은 모두 돌려주었으나 책임을 통감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1박2일>을 비롯해 출연 중인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KBS 측으로서는 상황이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1박 2일>의 제작 중단을 선언했지만, 이젠 제작이 불가능한 단계에 이른 것이다. 여론은 극명하게 갈렸다. 사태에 책임을 지고 폐지해야 한다는 강경론과 이를 반대하는 동정론이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의문을 제기할 여지도 없이, <1박 2일>은 위기 관리에 실패한 예능이다. 이미 여러 차례 문제들이 발생했고, 그때마다 요리저리 피해가는 방법으로 일관했다. 눈앞의 상황을 '모면'하는 데 그쳤다. 그 적폐들이 누적돼 지금에 이른 것은 아닐까? 당연히 그 책임은 프로그램 전반을 관리하고 있는 제작진에게 귀속된다. 또한, <1박 2일>에 더욱 '관대'했던 KBS 측의 잘못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일까? 



사실 중요한 건 '존폐' 그 자체가 아니다. 당장 <1박 2일>이 폐지된다고 한들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번 일로 아무 것도 배우지도 얻지도 못한다면 헛심만 쓰는 꼴이다. 오히려 유효한 질문은 이런 것이다. (KBS 측은) '어떻게' 이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태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을까? 고작 정준영의 분량을 편집하는 정도로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어째서 아무런 문제의식도, 책임감도 느끼지 않았던 걸까?


이 문제는 예능계(뿐만 아니라 연예계) 전반에 퍼져 있는 안이한 태도와 맞닿아 있다. 그동안 예능은 '웃기는 것'에만 혈안이 돼 있었다. 마치 웃기기 위해서는 못할 말과 못할 짓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야동', '황금폰' 등 수위는 점점 세졌고, 가려서 해야 할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방송을 탔다. 또, 범죄 경력을 가진 이들과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이들의 복귀가 너무 순탄하게 이뤄졌고, 심지어 그들의 '범죄'마저도 웃음에 활용됐다. 


물론 예능에서 웃기는 건 중요하다. 예능의 본질은 웃음이니까. 그러나 그게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과거에는 '먹고 사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면 이젠 그 음식의 질과 삶의 질이 중요해진 것처럼, 웃음도 그 자체보다는 '무엇으로', '어떻게' 웃길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지난 7일, SBS 웹 예능 <방송국에 사는 언니들-쎈 마이웨이>에서 "사람을 볼 때는 유머의 소재가 무엇인지 봐야 한다"는 가수 치타의 말은 정곡을 찌른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예능은 '웃겨야 한다'라는 1차원적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부적절한 언행도 쉽게 용인됐고, 자연스럽게 웃음으로 승화됐다. 예민한 이들은 경악했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웃어 넘겼다. 그 결과 도덕 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사정이 그러한데, 물의를 빚은 연예인을 다시 받아들이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리라. 방송사와 연예 기획사, 대중들 간의 삼박자가 어우러진 결과다. 


<1박 2일>만 해도 2016년 정준영의 불법 촬영물 논란이 벌어졌을 당시, 정준영의 분량을 편집없이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다. 사건이 종결되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단한 배짱이 아닐 수 없다. 이후에는 정준영을 '그 녀석'이라 지칭하며 그리워했고, 다음 수순은 반갑게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거기엔 그 어떤 경각심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번 사태에 있어서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했다. 


당장 <1박 2일>이 폐지된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를 있겠는가. 정작 달라지는 게 없다면, 사안에 대한 명확한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면, 당사자가 책임감 있는 태도를 갖지 않는다면, 재발 방지를 위한 장치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공염불(空念佛)이다. 무엇을 배우느냐, 그래서 무엇을 실천하느냐가 중요하다. KBS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버닝썬에서 발화돼 번지고 있는 이 불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질문은 다시 시작돼야 한다.